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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탕·육탕·콩나물 잡채·약식·더덕전…집집마다 '내림 음식' 별미

그때 그시절 이색 명절음식 / 설날 한 달 전부터 음식장만에 신경…대하찜·삼합탕·상어산적까지 다양 가짓수·화려한 색깔에 눈·입 '호강'

▲ 전주시내 한 대형마트 행사장에서 고객이 설 차례상 차림 시연회를 지켜보고 있다.

온가족이 한상에 둘러앉아 함께 숟가락을 드는 순간이 명절의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종갓집은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설을 앞두고 늘 해먹는 '특식'이 있게 마련. 향수를 자극하는 명절음식은 그 때 그 시절 시간여행으로 안내한다.

 

요리전문가 박영자 前 전주요리학원 원장(78·전주시 진북동)이 난생 처음 제삿상을 차린 건 17살. 이 기특한 소녀는 일 년에 15번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 며느리인 어머니를 돕기 위해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직접 해보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제사상을 차릴 때에도 어머니는 다른 집 며느리도 다 그렇거니 하고 생각했다. 시댁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데다, 대개 3박4일을 묵고 가는 일도 다반사였고, 한 끼에 서너 번은 상을 차려야 하는 걸 보고 자란 그는 어머니 솜씨를 고스란히 전수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운명. 손맛도 닮는 것인지 쉽사리 뚝딱뚝딱 해냈다. "상차림은 집집마다 다르기 때문에 배워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훈수를 두신 어머니는 요리만 잘 가르쳐 시집을 보냈다.

 

박 전 원장은 어머니가 한 달 전부터 설 음식 차곡차곡 준비하곤 했다고 기억했다.

 

"설·추석을 잘 치르기 위해 한 해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할 정도로 식재료부터 각별한 정성이 들어갔다"고도 했다.

 

 

한 달 전부터 만들어놓은 다식과 한과는 밖에 내놓으면 자연 바람이 냉장고를 대신했고, 콩나물잡채를 시작으로 나물·전 등을 내놓으면서 꼬박 한 달을 음식에 신경을 쏟았다.

 

그는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을 살펴보면 제수품 하나하나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선조들의 뜻을 엿볼 수 있다"면서 "세 가지 탕, 세 가지 적, 삼색 나물, 삼색 과일 등 제례상에 필수로 올리는 제례 음식의 가짓수와 색에는 자연의 섭리와 사람과의 일치됨, 그리고 기복이 담겨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부안에서 자란 그는 대하찜·구이와 삼합탕까지 올리는 화려한 상차림에 익숙한 편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어로 산적을 해 먹었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꼬리 부문은 동글동글한 적으로 부치고, 윗부분은 산적으로 쓰는" 터라 버릴 게 전혀 없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온 식구가 호사를 누렸다.

 

시댁에 와서 상차림이 간소해지면서, 격식에 갇히지 않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내놓을 수 있도록 신경썼다. 어탕·육탕·채소탕에서 채소탕이 빠지는 등 가짓수가 줄어든 데 이어 며느리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릴까봐 7가지 이상 내놓던 적류도 삼적만을 주문하고 있다.

 

주부 박춘희(57·전주시 효자동)씨는 최근 요리연구모임에서 이색 명절음식으로 콩나물잡채를 추천받았다. 어린 시절 먹어본 기억이 있기는 했으나, 나이가 들고 보니 추억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히든 카드였던 것.

 

평범한 가정이라 늘상 지내는 명절에 뭔가 특별한 음식이 있다면 좋겠다고 여겼던 그는 색다른 식감을 자극할 수 있겠다 싶은 콩나물잡채에 도전했다. 콩나물 외에 고사리·미나리·당근을 넣어 색감을 맞추고 겨자소스와 식초 등을 넣어 매콤새콤한 맛을 내는 것이 관건.

 

박씨는 "사서 쓰는 겨자소스가 아닌 갓씨를 갈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톡 쏘는 맛을 내는 게 어렵다"고 했다. 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정성. 직접 키워 통통한 콩나물과 갓씨를 직접 갈아 내는 맛에 비할 바가 아닌 듯.

 

예의와 격식 따져 준비하는 설 상차림. 주부 조현자(65·전주시 진북동)씨는 종갓집 외가 덕분에 약식이 차례상의 품격을 완성시킨다고 봤다. 지난 40여 년 간 2남1녀를 키우면서 명절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약식을 해온 이유다.

 

친정 어머니가 전수해준 비법은 카라멜이 아닌 설탕을 녹여 찹쌀에 두 번 쪄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쫀득쫀득한 약식 덕분에 시집·장가를 보낸 자녀들이 아직도 명절만 되면 이것을 찾을 정도. 설 뿐만 아니라 추석에도 약식을 만들어 시댁 어른들에게 선물로 보내기에도 안성맞춤. 아이들은 물론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까다로운 어르신 입맛까지 고려한 이색 간식이자 품격 있는 명절 음식이다.

 

주부 임정민(48·전주시 효자동)씨는 집안에 내림 음식이 없다고 쭈뼛쭈뼛했다. 몇 분 고민하더니 걸려온 전화에선 푸짐한 성찬 이야기가 나왔다. 한의사인 친정 아버지가 기관지가 좋지 않아 집안의 내력을 보완할 수 있는 명절음식을 권고해오셨던 기억이 나서다.

 

"명절마다 더덕전과 하눌타리 식혜를 해먹었던 기억이 나요." 목 건강이 나빠 감기로 고생하는 가족들이 많아 아버지의 특별 지시로 마련된 더덕전은 향긋한 더덕에 소고기 등 양념을 넣어 전을 부쳐먹는 방식. 하눌타리 혹은 하늘수박을 넣어 달인 식혜는 향긋하진 않아도 감기를 예방하기 위한 가족들을 위한 명절 음료. 하얀 색이 아니라 노르스름한 식혜라 식감이 덜하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여기에 생강·설탕을 넣어 간을 맞추면 아쉽게나마 마실만 하다. 더덕전과 하눌타리 식혜 덕분에 가족들은 물론 친인척들까지 기관지로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게 한 효자 음식.

 

명절 끝무렵 이미 먹을대로 먹어 물린 전을 모아 전골로 해먹는 것도 이 집만의 별식이다. 느끼하지 않도록 김치를 넣는 게 일반적이나 다시마·멸치육수로 맑은 물을 낸 뒤 청양고추를 첨가해 매콤한 맛을 더한 전골은 술안주로도 제격. 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덕전과 전골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별미다.

 

주부 이영란(44·전주시 송천동)씨는 14살 때 평안도 박천에서 월남한 아버지 영향으로 녹두전과 만두를 꼭 해왔다. 피붙이가 하나도 없는 남한에서 사는 아버지의 서러움은 곧 북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결됐다. 명절 전날 둘러앉아 만두를 직접 빚는 추억은 허기진 마음을 달래는 유일한 수단. 어찌보면 남한에서도 충분히 사서 먹을 수 있는 만두지만, 늘 명절 전날 모두 함께 둘러앉아 빚는 게 제 맛이다. 녹두를 갈아 두부·숙주·시래기 등 명절음식에서 쓰고 남은 나물들을 가득 넣어 노릇노릇하게 부친 녹두전 한 장이면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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