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문화교육부장)
정말 막나가는 시대인 것 같다.
막장 범죄,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한창 유행이더니, 광고카피에 '개고생'이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다. 막말과 반발은 일상화됐다. 시도 때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너나없이 부딪치고 들이대고 깔깔거린다. 막말의 대명사 김구라는 요즘 거의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MC로 섭외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구설수가 잦아 툭하면 물의를 빚는 등 '남 욕하면서 먹고사는 사람' 이라고 비난 받지만,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청자들에게 먹힌다는 뜻이다.
왜 이처럼 막말과 막장이 방송을 휩쓸고 있는 것일까? 팍팍해진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 없는 젊은이들, 88세대, 청년실업이 100만명….
젊은이들만 그럴까? 그건 아니다. 어린 아이들도 무거운 학업의 굴레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유치원생들도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려서부터 이 학원, 저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고 주변은 온통 경쟁상대 뿐이다. '놀이'가 무엇인지 모르고 성장기를 지낸다.
중장년 기성세대도 하루살이가 버겁다.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일상은 무겁고 미래는 암울하다. 내 자녀들만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들을 더욱 옥죈다. 옳은 길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분위기에 이끌려가고 있다.
모두가 깜깜하고 숨 막히는 현실이다. 어딘가 배출구가 필요하다. 방송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막말 예능프로나 막장 드라마는 우리사회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번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막장의식과 막장의 분위기는 우리 사회에 상당히 넓고 깊게 퍼져있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선동이 앞선다. 교육계는 대립의 평행선을 긋고, 사회는 갈등하고, 국회는 폭력이 난무한다.
그러다보니 급기야는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나섰다. 조관일 사장은 언론사에 보낸 글에서 '막장'이라는 말로 석탄노동자들의 숭고한 노동을 폄훼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갈 데까지 다 가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폭력과 불륜 등에 '막장'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석탄광 제일 안쪽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성실하게 땀흘려 일하고 있는 사원들과 그 가족들을 가슴아프게 하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막장은 꽉 막힌 막다른 곳이 아니라 계속 전진해야 하는 희망의 상징"이라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최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막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따지고보면 막장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것은 석탄공사의 책임도, 공중파 방송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의 삶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조 사장은 "최일선의 사원들은 막장을 뚫어 검은 보석같은 석탄이 쏟아져 나올때 사원들은 '착탄(着炭)'이라며 환호한다"고 말했다. 심마니로 말하자면 "심봤다"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오늘날의 막장에서 우리사회의 새로운 희망이 솟구쳐 오르길 기다려본다.
/이성원(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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