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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대의 거꾸로 쓰는 식탐일기] ⑩어느 진보적 맛 칼럼니스트의 '근시안'

전주비빔밥 상차림은 '넉넉한 인심'

전주비빔밥의 풍성한 상차림은 '넉넉한 인심' 을 반영한 것이다. (desk@jjan.kr)

진보적인 맛 칼럼니스트로 알려진 황교익 씨(49)의 블로그 '악식가의 미식일기'(blog.naver.com/foodi2)는 향토색 짙은 참살이 음식의 보물창고다.

 

그의 블로그엔 우리 음식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가 깐깐하고 담백히 수록돼 있다. 약간의 흠이라면 그리 친절하지 않은 말투와 나처럼 초심을 잃지 않아 얄밉다는 정도. 그가 지난 2일 자신의 블로그에 '전주음식 또는 한국음식의 문제점'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전주 mbc 방송 출연이 있었다. 전주에 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방송 프로가 있다는 것은 퍽 좋아 보였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그는 "한국에서는 아직 '맛있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가지고 있는 곳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든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누가 먼저 숟가락(을) 놓는가 하는 문제"라며 "한국에서는 딱 한 도시만 '맛있는 ○○'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가능성 있는 도시'로 서울과 인천, 전주, 통영, 광주, 부산 등을 꼽으면서도 "아직은 다들 가능성만 있는 것이므로 어디서 어떤 도시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그는 전주 음식의 문제라기보다 한정식의 문제일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전주가 이미 '맛있는 도시'이지 않으(느)냐 할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은 '맛있는 전통음식이 있는 도시'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며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반찬'에 대해 지적했다. 그 예로 당시 들렀던 전주의 한 비빔밥 전문점을 들었다.

 

처음엔 그 가게의 1인용 솥밥을 칭찬한 듯 보였지만, "그 앞에 깔리는 수많은 반찬들이 비빔밥 먹는 것을 방해"했다며 "저 반찬들은 흰밥을 먹을 때에나 맛있는 반찬이지 양념이 다 되어 있는 비빔밥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와 동행했던 아내도 "안주인이 밥을 비벼주는 서비스에 만족하면서 '그냥 흰밥으로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하며 비벼놓은 밥을 두고 툴툴거렸다."

 

숟가락만 먼저 놓는다고 '맛있는 도시'가 탄생하진 않는다. 실제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비빔밥으로 유명했던 곳은 평양과 진주다. 그러나 전북 사람의 탁월한 미각과 손맛을 바탕으로 김제를 중심으로 한 호남평야와 고·순·남(고창·순창·남원),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지역의 밭과 산악 지대에서 나는 '무한(無限) 재료'가 더해져 전주비빔밥은 '비빔밥의 대명사'로서 외식문화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요즘은 '원래 전주비빔밥은 부뚜막 위에서 잔반으로 비벼 먹던 음식'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잘만 팔린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나쁘지만, 1등을 기억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혹시 황 씨는 '전주비빔밥은 일제 강점기 이후에나 역사책에 거론됐다'는 사실을 중요시하거나, 한 상 가득 차려도 주목받지 못하는 자기 고향(경남 마산) 음식에 대한 열등감과 소국수주의(國粹主義)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여염집 비빔밥이 아닌 지극히 상업적인 공간의 음식을 두고 말간 콩나물국 하나만 놓고 먹어야 '진짜 비빔밥'인 양 주장하는 논리의 비약은 제쳐 두더라도, 그의 독설은 몇 해 전(2007년 개업) 어렵사리 문을 연 마이너(minor)한 가게에 퍼부어야 할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을 건 인터넷 쇼핑몰 '황교익의 명품식탁'(www.goodtable.co.kr)에선 명품 한우만을 취급해서일까? 결코 저렴하지 않은 그 가게의 비빔밥(1만 원)·호주산 육회비빔밥(1만2000원)·한우 육회비빔밥(1만8000원)에 대해선 유난히 관대한 모습을 보인 것은 왠지 부자연스럽다.

 

전주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한 상 차림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작된 전통'일 뿐이니 시원하게 버려도 된다"는 그의 '탈권위주의'에는 한없는 연대의 뜻을 보낸다. 다만 그 또한 초심을 잃지 않고 '사태의 뿌리'로 돌아갈 것을 간절히, 참 철없이 부탁하는 바이다.

 

김병대(블로그 '쉐비체어'(blog.naver.com/4kf)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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