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19일 발굴성과·현장공개…탑 창건 내역 등 관심집중
익산 미륵사지 탑의 창건 내력을 밝혀줄 수 있는 금제 사리기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륵사지 서탑 해체 발굴조사단인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제 제30대 무왕이 창건한 미륵사지 서탑(西塔)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금제 사리기(舍利器)를 비롯한 중요유물들이 확인됐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19일 오후 2시 30분 발굴현장에서 유물과 함께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금제 사리기 공개는 이번이 처음. 미륵사지 서탑 금제 사리기 명문은 18일 현재 문화재연구소에서 판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리기는 석가모니 부처의 유골인 사리를 담는 그릇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윤덕향 전북대 교수는 "보통 사리기 명문에는 사리 연혁이나 불교 경전, 탑을 조성 내력 등을 적었었다"며 "미륵사지 탑과 관련된 것이라면 사리기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겼을 사리 또한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륵사지 금제 사리기는 백제 사리기로서도 의미가 있다. 백제 사리기 중에서는 왕흥사지 사리기에 이어 두번째 발굴된 것이기 때문.
2007년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발견된 사리기를 통해 왕흥사지 목탑이 백제 창왕 시대인 57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 왕흥사 창건 연대(600년)와 차이가 나 논란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삼국유사」 무왕조(武王條)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무왕(600~641)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로 향하고 있었을 때 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왕비가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소원하여 못을 메우고 탑과 법상, 미륵삼회전, 낭무의 건물을 건립하고 미륵사((彌勒寺)라 이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창건시기는 밝혀지지 않아 이번 금제 사리기 발굴이 미륵사지와 관련해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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