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열매 먹어도 '무농약' 꿈 영글어"…귀향 뒤 전문학교서 교육받고 사과 과수원 운영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 다른 것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아직 젊어서 몇년 더 고생하겠다는 각오로 '무농약'을 성공시킬 것입니다"
박용주 장수군 귀농인연대 회장(49)은 장수군내 사과농민 700여명중 단 3명뿐인 '무농약'인증을 받았다. 장수군에 250여명이 있는 저농약 인증은 2004년에 받았고 무농약은 시행착오를 거쳐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 2008년에 인증받았다.
무농약 환경농업을 고수하다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벌레가 사과 열매를 갉아먹고 병에 걸리는 등 수확량이 '관행농업'의 10% 수준에 머무른다.
그러나 손해본다고 지속가능한 생태농업 '무농약'을 그만둘 수 없다. 박회장은 "돈을 벌려고 농촌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먹고, 나를 믿는 소비자가 먹을건데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환경농업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광주에서 웨딩샵을 운영하던 박용주 회장은 마흔살이 된 2001년 '어느날 갑자기' 귀농을 결심했다.
임실출신으로 임실고·전주대를 졸업한 후 무역회사를 다니다 웨딩샵 개인사업을 하면서 '그럭저럭' 괜찮게 유지됐으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생활이 싫었다.
성당의 생활협동조합에서 소비자운동을 하던 동갑내기 부인 이귀라씨는 "우리가 농사지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 나누자"며 귀농을 실천했다.
딸 민채, 아들 광익이 각각 초등학교 5학년·3학년일 때다. 박회장은 농촌 출신이었으나 농업을 몰라 남원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서 3개월간 숙박하며 농업을 교육받았다. 이후 여주에서 배농사로 1년을 보냈고 진안 마령에서 별장관리 겸 4000여평의 사과 과수원을 운영했다.
사과농사를 짓고 싶었던 그는 2003년 때마침 장수에서 매물로 나온 사과과수원 3800평을 구입해 장수 계남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어 2006년에는 2150평을 추가 구입해 지금의 규모를 갖췄다.
하지만 과수원이 방치된 탓에 나무가 오래 된데가 키가 높아서 수종 갱신에 나서야 했고 '키낮이 과수원 조성사업'을 거치고 3년가량이 지난 뒤에야 수확이 시작됐다.
그는 농약을 쓰는 화학농업으로 몇년간 연매출 8000만원 이상을 기록하며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렸지만 "이 것이 아니다"싶어 2006년부터 무농약에 도전했다.
화학농업때도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전주·서울을 비롯 광주·대전·부산 등지의 소비자와 100% 직거래로 사과를 판매했다. 하지만 무농약에 의한 병충해 때문에 수확량이 10% 수준으로 감소해 고정고객의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액비동호회 활동과 끊임없는 투자·연구개발로 석회보르도액, 석회유황합제, 식물성오일 등을 사용하는 무농약에 도전했고 행정당국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인증은 인증일 뿐. 무농약 수확량은 2008년 '관행농업'의 10%에 불과했고 지난해에는 사과를 거의 '못땄다'. 요즘 인기있는 도시민 대상 '사과나무 분양'을 그는 하지 못한다. 사과나무 분양은 연간 10만원을 받고 도시민에게 사과나무 한 그루의 농사를 짓게 하고 생산량 20㎏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무농약이라 생산량 보장이 불가능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도 '까먹어야'했다. 사업을 정리했을 때 3억5천만원의 적지않은 자금이 있었고 관행농업으로 적지않게 소득을 창출했으나 지금은 '환경농업'을 하느라 적자로 돌아서 몇천만원의 빚을 졌다.
박회장은 농업용 관정에 600만원, 전기설비 300만원, 도로포장 2000만원 등 도시에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기반시설을 전부 또는 일부 자신이 부담해 조성해야 했다. 선별기, 트랙터, 저온저장고에도 자금이 막대하게 소요돼 빚을 져야 했고 집을 짓는데도 대출을 받았다.
박회장은 올해까지 투자가 마무리됐고 실패와 시행착오가 거의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품종도 바꿨다. 그동안 홍로와 후지가 8대 2였으나 올해부터 2대 8로 바꿨다. 홍로는 추석에 맞춰 9월에 수확할 수 있으나 병충해에 약하다. 후지는 11월에 수확하는 만생종이지만 병충해에 강하다.
올해 수확량은 관행농업의 50% 까지 올라올 것으로 전망하지만 어쨌든 무농약은 올해도 손해가 불가피하다.
'아직 젊다'는 박회장은 몇년 더 고생을 감수할 각오다. 100% 무농약에 의한 정상수확, 그가 추구하는 목표다. 그를 믿는 전국의 고객들, 그들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
'웰빙시대에 오히려 벌레먹고 흠집있는 사과가 인기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부에서 그러긴 한데. 모양이 좋으면 맛도 좋고, 제값을 받을 수 있잖아요'라고 반문한다.
2008년부터 무농약에 의해 손상된 사과는 깨끗한 부분만을 잘라내 즙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100% 원액인 만큼 맛이 다르다.
"농촌에서 안정되게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하려면 10년은 걸려야 한다"는 그는 "농촌에 희망이 있다. 노력하면 대자연속에서 행복한 삶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다"고 (귀농을 염두에 두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말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는 지난해 2월까지 장수 계남에 살았고 전국농민회 계남면 회장, 카톨릭농민회 장계분회 총무, 친환경사과작목반 액비동호회 회장 등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2월 그는 과수원 안에 목조주택을 지었다. "대충 지었다"고 그는 말하지만 산속에 어울리는, 나무로 지은 멋진 집이다.
인터넷 검색어이기도 한 '장수민채네사과'라는 그의 브랜드는 딸 이름에서 따왔다. 어느덧 딸은 우석대 특수교육과 2학년이 되었고 아들은 부모의 권유로 충남 홍성에 있는 대안학교 성격 농업전문학교인 풀무농업고 3학년을 다니고 있다.
지난달 하순, 봄날같은 날씨속에 과수원 사과상자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나서 "주말에 사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어 보내달라"했더니 "안사람이 얼굴 내는 걸 싫어한다. 사진을 못 보낼 것"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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