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본고장 전주, 전통부채 관심 적어 아쉬워"
선풍기가 나오면서 부채바람은 시들해졌다. 에어콘에 치여 부채 만드는 일은 돈 되는 일과는 더욱 멀어졌다. 그런데도 선자장 방화선(53)씨는 1년 365일 공방으로 출퇴근한다. 손가락이 대나무에 베이고 대가시에 찔려서 곪기 일쑤지만 누구든 그가 만든 부채를 들고 다니는 것만 봐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여름이 다가오니 마음이 바빠졌다. 무더운 날이 가까워오면 부채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다. 그의 부채를 써 본 사람은 그가 얼마나 꼼꼼하게 공을 들여 작업하는 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의 아버지 고(故) 방춘근씨(전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태극선 기능보유자)로부터 대물림된 기술 덕분이기도 하다.
방춘근씨는 어린 시절 그에게 부채살 간격을 균일하게 잘 놓는다고 칭찬했다. 대나무 살 뜯느라고 어머니의 앞니가 절반만 남았을 만큼 고달픈 삶이었지만, 그래도 남은 건 부채였다.
"'괴롭네', '힘드네' 뭐 이런 저런 한탄을 해도 이놈만 붙들고 있으면 마음이 얼마나 편한 지 몰라요. '부채 없으면 못살아'하는 마음은 아니었어도,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부채에서 찾았습니다."
부채는 형태에 따라 넓은 나뭇잎 모양의 방구부채(단선)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쥘부채(접선)로 나뉜다. 대개 집안에서 부녀자들이 사용하던 부채가 방구부채, 남자들이 외출할 때 들고 다니던 부채가 쥘부채다. 재료, 크기, 칠에 따라서도 다양한 이름이 붙여진다. 그는 쥘부채보다 만들기 어렵다는 방구부채를, 태극선에서 최고의 장인을 꿈꾼다. 그는 "이제는 기계로 태극선을 만든다지만, 손으로 만든 부채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설명했다. 한지를 일일이 찢어 만든 태극무늬는 품격을, 생들기름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풍스러운 멋을 더한다는 것.
부채의 대중화를 위해 부채 만들기 체험을 전국에 퍼뜨린 주인공도 다름 아닌 그였다. 그가 서울에서 시도한 부채 만들기 체험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전국에 부채강사로 불려다녔다.
"낡고 성가신 물건으로 치부되던 부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반가웠다"는 그는 "하지만 내가 바빠 아이들한테 신경을 많이 못써준 게 아직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노력이 쌓여 지난 4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태극선 기능보유자가 됐다.
"부채 본고장인 전주에서도 단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닥나무가 있었고 한지가 있었던 전주에서 이것을 만들지 않으면, 누가 하게 될 지 정말 걱정입니다. 어려운 길이어도 자존심으로 이어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같은 바람을 담아 그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부채 공방을 마련, 자녀 송민희 송명화씨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전통부채 제작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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