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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 그렇지 않은' 금메달의 감동

이동희(시인·전북문인협회 회장)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올림픽이 시작되면서부터 4분 7초 연기를 마칠 때까지 선수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마음 졸이며 맺은 결실이다. 순간이 아니라 노심초사한 시간이 누적된 결과였다.

 

김연아 선수의 출연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TV 화면에 어느 회사의 광고가 눈길을 끈다. '다 그래'라는 통념을 뒤집으면 '다 그렇지 않은' 진실이 있다는 메시지를 코믹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번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도 '다 그런' 금메달의 통념을 뒤집어 보니 '다 그렇지 않은' 금메달이었다. 여느 금메달과 색깔은 같았으나 그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우선 피겨스케이팅에서 매번 되풀이된 올림픽징크스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각종 대회를 휩쓸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정작 올림픽무대에 서면 밀려드는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상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는데, 김연아 선수는 달랐다. 오히려 마음 편하게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충실하게 준비한 자만이 부릴 여유였으며, 오직 자기를 의미의 중심에 두고 가치의 대상으로 삼는 신세대다운, '다 그렇지 않은' 금메달이었다.

 

대부분 스포츠가 힘과 기교의 경쟁이지만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예술미까지 가산된다는 점이 다르다. 피겨스케이팅은 음악의 조력과 안무의 배려 없이는 변사 없는 무성영화나 다름없다. 쇼트프로그램을 압축해낸 007오리엔탈특급 주제음악의 강렬한 효과, 프리스케이팅을 온전히 커버해 낸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의 진중함이,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가 언급한 것처럼 '공기 중의 가벼운 깃털'로 김연아를 날아오르게 했다. 힘과 기술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슬기롭게 융합시킨 신세대다운 패기를 보인, '다 그렇지 않은' 금메달이었다.

 

경기 직후 '누구에게 감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점도 신세대다웠다. 엄마 언니 아빠 코치 트레이너…등 주변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을 한참 열거했다. 그래도 끝내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은 김연아 선수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세계 챔피언이 된 아들이 자랑스러워 '대한국민 만세'를 외치던 옛날 어느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스포츠 스타들의 인간승리가 반드시 애국심의 발로여야 할 필요는 없다. 국위선양이 스포츠의 진정한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다만 결과적인 부산물일 뿐이다. 한 사람의 스포츠 영웅보다, 절대다수의 스포츠 애호가들이 많아야 건강한 나라다. 김연아 선수는 아직 국가주의에 물들지 않은 신세대 스포츠 영웅의 자격을 갖춘, '다 그렇지 않은' 금메달의 주역이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김 선수의 장쾌한 승리를 지켜보는 필자의 손에는 470쪽이 넘는 책-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들려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한 인간의 처절한 고백 앞에서 가슴 떨었던 감동이 금메달의 그것과 오버랩 된다. '다 그렇고 그런' 비뚤어진 통념을 뛰어넘어 '다 그렇지 않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김 변호사에게도 '다 그렇지 않은' 금메달을 안겨주어야 마땅하다.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사람을 낳는다.(時造英雄兮) 또한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도 한다.(英雄造時兮) 김연아 선수나 김용철 변호사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 점에서 진정한 금메달의 영웅들이다.

 

/이동희(시인·전북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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