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축과 별개 문제로 취급돼야
전통은 먼 옛날의 과거 표현들이 아니다. 전통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외부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오늘날에도 우리의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다. 과거 그 당시에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표상들에는 지금, 이곳의 전통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통성이란 시간 흐름의 축선 상에 주어진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그 시대, 그 장소의 삶의 물리적, 정신적 현상으로서, 시간적, 장소적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전통은 항상 당시, 당 장소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건축 또한 어느 시점과 어느 장소에서도 항상 전통성의 모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통을 새롭게 하거나 다시 받아들이거나 현대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고건축, 근대건축, 현대건축이라고 시간의 틀에 의해 구분하고 있는 모든 결과물들은 ‘그 당시의 현재 건축’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단순한 시대적 구분에 의해 정의된 ‘전통건축’은 엄밀하게 표현하면, 과거의 건축, 고건축을 의미하며, 이들 모두가 진정한 전통성을 가진 건축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성은 고건축과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건축에 관련된 전통성에 대해 정의 자체가 불분명한 채, 일반적으로 고건축을 전통건축으로 통칭하고 있다. 이는 근세의 서구화 초기에, 이전의 중국과 같은 인접 동양문화권과는 매우 상이한 서양 문화권의 건축과 당시의 기존 건축을 구별하기 위해 쓰여진 용어라고 여겨진다. 예컨대, 고려시대의 중국 원나라 문화의 도입과 조선시대 이후의 서양문화의 도입은 문화의 수용에 있어, 기존 문화와의 이질성의 차이가 매우 컸을 것이고, 그 문화적 이질성을 강조할 수 있는 표현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전통건축에 대한 용어와 관심은 우리나라가 급속한 서구화 과정을 겪으면서 1970-80년대에 일기 시작한 우리 고유문화의 정체성 확인 욕구와 함께 더욱 부각되어, 지금까지 이 용어가 고건축의 고유성을 대신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전통건축이라는 용어의 개념은 단순히 시대적 구분을 위해 고건축을 통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의 각 시대별 전통성을 규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이 개념은 건축에 관련된 불변인자(不變因子)에 대응하는 가변인자(可變因子)의 표현이 건축적 전통성이라고 해석하는 방법을 필자의 주관적인 가설을 전제로 하고 자 한다. 불변인자로서는 햇빛, 기후, 바람, 땅, 물 등의 ‘풍토적 요소’와 ‘민족성’, ‘역사성’, ‘장소성’ 등이며, 가변인자는 건축 관련 입지환경, 기술, 자재, 법규, 교통, 기능적 수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건축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개념은 대별되거나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불변인자에 대응하여 건축적으로 표현되는 가변인자의 내용을 규명함으로써, ‘전통건축의 현대적 해석과 수용 작업’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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