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기획취재부장)
수면 위와 아래를 수차례 오가며 사회적 이슈만을 만들고 뒷전에 앉아있던 전주-완주 통합 문제가 최근 들어 사람들의 입줄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엔 지방행정구역 개편이란 전국적인 논제가 제기되면서 지역적인 특수성을 벗어나 전국적인 물결와 함께 흐를 수밖에 없어, 뭇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통합의 대표적인 사례는 1998년 4월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을 엮어 출범한 통합 여수시이다. 통합 여수시는 여수반도 통합이란 힘을 기반으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유치, 성공적인 통합 사례란 평가를 받고 있다.
통합 여수시가 출범하기까진 숱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1994년 4월엔 여수시의 반대, 같은 해 5월엔 여천시와 여천군의 반대, 이듬해인 1995년 3월엔 여천시의 반대에 부닥치며 통합은 물건너 가는듯했다.
3개 시군 모두가 통합이란 깃발 아래 모인 때는 1997년 9월. 통합의 실마리는 기득권을 가장 많이 가진 여수시가 통합 시청사를 여천시에 양보하면서 풀렸다. 협상과 타협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내놓고 상대를 배려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이다.
통합 여수시와 똑 같은 시기에 시작된 무안반도 통합은 참여 자치단체가 감정의 골만을 넓히며 무산되었다. 목포시와 무안군, 신안군은 1994년 4월, 1995년 3월, 1998년 3월 등 3차례에 걸쳐 주민의견 조사를 실시했지만 번번이 무안군의 반대로 실패했다.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무안군민들 사이엔 강자인 목포시가 일방적으로 통합을 밀어붙인다는 피해 의식이 자리 잡았고, 일부 정치계 인사들의 입김이 정도를 심화시켰다.
전주-완주와 지리적 특성이 가장 유사한 충북 청주시와 청원군도 2006년 9월 청원군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되었다. 통합이 무산된 후, 청원군은 오히려 시 승격을 위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강자인 청주시에 맞서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정면 대응이란 인상이 깊다.
수많은 협상의 이면엔 강자의 힘의 논리와 약자의 버티기란 기본 공식이 깔려있다. 강자가 협상 테이블에서 힘 자랑에 나서면 약자는 벼랑 끝에 서기 마련이다.
최근 완주군 임정엽 군수가 '군의회와 군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전제로 전주-완주 통합에 원칙적인 찬성론을 거론한 이후 주요 인사들이 잇달아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1992년 양 자치단체의 통합이 거론된 후 가장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느낌이다.
통합이 성사되기까지 가장 우려되는 점은 통합으로 입지가 좁아진다고 판단하는 정치인의 방해 공작과 강자인 전주시의 힘을 앞세운 협상. 완주군에 흡수 통합이란 인상을 던져주면 아예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못한다. 필요하면 과감한 양보도 각오해야 한다.
행정구역 통합이란 주제는 행정학 분야이지만 현실적으론 정치적인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민감한 통합 문제는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판을 내주면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여론을 호도하며 판깨기에 나설 수 있다.
이번엔 전주시민과 완주군민들이 협상의 중심에 나서야 한다. 반대 논리의 단골 메뉴인 세금 상승, 혐오시설 떠넘기기만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전주와 완주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높은 지역이다. 지리적으로도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충분한 지역이다. 이젠 알량한 정치꾼들의 빗나간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민의 정치를 강화할 때다.
/김경모(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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