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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산업유산벨트화지구-유산들] 봄바람 맞으며 터벅터벅…짠한 풍경들

건축적 가치 있는 군산세관, 부잔교 등 당시 역사 그대로 / 옛 조선은행·장기18은행 등 개·보수 문화전시공간으로 /

△옛 군산세관

 

박물관 옆 옛 군산세관은 급격히 국력이 쇠퇴해 가던 대한제국이 1905년 자금을 투입해 1910년까지 진행하던 제1차 군산항 축항 공사 기간에 건립됐다.

 

1908년(순종 2년 6월) 준공된 건물은 건평 228.10㎡의 서양식 단층으로 프랑스 혹은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외벽은 화강암 기초 위에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내부는 나무와 회벽을 이용한 유럽 양식이다. 건축에 사용된 화강암은 소설 ‘아리랑’에서 나오듯 부두 석축공사에 동원됐던 중국인 석공들이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기와 모양의 동판으로 고풍스럽고, 지붕 위 3개의 뾰족한 첨탑은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다.

 

이 같은 건축양식은 현재 서울역과 한국은행 본점 건물을 포함 국내에 세 곳만 남아 있어 건축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93년 세관 신청사 완공으로 한때 철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1994년 지방기념물 제87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현재 호남지역 세관 및 군산항의 역사를 알리는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시설로서 1923년 건립됐다.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에 등장하는 이 건물은 군산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로 당시 한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했다.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묘사되는 등 당시 일본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며 군산과 강경 상권 장악의 초석으로 일제강점기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행이었다.

 

옛 조선은행은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한국은행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한국은행은 한일합방이 되자 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조선총독부의 직속금융기관 역할을 했다.

 

광복 이후 조선은행이 한국은행으로 바뀌고 전주로 이전돼 건물은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다가 유흥시설로 바뀌기도 했다.

 

이때 건물의 전면부와 내부가 많은 부분 개조되고 화재로 내부가 소실되는 등 방치돼 오다 2008년부터 보수·복원되기 시작해 근대건축관으로 개관했다.

 

△옛 장기18은행

   
▲ 장기18은행.

장기18(長崎十八)은행은 일본 나가사끼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조선에서는 인천에 1890년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지점을 개설했다. 군산에는 조선에서 7번째 지점으로 1907년 설립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으로 군산의 장기18은행은 본래 현재 동서의원 앞에 있던 호남제분 인근에 사무실이 있었지만 1930년대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본관과 부속건물 2개 동, 건축면적 4만여㎡의 건물로 1934년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소유로 준공되고, 이후에도 같은 회사 소유의 건물로 기록돼 있지만, 장기18은행이 입주한 때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광복 이후, 대한통운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면서 정면은 개조돼 스테인레스 스틸 샤시가 설치되고, 내부공간을 비롯한 많은 부분이 변형되고 훼손되는 등 보존 상태가 매우 열악했지만 보수를 마치고 미술 및 응용예술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미공연장과 장미갤러리, 미즈카페로 복원된 근대건축물

   
▲ 장미갤러리

현재 장미공연장으로 사용 중인 건물은 1940년대 280㎡ 규모로 건축돼 창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돼 오다 2013년 2월 개보수를 마치고 좌석 77석을 갖춘 다목적 예술공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88㎡의 장미갤러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건축됐지만 용도나 기능을 확인할 수 없는 건축물로 1945년 광복 이후 위락시설로 사용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2012년부터 개·보수 작업을 거쳐 규모로 1층 체험학습장과 2층 미술전시 공간을 갖춘 창작예술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미즈카페

미즈카페도 175㎡ 규모의 근대건축물로 복원돼 카페테리아 및 북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군산내항 부두시설 및 부잔교

 

1899년 군산이 각국 조계지역으로 개항된 후 군산항의 영향력을 확대를 위한 대한제국의 투자가 진행됐다.

 

군산항을 근대적인 항구로 건설하기 위해 1905년 대한제국 정부는 공사비 8만6000원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때 세관용지의 일부로 강안매축(江岸埋築)공사와 고정잔교(固定棧橋) 1기 및 육상 소설비(小設備)가 설치됐다.

   
▲ 군산내항 부잔교

이후 일제강점기 일제는 1909년부터 1915년까지 3만2900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잔교 3기를 축조했고 화물전용 철도 인입선을 강안까지 연장했다. 이어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잔교 1기와 철도인입선 연장, 강안매축 등을 추진해 군산항은 대형부잔교(浮棧橋) 3기와 상옥(上屋), 도로, 철도, 기타 해상연락시설 및 육상의 제반시설을 갖추고 80만톤의 수출입화물 하역과 기선 3척 이상의 접안이 가능하게 됐다.

 

1926~1933년 추가로 부잔교 3기, 제4부잔교, 육상시설 등이 확충되는 등 1905년 이후 4차례 축항공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현재 군산내항은 항구 기능을 거의 상실해 사실상 기능이 정지돼 있는 상태로, 당시의 항만시설을 보여주는 현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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