준준결승은 모두 6월 19일에 열렸다. 말뫼에서 열린 서독-유고전은 서독이 유고를 1-0으로 격파했고 노르최핑에서 벌어진 프랑스-북아일랜드전은 프랑스가 4-0으로 북아일랜드를 대파했다.
또 스톡홀롬에서 열린 스웨덴-소련전은 홈팀 스웨덴이 소련을 2-0으로 완파했고 외테보리에서 펼쳐진 브라질-웨일즈전은 17세 소년 펠레의 결승골로 브라질이 웨일즈를 1-0의 스코어로 간신히 이겼다. 4강으로 좁혀진 6회 월드컵대회의 패권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스웨덴은 물론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거리였다.
닷새후 브라질은 프랑스와 스톡홀롬에서 맞붙는다. 북구의 베니스라 불리는 스톡홀롬은 호수와 운하로 이뤄진 천연의 요새로 그 옛날 바이킹들이 통나무(스톡)를 쌓아 방벽을 만들었다는데서 수도의 이름이 유래했다.
호전적인 바이킹의 기질이 운동정신으로 승화된 탓인지 스웨덴의 축구열기는 가히 광적이었다. 로준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준결승에서 브라질은 2년전 유럽원정에서 배워간 4-2-4 체제를 완성시켜 놀랄만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가린차 바바 디디 펠레 자갈로로 이어지는 브라질의 화려한 공격진은 세계 축구무대에서 브라질 시대를 열어준 주인공들 이었다.
펠레의 해트트릭에 힘입은 브라질은 퐁테뉴가 분전한 프랑스를 5-2로 격파하고 결승진출에 성공했으며 외테보리에서 벌어진 스웨덴-서독전은 홈팀의 어드벤티지를 철저히 이용한 스웨덴이 서독을 3-1로 이기고 결승까지 진출한다. 경기 시작전, 스웨덴감독 조지 레이너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웨덴의 목표는 선취골에 있다. 스웨덴이 먼저 득점을 하면 관중들은 열광할 것이고 상대팀 브라질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의 악몽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당시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때 결승전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선취골을 얻었으나 후반들어 2골을 내주는 바람에 패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이날 로준다 스타디움에는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나와 스웨덴 선수들을 격려했다. 항상 혼자 거리를 산책하다 시민들이 건네는 인사에 일일이 답례를 보내고 주차위반으로 적발당하면 일반 시민과 똑같이 응하는 소박하고 민주적인 구스타프 국왕은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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