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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사람] 전주 전동 '스타 양복점' 김병수씨

맞춤양복 33년 단골고객 6000여명…약속 지키는 마음 한땀한땀 정성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양은 사라지진 오래. 1000원짜리 우산을 쉽게 사서 쓰고 버리는 요즘, 우산 수리공 또한 찾아볼 수 없다.

 

그 옛날, 우리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지는 직업들의 자리에는 새로운 직업이 들어앉았지만, 이 가을 그들이 그립다.

 

요즘은 맞춤 양복을 입는 사람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양복을 입으려면 양복점에 가서 자기 신체 사이즈에 맞게 옷을 맞춰 입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성복이 국내 신사복 시장에 자리매김하면서 이제는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점차 양복점의 발자취가 사라져가고 있다.

 

양복점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여기 맞춤양복의 외길인생을 걸어오고 고객과의 약속과 믿음으로 지금까지 발자취를 이어가는 이가 있다.

 

33년간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 양복점' 대표 김병수씨(58).

 

"맞춤양복을 만드는 일은 제 삶의 일부이자 천직입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100%만족하는 양복을 만들면 뿌듯하고 흐뭇합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시간만큼은 10년이고 20년이고 앞으로 계속 할 생각입니다"

 

1990년대 초반 기성복에 밀려 양복점이 침체기를 겪으며 그 많던 맞춤양복점이 대부분 자취를 감춰 안타깝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지금까지 양복점을 찾아 온 고객은 6000여명이다. 지금은 단골고객이던 분들의 자녀분들도 찾아온다"며 "양복점이 없어질까 봐 양복점 운영을 계속해달라며 오히려 고객들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양복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양복일을 배워야겠다는 굳은 일념 하나로 무작정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그는 부산에서 한 양복점에 들어가 양복점 일을 하면서 양복점 사장의 허락을 받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야간으로 다녀 졸업할 수 있었다.

 

"야간학교를 다녀 양복점 일에 소홀할까봐 학교가 끝난 후 새벽2시까지 일을 하고 아침7시에 출근해 양복점일을 해 눈코뜰새 없이 바빴어요. 아마 그때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김 대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작은 에피소드를 꺼내 놓았다. 부산 양복점에서 배우던 시절 어떻게 양복이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중간 작업이 끝난 양복 상의를 몰래 살펴보고 제자리에 갖다 놓았는데 그 다음날 '이 옷 누가 건들었어? 빨리 자수해' 사장님의 호통소리와 함께 꿀밤도 맞고 많이 혼났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정식으로 양복점을 운영한 것은 1975년 군 제대 후 지금의 '스타 양복점'을 시작하면서부터. "스타라는 이름 멋있지 않나요?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자, 최고가 되고 싶은 뜻으로 지었어요"라며 양복점 이름에 대해 말했다.

 

스타양복점은 비록 맞춤양복을 찾는 이가 줄어 현재는 한 달에 20여벌 남짓 양복을 만들지만, 80년대는 한 달에 100여벌을 만들 정도로 고객이 많고 전성기였다. 그때는 너무 바빠서 단 1분도 앉을 시간도 없고 작업 도중 코피를 흘리는 날이 허사였다. 심지어는 장티푸스에 걸려 잠시 일 손을 놓고 쉬고 있는 도중에도 고객이 찾아오면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는 그는 "그때는 정말 아팠다. 너무 급해 바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객을 위해 아파도 일을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정신력으로 했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은 이 일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가끔씩 기성복업체에서 양복점 일을 접고 기성복 매장으로 바꾸라는 권유도 들어오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찾아 온 고객들을 위해 권유가 들어올 때마다 정중히 거절한다.

 

"기성복이 불편해 다시 양복점으로 찾아오는 고객이 있어요. 그 분들이 오실 때 스타양복점이 없어진 것을 알면 얼마나 많이 서운해 하시겠어요"

 

요즘 양복점을 찾는 고객은 체격이 커서 기성복이 맞지 않는 고객과 특수체형을 가지고 있는 고객 등이 자주 찾아온다고 말하는 그는 "사람마다 신체체형이 다르다 옷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고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 있고 흐뭇하다"고 말한다.

 

양복 일을 천직으로 삼고 기술향상과 고객만족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33년 동안 양복 제작에 몰두하는 그는 "손으로 한 땀, 한 땀씩 양복 한 벌에 정성과 땀이 들어가는 수제양복은 작품이다"며 "고객의 팔다리, 허리사이즈, 가슴둘레 등 신체에 딱 맞게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부상태와 신체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면 다른 직업을 선택하겠지만, 자녀도 다 성장했고 돈에 대한 욕심은 이제 없습니다. 양복점 일을 계속 하면서 단 한분이라도 찾아오는 고객을 위해 항상 이곳에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양복점을 운영 할 거라는 김씨는 고객과의 믿음과 신의를 중요시하고 양복점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진정 장인 혼이 깃든 신사맞춤양복 디자이너다.

 

도휘정·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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