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스민 소외·불안·고뇌 현대인의 적막함 담고 싶었죠"…10월 '休' 주제 일곱번째 개인전
오래된 선풍기 두 대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창문은 진작 떼어버렸다.
얼마전 새로 생긴 익산 '신동시장' 물건 파는 소리가 3층까지 흘러들어온다. 지하는 문 닫은 노래방, 2층은 담배 냄새가 찌든 PC방, 3층은 서양화가 김성민씨(42)의 작업실이다.
"철규형이 묻는 거예요. 순수미술이 뭔 줄 아냐? 순수한 사람이 그리는 거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적이었죠."
조금만 흥분해도 목소리가 커지는 김씨가 달떠서 말했다. '철규형'은 서양화가 윤철규씨(43). 서양화가 조헌씨(44)와 함께 화단에서 이들은 '삼형제'로 통한다. 셋은 약간은 침잠해 있는 듯한 그림 분위기도 닮았다.
"대학 1∼2학년때만 해도 작업에 대한 열망같은 건 없었어요. 군대 제대하고 형들 작업실에 놀러다니다가 작업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했었는데, 형들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제가 형들 영향을 받았으니까 작업도 비슷할 수 밖에 없죠."
1992년부터 남자 인체를 그려오고 있는 김씨.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구분한 것은 아니었다. 모델을 직접 살 형편이 안돼 동료들에게 부탁하다 보니 주로 남자 인체를 그리게 됐다.
"다양하게 그려보고 싶지만, 모델 구하기가 힘들다 보니 저랑 비슷한 또래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변화가 없다는 느낌도 받죠. '배부른 돼지'라고 할까요? 몸에서 그런 느낌이 나는 대상도 그려보고 싶어요."
90년대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면 2000년대 들어오면서 부터는 뭉개졌다. 초기 인체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대상에 충실하기 위해 근육이나 골격 등을 연구했지만, 지금은 인체가 풍기는 표정이나 생각, 분위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그림이 가식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죠. 평소에 술을 좋아하다 보니까 제가 밝아보이나 봐요. 사람들은 호탕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림이 제 실제 모습이죠. 일정부분 의도된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작업에는 분명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거든요."
벌거벗은 남자. 무채색 톤으로 거칠게 그려진 인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지쳐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 현대인들의 삭막함이다. 그는 "작업하면서 현실과 부딪쳐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배경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인체 하나만 가지고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화면 전체가 이야기거리가 되면 어떨까 싶어요. 어떠한 상황 속에서 인체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죠죠."
10월 전북예술회관에서 일곱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캔버스 안에 들어있는 안스러운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전시 주제도 '휴(休)'. 그러나 그 휴식도 희망이 아닌, 절망적이고 무기력할 때 쉴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다.
"가끔 예쁘게 그려야 그림이 팔리지 않겠냐는 말을 들어요. 하지만 저는 제 그림이 어둡고 침침해서 안팔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안좋으니까 안팔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감동을 주지 못한 거죠. 더 노력해야죠."
그는 아직 미혼이다. 남들처럼 처자식 거느리며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현실때문에 작업을 등한시 할까봐 두렵다. 하루 12시간씩 작업실에 처박혀 그림만 그리다가 심심하면 코르크마개를 공 삼아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신세지만, 그는 작업이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면 혼자 사는 걸 택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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