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함께한 무대서 큰 감동 안겨 준 청파 강낙승옹 타계
"땅 속에 들어갈 때까지 가야금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던 청파(淸坡) 강낙승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83-나호 이리향제줄풍류 보유자인 강낙승 선생이 지난 13일 오후 7시께 별세했다. 향년 94세.
1916년 무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전통가락에 관심이 많아 농악굿이 열릴 때면 그 소리만 듣고서도 장단을 멋들어지게 쳐대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경찰에 입문한 선생이 전통음악과 정식으로 연을 맺게 된 것은 1938년 고제시조와 북, 가야금을 배우면서부터. 1946년에는 고창군 흥덕면 진양수 선생으로부터 향제 줄풍류 가야금의 전 바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스승이 익산으로 이사를 하자 그 역시 익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까지 향제 줄풍류를 전수받았다.
선생이 마흔이 되던 해인 1956년에는 직장을 이리시청으로 옮겨 아예 익산에 정착했다. 그 과정에서 거문고와 양금, 단소 등 국악의 여러 분야를 배우며 선생은 다양한 기능과 실력을 쌓았다.
전통노래인 정가(正歌)에도 관심이 많아 정경태 선생으로부터 시조와 가사, 가곡을 배웠다. 1968년에는 이리정악원을 창립했으며, 1973년에는 남창가곡 26곡을, 1975년에는 가사 12곡을 독창발표했다.
선생은 1985년 가야금을 세부예능으로 이리향제줄풍류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리향제줄풍류는 옛 이리인 익산 지역에서 전승되는 음악으로 가야금과 거문고, 양금, 단소, 해금, 대금, 피리, 장구 등 8가지 악기로 8∼15개의 곡이 연이어 짜여 있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는 기악곡을 연주한다.
전주전통문화센터의 초대를 받았던 2008년 '명인의 밤' 무대는 모두에게 감동을 줬던 선생의 대표적인 공연. 아흔이 넘은 나이에 제자들과 한 무대에 오른 선생은 "이제 나이를 너무 먹어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공연 같아 오늘 공연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워낙 고령이었던 선생은 귀가 어두웠다. 그러나 베토벤도 청력을 잃었었다며, 연주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청장년층이 대부분인 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에서는 음악적 지주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선생은 1976년 전라북도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전북도립국악원 교수와 1997년 한국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 회장을 역임했다.
발인은 15일이었으며, 장지는 익산 팔봉공원 묘지다. 유족으로는 4남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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