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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새완주요양병원 유창훈 과장

운동권 의사서 빚더미 인생…특별한 재활요법 봉사 손길

노송병원을 운영하다 부도를 내 큰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유창훈 새완주요양병원 과장. 고단한 삶 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의 손길을 펼치는 그의 미소가 아름답다. (desk@jjan.kr)

1980년 전북사대부고 3학년 재학시절 5.18 광주민주항쟁 기사가 실린 타임지를 번역해 2만여장의 유인물을 뿌리다 구속돼 제적. 81년 남성고 편입학 후 전북대 의대 입학. 85년 전북대 학내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 86년 고려대 국문과 입학. 노태우 6.29 선언으로 88년 전북의대 복학. 유급과 휴학을 거쳐 95년 졸업. 97년 정읍 칠보의원 개원. 2005년 전주노송병원 이사장 취임. 2007년 부도 후 법정에서 집행유예 판결.

 

운동권 출신 의료인으로 대형 병원을 경영하던 중 100억원대의 부도를 내고 빚에 시달리다 이제는 한 농촌 병원의 평범한 월급쟁이 의사로 있는 유창훈(47) 씨의 인생 역정이다.

 

그런 그가 온 몸을 던지는 치료법으로 굴곡진 삶의 주름살을 펴나가고 있다.

 

토요일인 지난 17일 오전. 완주군 봉동읍 제3공단 인근 주택가에 위치한 '새완주요양병원' 가정의학과 진료실.

 

진료카드가 수북이 쌓인 채 환자를 맞는 반백의 의사는 잠시도 의자에 앉아있을 겨를이 없다. 환자에게 증상을 묻고 청진기와 몇 가지 의료 기구 등을 이용해 처방을 내리고 주사실이나 물리치료실로 보내는 일반적인 진료실 풍경과 달리 유 과장의 치료법은 매우 독특하다.

 

멀리 정읍에서 소문을 듣고 내원했다는 김은수(43) 씨를 앞에 둔 유 과장은 문진을 한 뒤 의자에서 일어나 김 씨의 목과 어깨, 허리 등을 만져나갔다. 이어 김 씨를 침대위에 오르게 하고 손과 팔꿈치에 체중을 실어 환자의 어깨, 등, 목, 골반 등을 압박했다. 이어 유 과장은 김 씨를 의자에 앉힌 뒤 가느다란 주사기로 통증 부위를 콕콕 찔러나갔다. 식염수가 든 주사기로 다연발총을 쏘듯 바늘로 자극하는 TPI(Trigger Point Injection) 요법이다. 10여분의 치료가 끝나자 환자는 얼굴이 환해지며 불편했던 몸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한다. 이어 정읍에서 함께 왔다는 고광수(48) 씨도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유 과장은 같은 방식으로 환자를 돌봤다.

 

이번에는 여성 환자. 수술이 무서워 대전에서 온 윤희순(55) 씨다. 디스크로 40여일 째 입원 중인 윤 씨는 업혀오다시피 병원에 왔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걷는다. 윤 씨는 의사가 직접 온몸으로 해주는 물리 치료와 TPI, 그리고 몇 가지 도수체조와 운동을 병행하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믿는 표정이다.

 

환자 1인당 10분 이상 걸리는 오전 진료가 끝난 점심시간. 유 과장이 회진에 나섰다. 3층 병실에 도착한 그에게 환자와 동일한 식사가 제공됐다. 병실에서 밥을 먹는 이유를 묻자 '시간이 없어서'라는 대답과 함께 환자와의 대화가 치료에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한 끼를 때운 유 과장이 다른 여성 병실에 들어선 순간 환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연식정구 출신으로 몸 왼쪽이 마비된 중풍환자 한 모(46) 씨에게 윗몸일으키기 70개를 시키며 자신도 빈 병상에 올라가 같은 동작을 시연한다. 한 씨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솟았지만 성취의 기쁨에 얼굴이 상기된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명의' 재활의학과 이강우 교수의 치료 장면이 오버랩됐다. 이 교수는 수술이나 고가의 영상촬영보다는 먼저 환자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 약물과 맨손체조로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하는 대한민국의 명의다.

 

병실을 나오던 유 과장은 자신도 한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며 과거를 털어놓았다. "사실 전 큰 빚을 지고 삽니다. 2007년 노송병원을 운영하다가 대형 부도를 냈죠. 임금체불로 전과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갚는다고 갚았지만 감당하기 너무 벅차 좌절도 했습니다."

 

벼랑에 선 유 과장은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현실을 헤쳐 나갔다. 부도 당시 동료 의사들이 채무를 피해 타지로 흩어졌지만 혼자서 빚을 상환하기 시작한 것. 채권자들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를 진짜 괴롭힌 것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의사'라는 주변의 시선이었다고 한다. 그 때마다 그는 '주어진 현재 조건에서 최선의 길을 찾자'는 좌우명을 되새겼다. 그가 취재에 응한 것도 남은 채권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신뢰를 주기 위해서란다. 이제는 채권자들과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됐다며 부인과 두 자녀에게 매달 50만원의 '쥐꼬리 생활비'를 주면서 처가살이를 하는 유 과장의 눈매에서 '부도 인생'을 탈출하겠다는 의지와 진정성이 느껴졌다.

 

"2~3년이 지나면 빚을 청산할 수 있다"며 미소를 짓던 그는 서둘러 무료진료봉사에 나섰다. 임시로 마련된 진료실에서도 유 과장은 자리에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전신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그에게 '체력 손실이 많겠다'고 묻자 "평소 관심을 갖고 공부한 치료법이 익숙해졌고 고질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람이 크다"는 대답만 했다.

 

봉사활동 시간에 차라리 다른 병원 당직을 하며 수입을 올릴 법도 하지만 매주 토·일요일이면 자신을 기다리는 '가난한 환자'를 찾아가는 유창훈 씨.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향해 끊임없이 내뻗는 봉사의 손길을 보면서 어쩌면 그는 이미 사회에 진 빚을 모두 갚고 '부도 인생'을 극복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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