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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송하선(宋河璇) 편】순명(順命)의 휴머니스트

▲ 송하선 시인
김제 출생 송하선(1938~) 시인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63)하고 익산 원광여고와 남성고 교사를 거쳐 1971년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등단. 1980년부터 우석대 국문과 교수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하였다. 시집 '다시 長江처럼'('70)외 7권이 있고, 저서로 '미당 서정주 연구', '한국 명시 해설', '미당평전'등 13권의 역저를 발간하여 주목을 받으며 자연과 사물을 달관의 자세로 성찰하면서 자연주의적 순명順命의 선미禪味가 깃든 서정의 세계를 보이고 있다.

 

멀리 두고 이쯤에서

 

외로운 황홀 속에 있고 싶네.

 

그리하여 나의 혼이 밝아오고

 

나의 혼이 깊어지고

 

나의 혼이 넓어지는

 

그 오상五相의 얼굴을

 

이 만큼의 거리에서 눈여겨 보리니

 

사랑이여 잔잔한 호수의 마음이여

 

그대 열반의 한 세계에 이르르면

 

날 어느 목소리로 불러주려나.

 

그 부르는 소리 은은히 들리면

 

그 때엔 서서히

 

몸에 밴 먼지를 털으리다.

 

흔들리는 물결 위에

 

흔들리지 않는 심지로 솟은

 

나의 수녀여

 

먼 데서도 가까운 미소는

 

가장 큰 하늘 아래

 

비인 그 자리에서 보고 싶네.

 

- '연꽃 1'전문

 

수행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연꽃'제목도 그러려니와 '오상(五相)', '열반'등의 불교적 용어가 그렇다. 시인은 '외로운 황홀'을 지향하고 있다. '황홀'하기는 '황홀'하되 '외로운 황홀'이다. 그것은 '멀리 두고 이쯤에서' 담담하게 흐름을 관(觀)할 뿐, 개입하여 동화되거나, 그렇다고 외면이나 방관도 아닌 관조(觀照)의 세계다. 양쪽에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가 아니라, 고정적인 실체가 없는 무자성(無自性)의 세계 곧, 불이(不二)의 중도계(中道界)다.

 

늙은 소 한 마리가 도축장으로 갑니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그것이 마지막 가는 길인지도

 

모르는 채

 

주인의 손에 이끌리어 가고 있습니다.

 

한 평생 노동의 시간을 뒤로 하고

 

오직 주인만을 위해 살아온

 

한 평생 희생의 시간을 뒤로 하고

 

[...]

 

가는 곳을 모르는 채

 

늙은 소는

 

성자聖者처럼 순교자처럼

 

한 발 한 발 묵묵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 '늙은 소가 가는 길'에서, 2002

 

'도축장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소', 이는 불안한 존재자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이 '묵묵히' '늙은 소가 가고 있는 도축장'을 바라보면서 고독하고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그것이 마지막 길인지도/ 모르는 채/ 주인의 손에 이끌리어 가고 있는' 늙은 소의 운명, 아니 우리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의 시가 전반적으로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의 시를 보다 차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앞의 '연꽃 1'과, 위의 '늙은 소가 가는 길'에서도 그러한 '관조의 거리'가 여전히 보이는데 아무튼 '저만치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객관적·심미적 거리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러한 관조의 미학(美學)이 그의 시에 도교적 선미禪味를 더하게 한다.

 

때때로 그의 시는 '중도' 혹은 그것은 영원 지향의 도(道)를 추구하면서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허무에 대한 실존 인식으로 생生의 한계와 존재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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