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왕의 초상 '어진(御眞)'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가 얼마나 활발하게 제작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지만 전란을 견디고 화재를 피하여 살아남은 어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영조의 어진뿐이다. 특히 태조의 어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린 전신상으로는 유일하다.
어진은 당대를 통치한 조정과 국가의 상징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태조어진은 여기에 조선 창업자의 초상이라는 의미를 더한다. 태조 어진이 모셔진 곳이 바로 전주의 경기전이다. 어진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곳을 진전이라 하는데, 태조 어진을 모신 진전은 전국의 다섯 곳에 세워졌다. 조선왕조의 본향인 전주와 태조가 태어난 영흥, 태조가 성장한 개성,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다.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다섯 곳에 봉안되었던 어진 중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10월 12일,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전주를 다시 확인시키는 '태조 어진 봉안 행사'가 재현된다. 지난해에도 열렸지만 올해 행사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1688년 숙종은 전주의 태조 어진을 모셔와 서울에서 모사본을 작성한 후, 원본을 다시 전주에 봉안했다. 모사본을 모신 영희전(永禧殿)은 국왕이 왕세자와 함께 직접 추모 의례를 진행하는 국가 의례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대 사학과 강제훈 교수는 영희전 의례가 강조되면서 전주 경기전 어진 또한 영희전 어진의 모본으로서 그 중요성과 정치적 위상이 한층 강화되었다고 해석한다.
강교수의 고증 의례를 바탕으로 치러지는 올해 행사는 1688년의 이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본향 전주의 역사적 존재를 일깨우는 좋은 기회다. 강 교수는 1688년 태조 어진 모사 작업의 전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 '(태조)영정모사도감의궤'를 바탕으로 올해 의례를 준비했다고 한다. 정확하고 상세한 문헌 기록에 근거를 둔 것 인만큼 기대가 크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