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템포-영화] 욕망 통해 결코 채워지지않는 허전함

이 영화 - 권태

프랑스영화는 여러가지로 독특하다. 아니, 대부분의 유럽영화들이 낯선게 사실이다.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시각효과에 치중하면서 스토리는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시각이 두드러지는 헐리우드영화에 길들여진 이유도 크다.

 

굳이 영화를 처음 세상에 소개한 르미에르형제나 ‘누벨바그’‘누벨이마주’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프랑스영화는 세계영화사의 새로운 틀거리를 만드는데 주력해왔다. 그만큼 프랑스영화는 난해하고 실존적이고 철학적이다. 영화문법도 헐리우드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리고 성(性)에 대해 무척 관대하다.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노출의 한계를 무시하기 일쑤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프랑스영화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많다.

 

‘권태’(L′Ennui). 장자크 베넥스(베티블루의 감독)-레오카락스(퐁네프의 연인들·나쁜피의 감독)-카뜨린 브레야(로망스·팻걸의 감독)에 이어 차세대 시네아티스트로 꼽히는 프랑스의 세드릭 칸이 지난 98년에 만든 영화다. 프랑스에서조차 파격적인 노출과 성표현수위로 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영화는 프랑스영화의 전통와 현재가 고스란히 배어있기도 하다. 또 ‘유럽의 섹스드라마는 이런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40대의 이혼한 철학교수가 있다. 성충동을 학문적인 성취로 승화해야한다고 떠벌리는 금욕주의자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을 ‘날뛰는 성기와 콩알만한 뇌를 가진 미치광이’로 비난하던 그가 어느날 풍만함보다는 뚱뚱함에 가까운 17살 소녀 세실리아를 만난다. 노인화가를 ‘복상사’시킨 전력이 있는 이 소녀와 몸을 섞는 교수 마르탱. 처음에는 소녀를 무시하고 깔본다. 영화속의 대사대로라면 ‘입보다 성기의 표정이 더 풍부한 여자’인 세실리아에게 맹목적인 섹스를 요구하고, 이에 순응하는 그녀를 혐오한다. 하지만 이 중년남자는 세실리아의 포로가 되면서 위치가 바뀐다. 이제부터 마르탱은 지고지순한 지식인이기를 포기한다. 어린 애인과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속물적인 행동도 서슴지않는다. 끊임없이 소유하려하고 집착한다. 하지만 텅비어 보이던 세실리아는 냉정하다. 다른 남자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무감각하게 “사랑은 없다”고 말한다.

 

왜 영화제목을 ‘권태’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집착’이나 ‘중독’이 맞을 듯싶다. 영화는 권태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은 집착이 잉태하는 인간의 내적갈등, 지식인에 대한 조롱이 숨어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절망으로 이어진다. 마치 금단의 열매는 당장은 달콤하지만, 뒤맛은 쓰디쓰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같다.

 

무엇보다 욕망에 빨려들어가는, 아닌 척하면서 할짓은 다하는 지식인을 한껏 조롱한다. 그리고 소유에 집착하는 남성들의 협소한 사랑에 대해서도 유쾌하게 비꼰다. 중년남자의 극단적인 욕망을 통해 결코 채워지지않는 허전함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권태는 사실 매혹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풍만한 몸매의 세실리아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무뇌아’에 가까운 무표정한 모습으로 뭇남자들의 품에 쉽게 안기는 세실리아는 섹스에 집착하지만 사랑을 모른다.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세실리아는 권태에 빠진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권태로운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화면은 거칠고 날카롭다. 다만 직설적인 대사와 중년남자의 늦바람은 가끔씩 실소를 자아낸다.

 

정사장면도 20번이 넘는다. 하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진한 장면은 없다. 반복되는 정사장면은 지루하고 권태롭기만 하다. 이탈리아 국민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남녀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들과 파격적인 성애묘사들로 인해 지난 2002년 수입추천 불허판정을 받았다 뒤늦게 선보였다. 서울에서는 6월 개봉했지만 필름수급사정으로 전주에서는 25일부터 상영한다. 예술영화전용관인 아카데미아트홀(271-1235).

 

정진우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오피니언[사설] 지방선거, 끝나지 않았다. 본선이 진짜다

오피니언[사설] 치열한 선거속 ‘민생 예산’ 확보에도 총력을

오피니언내로남불 단일화, 그들만의 덧셈

오피니언LA 은대구 조림

오피니언창업가에게 필요한 좋은 멘토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