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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문서의 향기] 공문서의 번호

번호가 문서 생산·유통·보존 도움

번호를 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번호라는 것은 하나의 집단 내에 속한 구성원들을 구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집단과 집단을 나누기도 하고, 전체와 부분을 나누는 것이면서 수를 헤아리기 위한 가장 용이한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몇 번인가와 몇 번째인가 처럼 번호는 사물의 순서를 결정하기도 한다. 공문서에 있어서 번호(문서번호)는 그 문서의 고유한 특징을 부여한 것임과 동시에 문서의 원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문서번호는 문서를 관리할 때 유용한 분류의 기준이 된다.

 

고문서를 보다보면 이러한 번호체계가 붙어 있는 경우를 발견하기 힘들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고문서들은 일정한 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채 그냥 유통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갑오개혁 공문서의 근대화 요소 중에 문서번호를 부여하도록 한 것은 근대적 특징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공문서에 문서번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1894년 '각부각아문통행규칙' 이후이다. 문서의 처리절차와 유통 및 완료 문서의 처리 규정을 담고 있는 이 규칙 이후 기안문이라고 하는 제도가 성립한다. 기안문과 시행문이 성립됨에 따라 문서에 일정한 번호를 붙여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문서를 생산한 기관에서 보관하는 기안문과 상대 기관으로 보내는 문서의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서번호를 부여하는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즉 어떠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문서를 작성(기안문)하고 최고 책임자까지 결재를 받은 뒤에, 발송하는 문서(시행문)는 담당 부서에서 상호 대조하고 발송부에 요점과 번호를 적어 원본(기안문)과 정서(시행문)에 도장을 찍은 후 정서본은 발송하고 원본은 보존하도로고 규정한 것이다. 이때 발송문서에는 각 기관별로 '訓第몇號' '稟第몇號' '往第몇號' 등과 같이 번호를 붙였던 것이다. 훈은 훈령을 품은 품신을, 왕은 각 관청의 왕복 문서임을 표시한다.

 

문서번호를 부여하는 규칙에서 알 수 있듯이 문서번호는 기안문과 시행문의 동일성 확인이외에 문서의 유형을 구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문서의 생산 기관을 파악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번호를 부여한 것은 생산과 유통 그리고 보존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서번호를 부여하지 않은 조선시대의 문서생산유통이 후진적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여러차례 언급하였듯이 조선시대는 공문서의 원본에 대한 인식이 달라고 특히 생산과 유통단계에 만들어지는 기안문과 시행문의 개념 역시 크게 달랐다. 원본 보존 원칙이 없었던 조선시대 굳이 번호를 붙여서 문서를 유통하고 관리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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