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출생인 황길현 시인(1933~ 2002)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0년부터 전남·북 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교편생활을 하면서 1959년 신석정 시인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으로 등단, 이후 『전북문학』과 『석정문학회』동인으로 활동하면서『앙가바리의 반항』외 5권의 시집과 제1회 '백양촌문학상'(1989)을 수상하면서 어둠 속에서도 빛과 순결 지향의 순박한 시인이었다.
울다
울다
생각하는 의미는
차라리
가슴을 찢긴
상흔의 언저리를
기루어 흘린 피에 목이 젖어
외롭게 몸부림치는 노래여
낙엽지는 눈물의 선회
빛을 부르는 대화 속에 밋밋한 연륜에의 바람을 키운다.
-「만종」에서, 1959
6·25는 그의 가족과 주변에 참혹한 참상의 흔적을 남기고 갔다. 어처구니없는 동족간의 살육과 모함 그리고 반목과 질시. 그리하여 억울하게 먼저 간 이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울다/ 울다', '가슴을 찢긴/ 상흔의 언저리를' '외롭게 노래(하거나)/ 낙엽지는 눈물' 뿐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평지의 길과 오름길 그리고 내림 길 이 세 길을 사람들은 다 걷고 있지만, 어느 쪽에 초점이 있는가가 문제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오름길에 매력이 있다. 그러나 다리가 짧다. 그렇다고 뒤돌아 설 수는 없다. 맨 뒤에라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 제2시집 『앙가바리의 반항』 「序에서」, 1974년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불만. 아무리 오르려 해도 다리가 짧아 뒤쳐질 수밖에 없다. '앙가바리'는 다리가 짧고 굽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경쟁의 대열에서 항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자포적 인식에서 세상과 맞서 있다.
이런 속에서도 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산골에서 산국(山菊)을 만나, '이슬의 힘으로/ 몸을 닦고', '싸늘한 체온을 / 부비어 땀흘리'(「山菊」일부)기를 꿈꾼다. '이슬로 몸을 닦는 - 산속의 국화'가 시인이 지향하는 고결한 정신주의라 한다면, '식어버린 이웃들의 체온을 부비'고 싶어함은 그의 따뜻한 인도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 몸부림 앞에
얼마나 값진
지구의 아픔을
노래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사나운
체온 앞에
떳떳할 수 있는
거울
그 앞에 세워 놓을
거울일 수 있을까
-시집 『그리고 다시』의 「서시」에서, 1979년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으려는 그의 도덕적 순결과 인도주의, 곧 '지구의 아픔- 노래'하고, '떳떳할 수 있는 - 거울'이 되어 '어느 날 만만치 않게 - 무르익은 존재'로 서 있고 싶어함이 그것이다.
왜곡되고 굴절된 시대의 아픔을 때로는 술로, 때로는 조용한 내출혈로 삭이면서 '순결'과 '저항'의 길을 지성적 서정으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다 미완된 숙제를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난 시대의 아웃사이더, 그러면서도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고 본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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