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진짜 명품을 말하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강진 유배시절 아내가 보내준 낡은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게 줄 서첩을 만들었다.
치마를 잘라 만든 서첩이라 하여 '하피첩'으로 불리는 이 서첩은 200년 가까이 기록 속에서만 존재하다 2006년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KBS 1TV 'TV쇼 진품명품(일요일 오전 11시)'을 통해서다.
1995년 3월 5일 첫선을 보인 이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의 고미술품·골동품 감정프로그램으로, 16년간 5천점이 넘는 의뢰품을 소개하며 감정평가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진품명품'이 27일로 801회를 맞는다. '세월 속에 묻혀 있던 명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이제 마니아들의 지지를 업고 1천회를 향해 달려가고있다.
◇어떤 유물들이 소개됐나='진품명품'에서 소개된 유물의 대부분은 글씨와 그림, 도자기 등 고미술품이지만 일제시대 선풍기나 암모나이트 화석 등 독특한 물품도 많다.
'진품명품'의 김덕재 PD는 27일 "방송 초기에는 오래된 선풍기나 토스터 등 근대 유물을 많이 다뤘고 화석도 여러 점 소개했지만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점차 고미술품의 비중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대 유물의 경우 처음 발굴된 것이 아니라면 동일 품목을 여러 번 방송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고 화석의 경우에는 '자연유산에 금전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지적이 나와 비중을 줄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진품명품' 스튜디오에 출연한 유물은 총 2천512점(800회 기준). 종류별로 보면 도자기가 604점으로 가장 많고 그림 596점, 민속공예품 565점, 고서와 글씨452점, 근대 유물 141점 등이다.
여기에 출장 감정(총 720여곳)을 통해 소개된 유물까지 더하면 '진품명품'에서 다뤄진 유물은 5천392점에 달한다.
그 많은 문화재를 소개하면서 위작(僞作) 논란에 휩싸인 적은 없을까.
김 PD는 "그동안 큰 대과없이 방송이 나간 게 자랑스럽지만 3년 전 방송을 탄 오광대탈이 방송 하루만에 가짜임이 밝혀지는 등 위기의 순간도 몇 차례 있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 때문에 진품명품은 스마트 기기가 대세인 요즘에도 인터넷 접수를 받지 않고우편 접수와 현장 접수만을 고집한다. 조작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사진 심사를 하는 1차 감정부터 인터넷을 배제한 것이다.
◇진품명품이 남긴 기록들=16년째 방송 중인 프로그램인 만큼 '진품명품'만의기록도 많다.
역대 감정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2004년(467회) 방송된 '청자상감모란문장구'.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역상감 기법을 사용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12억원의 감정가를 기록했다.
이밖에 추사 김정희가 남긴 그림 '불기심란(700회, 감정가 10억원)', 석당 권협의 공신상 2점(456회, 9억원), 석봉 한호의 서첩(542회, 7억원), 안중근 의사의 글씨 '경천(739회, 6억원)'과 청화백자수조난문호(754회, 6억원) 등이 역대 최고 감정가 5위 안에 들었다.
진품명품을 통해 발굴된 유물도 많다.
앞서 소개한 다산의 하피첩을 비롯, 춘사 나운규의 무성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촬영 장면을 담은 유리 건판 필름, 수표교 미공개 사진 등이 진품명품을 통해 소개됐다.
한국 최초의 보험증서인 '소 보험증(1897년 발행)'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빛을 봤다. 사람이 아닌 소가 한국 최초의 피보험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한동안 신문을장식했다.
◇젊은 시청자 확보가 숙제="방송 초기에는 '진품명품이 감정가를 부풀리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죠. 하지만 그때는 고미술품에 대한 감정평가가 채 자리를잡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우리 프로그램은 그동안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 유물에 가치를 찾아줬다고 생각합니다."김 PD는 '진품명품'의 장수 비결로 '감정평가의 대중화'를 첫손에 꼽았다.
고서나 도자기뿐만 아니라 창고 등에 방치돼 있던 오래된 선풍기, 교자상 등도 때론 '근대 문화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렸다는 것.
김 PD는 "사실 유물을 너무 돈으로만 보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유물의가치를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기준으로 돈만한 게 있나요"라며 웃었다.
다만 의뢰인들이 대부분 일반인이다 보니 출품작 전시회나 도록 등을 펴내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 문화재를 다룬다는 이유로 '장년층 프로'란 이미지를 갖게 된 점은 아쉽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 PD는 "앞으로도 프로그램 운영에 큰 변화는 없겠지만 젊은 층의 관심을 끄는게 큰 숙제"라면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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