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사람 중심의 공간을 설계하죠"
'부모 이기는 자식은 없다'고 여겨 공대를 갔다. 당시 여학생 숫자는 가뭄에 콩나듯 했다.
졸업 때가 되면 들어오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매일 설계도면과 씨름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3D 업종'이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것도 못하냐'고 말했다.
그로부터 30여년. 그는 아직도 건물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쉼없이 짓고 부수는 공사중인 현장에 있다. 건축사협회 전북지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인 김희순씨(55·율그룹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현재 도시는 본래의 철학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건축은 공간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그 형태에 집착하기 쉽지만, 기능이 우선돼야죠. 건축은 사람과 관계 맺으며 소통에 물길내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우선입니다."
이런 철학을 갖게 된 것은 다양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졸업 후 곧장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해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는 이해의 폭이 넓어져 현장 실무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1992년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건축사였던 남편과 함께 '부부건축사 1호'로 율건축사사무소를 열었다. 좀 더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쉽진 않았어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일을 맡아 성취감이 줄었고,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일도 녹록치 않았구요. 술이 먼저인 인간관계가 싫어 원칙대로 처리하다 보니, 일의 속도는 더뎠죠. 오랜 고생끝에 일 잘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설계를 맡은 건물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민원을 상대할 때가 가장 큰 고역이었다. 사무실로 몰려오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면서도,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시켜야 했기 때문에 부담감에 잠도 오지 않았다고. 설계자인 자신과 발주처의 생각이 달라 첨예하게 대립되는 순간도 다반사였다.
"전북대 공대 건물 8호관을 맡았는데 저는 토속 벽돌을, 학교측은 빨간 벽돌을 고집해 실갱이를 벌였죠. 설득시키며 지난한 시간을 견뎌내는 것도 능력입니다. 건축사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평가받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 건물에 대한 기억으로 그 사람이 평가돼요. 그래서 더 무섭죠."
건축은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일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 그는"공간에 대한 자부심은 평당 가격이 상승해서가 아니라 공간에 관한 관심이 각자의 성찰로 이어질 때 집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 같다"며 "건축이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자체가 공공 디자인을 고민할 때 일관성을 갖고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형태가 따라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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