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사 보광전 등 내부소실 5층 석탑도 원형 잃어
한국 연극 100년 역사상 베스트 작품중 하나로 꼽히는 '산불'이 지난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삶과 죽음을 한 덩어리로 응축시킨'산불'은 빨치산들과 과부들의 비극적인 애욕의 싸움을 통해 6·25 전쟁이 총칼 든 군인들만의 싸움이 아님을 보여준 대작으로 호평받았다. 6·25 전쟁이 남긴 또다른 상흔 중 알려지지 않은 것은 소중한 사찰이 소각되었다는 사실이다. 빨치산들은 6·25 전쟁 당시 은거하기 좋은 덕유산, 대둔산, 운장산, 지리산 등 소백산맥 줄기로 이어진 곳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로 인해 사찰을 훼손시키거나, 없애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국군과 경찰이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이들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사찰을 소각해버렸기 때문이다. 소백산맥을 끼고 있는 남원 천황사·칠상암, 임실 강진면 성좌암, 완주 운문사, 진안 심원사, 고창 내원암, 정읍 불출암은 다 타버려 절터만 남아있는 상태. 특히 순창은 인근 회문산으로 인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사찰의 피해가 심각했는데 강천사, 구암사, 만일사가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찰이다.
▲ 강천사(剛泉寺)
"강천사가 소실된 것은 1950년 12월 20일쯤이죠, 당시 11사단 20연대 1중대가 순창군 금과면과 순창군 팔덕면의 치안을 담당했는데, 이들이 강천사에 불을 질렀죠. 의용경찰이 있었는데도, 강천사에 불을 지른 것은 군인들이었어요. 당시 이 지역 역시 낮에는 한국군이 있었고, 밤에는 빨치산들이 있었습니다."
강천사의 아랫마을인 순창군 팔덕면 신기마을에 사는 김병관씨(80)의 증언이다. 순창과 담양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강천산은 빨치산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회문산과 가깝다. 또 산악지대로 연결되어 있어 당시 강천사 인근의 빨치산은 주로 가마골을 근거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강천사의 경우 보광전, 칠성각, 첨성각 등이 소실됐으며, 5층석탑도 원형을 잃었다. 5층석탑은 신라 일반형 석탑 양식을 기본으로 부분적으로 백제 석탑 양식을 반영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 구암사(龜巖寺)
구암사는 내장산과 백양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역시 회문산과도 그다지 멀지 않아 빨치산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빨치산들은 세력이 약화되고 국군과 경찰의 토벌이 강화되자 구암사를 근거로 저항했다. 하지만 국군과 경찰은 강하게 몰아붙여 많은 빨치산을 토벌했고, 이 과정에서 구암사와 그 아랫마을은 모두 경찰에 의해 타 버렸다. 구암사가 소각된 뒤 많은 빨치산들이 죽어 한동안 구암사 근처에 시신들이 남아 있을 정도라고 한다. 구암사 아랫마을에 사는 공필순 할머니(95)는 "(중략) 경찰들이 토벌하러 와서 구암사에 불을 질러버렸어. 그리고 올라가서 많은 빨치산들을 죽였어. 내가 한 참 뒤에 올라가 보니 빨치산들 해골이 여기 저기 보였어! 얼매나 무섭던지!" 라고 증언한 바 있다.
▲ 만일사(萬日寺)
"1952년 봄 대대적으로 빨치산 토벌을 했는데, 이 때 마을이 비행기로 폭격 돼 마을이 다 탔어요. 인근에 있는 안심마을도 그랬고. 비행기로 폭격한 시간이 대략 점심 때 였는데, 휘발유통을 떨어뜨린 후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휘발유통에 불이 붙어 확산됐습니다. 만일사가 빨치산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알려진 뒤에 들어온 경찰들이 불을 지른 것이죠." (박만선씨)
빨치산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바로 회문산은 현재 휴양림으로 개발되어 있는데, 휴양림 안에는 당시 빨치산 사령부가 있던 자리에 빨치산들의 활동공간을 모두 복원해 놓았다. 회문산 아래 쪽에 위치한 만일사는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모두 탔기 때문이다.
소각될 당시 만일사에는 법당, 칠성각, 요사채, 화장실 등이 있었다. 법당은 매우 오래된 건물이어서 남아 있었다면 문화재가 되었을 것이다. 법당에 모셔진 불상 역시 엄청나게 규모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불상은 철불이었는데 겉모양은 갸름했다. 이밖에 쇠부처님 세 분이 있었고, 40여 개가 넘는 불상이 있었다. 만일사가 소각될 때 절에는 5~6명의 스님을 포함해 안노장 스님이 절을 지키고 있었는데 화재로 인해 입적, 마을사람들이 스님을 화장시켰다고 전해진다.
/ 이병규 문화전문시민기자(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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