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햇'이라는 접두어 하나로 그 해에 새로 나온 모든 '햇 것'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나날이 새로움을 안겨주는 해와 빛을 함께 아우르기도 한다. 절묘한 발상법이라 할 만 하다. 얼핏 비슷한 말인 듯하면서 그때그때 정황에 따라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말 임자를 잘 만나야 제 값을 받는 게 우리말이다.
표현의 틈을 저밀 수 있는 데까지 저며 제일 정확한 놈을 골라내는 작업이 그만큼 어렵되, 그 과정을 거치면 진국을 맛볼 수 있다.
'햇'이 접두어로 쓰인 낱말이 40개 가까이 사전에 올라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햇발'과 '햇살'도 그 중의 하나다.
'햇발'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햇살, 햇귀'요, '햇살' 또한 '부챗살처럼 내뻗는 햇빛, 햇발'로 그 뜻이야 거기서 거기지만, 톡 쏘는 맛이 다르다고나 할까.
'햇발'은 그냥 햇빛이 다발을 이루어 사방으로 퍼진다든지 뻗친다는 의미를 지닌 데 비해 햇살은 해에서 내쏘는 광선의 이미지가 좀더 강하다. '김영랑'의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과 '모윤숙'의 '은은한 환희'를 보자.
-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 오후는 햇발이 엷은 망사(網紗) 같다. 마치 떨어져 가는 벗처럼 멀어져 가다가 넘어갈 무렵엔 홍시빛 빨간 놀이 다시 이 뜰을 칼맨의 연정(戀情)처럼 타오르게 한다.-
여기서 '햇발'을 '햇살'로 바꾸어 보면 그 느낌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퍼진다는 말 속에는 '포근히'라는 부사가 으레 전제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말의 감칠맛이라고나 할까!
촘촘하게 배어 있는가 하면 헐렁하게 성긴 감정 사이를 말의 사자(使者)가 부지런히 왔다갔다하는 동안에 우리들의 말은 한층 단련되고 살이 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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