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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짱! 모여라 글세상]아버지의 마음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엄마랑 아빠 모심으러 논에 가니까 할머니 밥도 챙겨드리고 방 청소도 하고 ..."

 

"응. 알았어 알았어∼"

 

나는 엄마의 당부가 끝나기도 전에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시끄러운 기계음에 귀를 틀어막고, 방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 써봐도 다시 잠을 청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모처럼 여유 있는 주말을 보내겠거니 했던 기대는 아침부터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이미 황금 같은 주말을 부모님을 위해 내놓은 터라 나는 서둘러 집안 구석구석 일거리를 찾아서 했다. 비록 자질구레한 일이었지만 힘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방청소를 마치고 나는 녹초가 되어 방 한가운데 누워버렸다. 그때 엄마가 오셨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엄마는 새참 준비로 분주하셨다. 그리고 서둘러 새참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국이 들어있는 냄비를 엄마에게서 뺏다시피 하여 들고 엄마와 나란히 논으로 향했다. 논은 집에서 꽤 멀다. 가는 도중에 엄마께선 괜찮으니까 집에 가라고 말리셨지만 그런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논에 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엄마 혼자서 무거운 새참을 들고 논에 가는 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진짜 속셈은 새참에 있었다. 논에서 먹는 새참 맛은 ! 어떤 맛있는 반찬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그 새참 맛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행여 국물이 흐를까 노심초사하며 냄비를 보물단지 모시듯 논까지 가지고 갔다. 아빠는 배고픔도 잊은 채 모심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이앙기와 일체가 되어 넓다란 논을 연둣빛으로 소중히 물들이는 것이다. 나는 새삼스레 가슴이 찡 해졌다. 그리고 이앙기를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앙기야. 너는 우리 아빠 슬프게 하지마. 알았지?'

 

3년 전 이맘때 토요일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놀다가 해질 무렵에서야 귀가하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려는데 어디선가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어디 불이라도 났나?'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에 가는데, 집이 가까워질수록 검은 연기는 또렷해지기만 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심장은 100m달리기를 한 것보다 세차게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우리 집은 아니겠지. 아닐꺼야.'

 

하며,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지만 다리는 점점 힘이 풀려 비틀거리고 있었다. 집이 보였다. 집은 아무렇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할 때, 집 앞에 있는 하우스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집까지 단숨에 달렸다. 마을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여럿 모여있었고, 아빠는 불길에 휩싸인 하우스 바로 옆 하우스 위로 올라가 열심히 부직포를 걷어내고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구부러진 몸으로 부지런히 물을 날랐고, 동네 사람들도 불길 속에 물을 던졌다. 나는 가방을 내팽개치고 거기에 동참했다.

 

그 하우스는 기계를 보관하는 곳이다. 한쪽에는 트랙터와 이앙기. 다른 한쪽에는 콤바인, 경운기, 자동차까지 있었다. 겉을 부직포로 씌웠기 때문에 불은 쉽게 번졌다. 다행히도 아빠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옆 하우스까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앙기가 새카맣게 타버렸다. 곧 모를 심는다고 그 날 아침 아빠는 그렇게도 정성스럽게 이앙기를 씻었는데.

 

뼈대만 앙상히 남은 하우스와 타버린 이앙기를 보며 아빠는 씁쓸함과 허탈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아빠의 손과 다리에 약을 발라 드렸다. 화상이 꽤 심했다. 나는 병원에 가봐야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아빠는 손을 휘휘 내저으시며 괜찮다고만 하셨다. 아빠는 고통스러운듯 얼굴을 찡그리셨지만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크리란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앙기를 다시 사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서 아빠는 이앙기 사기를 망설이시다가,

 

"어쩌면 숨을 거두기 전까지 농사꾼으로 살아야 하는데 기계는 있어야지…."

 

하시며 올해 마음먹고 이앙기를 사셨다.

 

나는 이앙기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3년 전 그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아빠의 몸과 마음의 상처도 거의 아물었으니 새 이앙기가 아빠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 아빠~ 새참드시고 하세요!"

 

아빠는 알았다는 듯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오늘따라 아빠의 검게 탄 얼굴에 피어오르는 환한 미소가 더욱 눈부시다.

 

/백산고 3학년 오보람

 

◇글을 읽고

 

'하우스, 부직포,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농촌을 말하는 단어들이다.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자식 만큼 귀한 것들이다. 보람이는 농사 짓는 아버지와 농기구, 농작물, 땅 사이에서 살아간다. 불길에 휩싸인 하우스에 애타는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지켜보는 보람이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아버지의 외상 보다 마음의 상처가 크리라는 것을 아는 보람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다. 마음과 글이 나무랄 데가 없다. 할머니와 더불어 불 끄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처절한 감동이다.

 

/이용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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