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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 제2차관은?

사격 국가대표·감독, 태릉선수촌장 지내

박종길(67)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당시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경우 바른 사람"이 돼야 한다며 훈계를 했다. 이 때문에 박 차관은 '경우 바르게'를 가치관으로 삼았다. 어릴 적 꿈은 교사였으나, 학제 개편으로 전주사범학교가 폐지되는 바람에 이리농림고에 진학,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새벽에 등교해 학교 정문 앞을 청소한 뒤 익산시청 공관 사거리에서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2년 동안 하기도 했다.

 

꿈이 바뀌어 군 장교가 되고 싶어하던 그는 1965년 9월 해병대에 입대,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때 대통령상을 받는 등 모범 해병소대장을 지냈고, 특히 사격에 빼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해병대 전군 사격대회에서 여러번 우승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1970년 초 월남에 파병되기 위해 월남전 교육을 마치고 배에 승선하던 중 사격선수로 발탁된 그는 배에서 내려 태릉선수촌으로 직행했다. 이유는 당시 대한사격연맹 회장이셨던 박종규 경호실장이 사격 국제대회를 유치한 후 출전할 선수를 찾던 중 사격에 능한 박종길을 찾아낸 것이다. 이후 끈질긴 노력으로 많은 금메달을 획득하고 세계를 제패했다. 은퇴 후 국가대표 감독과 부회장을 거쳐 태릉 선수촌장을 역임했다. 런던올림픽 준비를 할 때 태릉선수촌에 2년 동안 매일 살다시피했다. 한달에 한두번만 집에 간 일화는 유명하다. 700명 가까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대한민국이 런던올림픽에서 세계 5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체고, 광운대, 국가대표 사격감독을 거치는 동안 익힌 노하우가 큰 뒷받침이 됐다.

 

선수시절 박종길은 그야말로 스타였다. 사격 국제대회에서 메달 하나 따지 못하던 대한민국은 박종길의 출현으로 인해 달라졌다. 1971년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잇따라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그는 해병대를 예편한 뒤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는다. 1978년 세계 사격선수권대회와 방콕아시안게임,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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