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교감 ‘삶의 근원’ 화두를 묻는다
전북도민들에게 책읽기를 제안합니다. 단순한 독서가 아닌, 독서토론입니다. 토론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독서토론이 이뤄지는 도서관과 작은도서관 등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알아가는 배움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전북지역의 독서인프라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새로운 책읽기, 새해부터 시작합시다.
시대가 불확실하고 미래에 관한 전망이 어두울수록 근원에 대한 관심은 증폭된다. 그 근원 찾기 중 하나가 책읽기다. 오랜 세월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은 책은 인생의 지혜를 전하고 미래에 대한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한국사회는 정작 책과 교감하는 시간이 점차 줄고 있다. 전북만 하더라도 지역을 대표했던 서점들이 갈수록 위축되고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탓에 출판시장에 냉기가 돈 건 꽤 오래 전이다. 이에 본보는 앞으로 10차례에 걸쳐 책 읽기와 관련한 전북의 인프라를 살펴보고 지금 이 시대에도 왜 책읽기가 필요한 것인지 질문하고자 한다.
△전북 서점·출판가는 불황…불황
지난 10월 출판 시장에 출판사인 ‘쌤앤파커스’의 매각설이 떠도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쌤앤파커스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스님), ‘장사의 신’(우노 다카시)을 통해 최근 3년간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출판사 중 하나다. 해마다 수백여 개의 출판사가 생겼다가 문 닫는 현실에서 ‘돈 버는 출판사’의 매각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 것은 그만큼 출판시장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2000년 3400곳이 넘었던 전국의 서점은 지난해 1700개까지 줄었다. 전북의 출판 시장 역시 깊은 불황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역의 중소 서점과 토박이 책방·출판사도 10년 가까이 위기에 놓였지만 뾰족한 대안마저 없는 게 현실이다.
1963년부터 시작된 홍지서림은 본점과 효자점·아중점·삼천점 등 분점으로 골목 상권에 자리잡고 있으나, 서신점은 이미 간판을 내렸다. 지난 1970년부터 호흡해온 민중서관고 이미 2011년 본점은 문을 닫은 채 서신점·평화점 등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25년 된 군산 한길문고는 폭우로 10만 권이 잠긴 시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자원봉사로 다시 문을 여는 기적을 일구기도 했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의 입점 등으로 인해 지역 서점가는 내리막길에 놓여 있다.
양계영 홍지서림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2080 원칙’이 지켜졌다. 상위 20% 출판사가 시장의 80%를 지탱한다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은 상위 5% 출판사가 시장의 95%를 잠식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도서정가제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다 보니 책의 50%가 온라인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면서 “심지어 유명한 출판사의 경우 온라인 서점에만 공격적 마케팅을 강구하고 선인세를 높여 베스트셀러 작가를 확보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지역 서점과의 거래를 끊은 지 꽤 됐다”고 했다.
신아출판사 서정환 대표도 “지역을 대표하는 출판사가 건재하는 것이 전북 문단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여겨 사명감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기획력이 좋거나 시장에서 반응이 좋을 만한 책의 경우 공격적 마케팅 등을 이유로 작가들이 수도권 출판사에 맡기려고 한다”면서 “결국 좋은 책을 만들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서관은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남미의 작가 보르헤스는 천국을 상상해보다가 ‘천국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낙원까진 아니더라도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도서관은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다. 돈 없이도 책을 얼마든지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도서관은 정보격차를 줄이는 핵심 민주기구와 다름없다.
전북도는 2004년부터 생활 속 문화환경 조성을 위해 작은도서관 조성사업을 추진하는데 고심을 거듭했다. 현재 14개 시·군에 127개 작은도서관이 조성됐다. 다만 가장 시급한 건 운영의 활성화다. 도서관 건립이 정치적 상상력과 관계된 문제라면, 그 운영과 프로그램은 문화적 상상력과 관계된 문제다. 핵심은 전문성 갖춘 인력의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
전북도가 고민 끝에 내놓은 묘책은 독서지도·도서논술 등 관련 자격증을 가진 문화기획자를 배치하되 인건비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작은도서관에 배치될 인력 중 관련 자격증을 가진 105명(91%)이 됐다. 작은도서관 활성화 여부는 아직 장담할 순 없지만, 완주 기찻길 작은도서관(이하 완주도서관)의 사례를 보면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완주도서관이 도내 최우수 작은도서관으로 꼽히게 된 것은 주민 참여 주도로 이뤄진 ‘재능기부 프로그램’ 덕분이다. 주부독서회 활약으로 독서회 회원 중 영어강사, 퀼트·공예 자격증을 갖춘 이들이 자연스레 재능기부를 하게 되면서 수요자 중심의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완주도서관의 단골이용자인 김상규씨(75)도 “눈과 귀가 어두워져 고전을 읽고 싶어도 여의치 않았다”면서 “아이들의 추천으로 만화로 된 고전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웃으며 말했다.
5년 전부터 매일 아침 20분씩 책읽기를 독려하고 있는 전북대 사대부고 장남석 교장는 “과거엔 독서였다면, 이제는 토론”이라면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과정은 책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학습의 기본이 되는 사고력 훈련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북도의회도 책읽는 학교 만들기를 거들고 있다. 지난해 책의 날을 기념해 ‘학교 독서교육 조례’를 발의해 통과시켰다. 조례에는 독서교육 활성화를 위한 전담부서 설치, 독서행사 활성화, 행정 지원의 근거 등을 담고 있어 도서관의 장서·인프라 확충, 예산 편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독서 문화를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사회의 ‘기본’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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