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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통역가 이현정(영어명 Roc)씨】감독과 관객 잇는 '소통의 다리'

2000년 부천서 영화제와 첫 인연 / 전주영화제는 3회 때부터 합류

▲ 이현정씨가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출품작 '미친년들'의 드류 토비아 감독의 통역을 하고 있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3일 막을 내린다.

 

그의 첫 인상은 맛있는 밥집의 손맛 좋은 안주인 같았다. 깔끔하게 쪽진 머리, 편안한 옷차림. 영어보다는 전라도 사투리가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영어 이름은 Roc. 한국 이름은 이현정.

 

어린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인연으로 영어가 익숙하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살게 된 영국 생활은 그에게 영미 문화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Roc가 영화통역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 그의 직업은 영어 강사. 꽤 잘 나가는 영어 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지인의 소개로 2000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통역을 맡았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재밌었어요. 특이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흥미로웠거든요. 이후로 입소문이 나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김기덕 감독님이 '섬'이라는 영화로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는데, 그때 동행하게 됐죠."

 

그러나 영화판에 뛰어든 결정적인 계기는 영화배우 장동건씨 덕분. 장동건씨가 무극 출연이 결정되고 칸 영화제를 가는데, 그에게 통역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칸은 너무나 가고 싶었던 도시였고, 사실 장동건씨는 보기만 해도 흐뭇했기에" 모든 걸 제쳐두고 '도박'을 벌였다.

 

그러나 번역과 영화 번역은 많이 달랐다. 작업 환경은 물론 영화에 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했다. 그는"감독이나 배우는 대개 미리 준비된 말을 하기 보다는 열정적으로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문장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감독이 전하는 내용을 전달하면 듣는 사람조차도 헷갈릴 때가 많다는 것.

 

"영어라고 해도 다 똑같은 영어가 아니에요. 스리랑카 관객들이 대거 온 적이 있는데, 그분들의 영어가 억양이 강해서 다들 알아듣기 힘들어하는 거에요. 그때 제가 투입(?)됐는데, 처음 5분 정도 이야기를 해보니까 이들의 발음이 어떤지 감이 오더라구요. 그래서 어렵고 까다로운 통역 업무가 유독 많이 배정됐던 것 같습니다."

 

전주영화제와의 인연은 3회 때부터. 영화제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도맡아 통역해오면서 영화에 관한 이해도 깊어졌다. 영화제 자료가 부족해 감독과 작품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독학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감독들이 영향을 받은 감독이나 작품을 굉장히 빨리 나열할 때가 많아요. 그 이름이 익숙하면 퍼스트 네임만 적으면 아는데, 전혀 모르고 하게 되면 당황하게 되죠. 하지만 저는 좀 뻔뻔해서 "잠깐만요? "하고 다시 물어보게 되지요."

 

영화를 본 다음에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화가 완전히 달라 보이는 경험도 많았다. 그래서 그는 감독과의 대화를 적극 권유한다.

 

"전주영화제는 저에게 특별하지요. 전세계 모든 감독들이 전주를 오고 싶어한다고 들었어요. 진짜 힘들게 영화를 제작했거나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은 감독들이 말이죠. 그래서 전주는 영화를 위한 영화제죠. 처음에는 여기 뭐야 아무 생각 없이 왔던 분들이, 가실 때는 너무 기분 좋게 웃으면서 가세요. 단 한 명도 안좋게 얘기하고 간적이 없어요. 무슨 영화 동아리에 온 거 같아요."

 

한국에서 와서 소주를 병 채 마시며 영화를 토론하는 현장, 몇 시간 긴 영화를 최고의 인내심으로 버티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관객, 인생의 경험과 영혼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감독들. 그는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좋다. 감독과 관객이 제대로 소통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그의 열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익산문화재단 경영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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