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일의 시작 메모에서,
'전주문학' 11집, 2000년
이세일 시인(전주·1941~2001)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지금 신(神)도 인간도 없는 광야에 서' 있다는 인식. 그래서 그는 '절망'과 '고독'과 '소리 없는 통곡'으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안주할 집을 갖지 못하고 끝내 오랜 세월을 홀로 떠돌며 '인간다운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과 구름이 춤추는 거리
고뇌와 아픔이 없는 환자들
- '인간의 몰락.2'에서, 2000년
당신들은 언제부턴가
절망에다 아름다운 색칠을 하고
圓을 돌면서 끝을 찾고 있었지
- '인간의 몰락.3'에서, 2000년
금시 사라지고 말, 찰나적이고 일시적인 존재들( 바람, 구름) 앞에서, 그것들이 우리네 삶의 전부인양 거기에 우리네 한 생이 매달려 '원(圓)을 맴돌고 있다'는 인식이다. 마치 끊임없이 바윗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포스의 형벌처럼, 그것은 부조리한 인간 존재에 대한 비극적 인식? 아니 절망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대들은 새처럼 나무 위에서 꿈을 꾸고
길이 없어도 초연히 떠나본 적 있는가.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묘지 뒤에서 소풍을 즐기며 가는 것이다.
-「春夢」에서,
2000년 10월 천상병의 '귀천'처럼, 무욕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는 이승, 곧 우리네 한 생(生)이 '아름다운 묘지 뒤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명명하면서, 또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나뭇가지 위에서 꿈을 꾸는 새에 비유하고 있다.
새는 얼마나 자유스런가? 오란 데는 없어도 갈 데가 많은 것이 새의 삶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 속에서 그는 길을 잃는다. '새들은 길이 없어도 날아가지만/ 사람은 길이 있어도 길을 잃는다.('인간의 몰락1')' 가 그것이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외로움이요, 길을 찾아 헤매던 아웃사이더의 고독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심장 마비 때문에 세상을 뜬 게 아니라 어찌 보면 외로움의 갈증이 그를 이승에서 밀어내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 한 복판에서/ 갈증으로 죽는 날이 올 것이다.'('슬픈 예언') 번히 보고도 먹을 수 없는 바닷물처럼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해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절대 고독의 밀실에 갇혀 그는 우리 몰래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가 한 때 몸담고 있던 이승을 '서러운 땅' 이라 규정하고 그 땅을 '오래 걸었네. / 저승이 보일만큼 걸어 왔네.'
하지만 그의 삶은 끝내 '흙이 없어진 세상 허공만 남아/ 머나 먼 길 /허공을 걸어 왔네('떠도는 자의 엽서')'처럼 그의 삶이 '빈 허공'에서 뿌리 뽑힌 유랑자의 삶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물질주의라고 하는 문명의 혼류 속에서 도구적 존재로 파편화된 인간의 비극적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인간 상실과 진실의 부재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회복하려는 고독한 함성' 그리하여 그는 '아무도 들은 적 없었던 / 풀벌레 노래를 사랑하다가' 아웃사이더로 우리 곁을 맴돌다 떠난 풀벌레 시인이었다. 2003년 10월 지인들에 의해 유고 시집 '훗날 누가 찾거든'이 발간되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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