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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명인을 찾아서] 도내 유일 태극선 기능보유자 조충익씨

道지정문화재 "부채는 아름다운 문화상품이죠"...스스로 작도법 개발 뿌듯

도내 유일의 태극선 기능보유자인 조충익 도지정 무형문화재. 그는 앞으로 자신이 살아있는 한 태극선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desk@jjan.kr)

도내 유일의 태극선 기능보유자 조충익(60·대성동) 도지정 무형문화재.

 

1970년대 후반부터 태극선을 만들기 시작해 벌써 30년 넘게 태극선 만들기에 열정을 쏟고 있는 조충익 무형문화재는 태극선을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 내가 손재주가 좋았어. 한번 보고 만지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지. 처음 태극선은 먹고 살려고 만들기 시작했지만...”

 

조 무형문화재가 태극선을 만들기 시작했던 1970년대 후반에는 전북에 태극선을 만드는 기술자가 10여명 정도 있었다.

 

모두들 가내 수공업 형태도 조금씩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팔곤 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사실. 밥을 굶는 일도 많았다.

 

“먹고 살 것이 없어서 태극선 만드는 일을 시작했는데.. 형편이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어. 아직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야.”

 

장수군 번암면이 고향인 조 무형문화재는 태극선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다른 장인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아름다움을 지킨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생계를 위한 것인 만큼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다르고 아름답고 체계적인 태극선을 만들어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어. 복사기도 없고 도면도 없어서 항상 제각각인 태극선이 나왔거든.”

 

손재주가 남달랐던 조 문화재는 자신이 스스로 작도법을 개발했다. 그러자 태극선의 크기가 달라져도 같은 모양의 태극선이 나왔다.

 

지금까지 태극선을 만들면서 그렇게 뿌듯한 적은 없었다.

 

“체계적으로 태극선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어. 이제 밖으로 나가 뭔가를 해봐야겠다고 느꼈지.”

 

조 문화재가 국제적으로 자신의 태극선을 선보인 것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들이 경기장을 입장할 때 손에 흔들고 있던 태극선이 바로 조 문화재가 만든 것이었다.

 

당시 선수들이 들고 있던 태극선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 각종 올림픽 때 선수들이 들고 나오는 태극선은 조 문화재가 만든 것들이었다.

 

이렇게 명성을 쌓아가면서 지난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쾌거를 얻기도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한 일로 문화재가 됐어. 비록 동기가 문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지.”

 

그러면서 조 문화재는 후학을 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여건이 좋지 않은 태극선 만드는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자신의 아들이 기능전수자로 나선 것이 고작이었다.

 

문화재가 돼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모두들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조 무형문화재.

 

앞으로 자신이 살아있는 한 태극선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조 문화재의 희망은 하나다.

 

그는 무형문화재가 대접받는 세상이 와 자신의 기능을 전수받을 후배들이 생기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데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해. 선배들이 대접을 받아야 후배가 생길텐데...”

 

이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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