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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교수의 재미있는 '익은말'] 윗입보다 아랫입이 크다

여(呂)씨 친구에게 농담하는 말이지만 또 남녀간에 이성에 빠져들 때에도 인용된다.

 

<근원설화>

 

여씨 집안에 시집간 부인이 얼굴이 천하일색이고 글도 잘 했으며 성격이 호탕한 여장부가 있었다.

 

그는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마흔 살에 과부가 되었다.

 

본시 재산도 넉넉하여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자식들도 모두 아랫마을 최진사 글방에 나가 수학하여 학문도 성취했으며, 아들들은 어머니에게 효성이 극진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간간 밤중에 자식들이 잠이 들면 혼자 나갔다가 새벽녘에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몇 번 몰래 뒤쫓아 보니 그들의 스승인 아랫마을 최진사집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어느 날 삼형제가 의논했다. 어머니께서 저러시다가 혹시 남의 눈에 띄면 큰일이다. 우리가 같이 어머니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이 뒤로는 그러시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어느 날 밤에 형제들이 어머니 침소로 나가 큰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니님 저희들이 비록 불효하오나 금후 힘을 다하여 어머님을 편하게 모시고 잡수시고 싶으신 것도 말씀만 하시면 힘껏 구하여 올리겠습니다. 오직 바라는 바는 어머님께서 밤나들이 하시는 일만은 말아 주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천하의 여장부요 호걸인데 그 말에 끔쩍이나 하겠는가 아들들을 한번 휘 훑어보고

 

“너희들 성이 무엇이냐”

 

“어찌 하시는 말씀이신지요. 여씨(呂氏)가 아닙니까”

 

“‘여(呂)자’의 윗입이 크더냐 아랫입이 크더냐”

 

자식들이 생각해보니 여(呂)자를 쓸 때 입구(口) 밑에 또 입구 자를 붙이되 위의 입구 자 보다는 아래의 입구자를 더 크게 쓰는 것이 보통이니 역시 먹고 사는 윗입 보다는 환락적인 아랫입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지라 자식들은 다시 두 말 없이 나와 버렸다.

 

이 이야기는 홍만종(洪萬宗)의 명엽지해(蓂葉志諧)중 ‘주담지곤(做談止困)’조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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