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열정의 시대'와 관객 논쟁

▲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
어느 노인 부부가 ‘열정의 시대’ 전시를 보러 도립미술관에 왔다가 제지를 당했다. 계단 밑 티켓 박스에서 무료관람권을 받아야 하는데 몰랐던 것이다. 무료관람권 없이 입장이 안된다는 사실에 그 노인은 매우 화가 나서 ‘관장 나와’라고 요구했다. 마침 관장은 의회 행정감사에 참석 중이었다. 만일 관장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노인의 요구대로 나가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불편하지만 규정을 고칠 수 없는 점을 설명하고 노인을 대신해서 티켓 박스에 내려가 무료 티켓을 받아서 전달해 드렸을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노인이어도 기본적인 전시장 규칙은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봐줄 것이라는 생각은 노인 시대가 다가올수록 버려야 한다. 노인 시대란 노인이 젊은이처럼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요 근래 열정의 시대를 관람하러 온 관객이 25일간, 1만 명에 불과해 흥행 실패가 우려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1만 명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늦은 홍보를 만회하려고 직원들이 조별로 학교를 방문하고 한옥 마을에서 전단을 나눠줘서 얻은 숫자다. 잡상인 취급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눈물도 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자고 속으로 외쳤다. 12월 초순까지만 하고 미술관 본연의 업무로 가자는 다짐도 했다. 흥행보다 중요한 것이 예술이고 미술 문화이다. 많은 도민들이 미술 문화를 향유해야겠지만, 도민들도 미술관을 찾을 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을 땐 옷차림부터 준비하게 되듯이. 문화의 향유는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의 몫이다. 최고의 예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풍토에서 길러진다.

 

사실 열정의 시대처럼 처음부터 흥행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전시는 공립미술관의 격에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구권의 근대미술을 소개하는 진품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대중적으로 강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과도기를 거쳐서 문화 예술에 대한 열망이 충족되고 점차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 수준의 문화 향유가 거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사춘기를 겪지 않고 성인이 되기 어려운 것과 같다.

 

피카소가 파리의 입체파를 주도하면서 파괴와 창조적 구축이라는 모더니즘의 메커니즘을 만들고 즐길 수 있었다면, 이중섭이 한국 전쟁 중 미군이 버린 담뱃갑 안의 은박지를 펴서 송곳으로 그리운 가족을 그린 은지화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모네의 작품 ‘워털루 다리’가 순수 인상주의의 빛의 실험을 담고 있다면 박수근의 ‘농악 A’는 가난하고 소박한 한국 민중의 마음을 투박하게 담고 있다. 무엇이 더 감동적인가? 전쟁 후 처참하게 무너진 그곳에서 기적 같은 경제 건설을 구축한 신 한국인들이 영광의 유럽 모더니즘을 불러들여 호사를 누린다 한들, 나무랄 데 없다. 이제 우리가 이곳에서 세계를 보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좀 더 욕구를 발산하고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세련되게 자신을 가꾸어 나갈 책임도 있다. 그리고 우리 시각으로 읽는 세계를 전시 형태로 구축하고 뽐낼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관객 숫자 따위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전북도, 산업 맞춤 인재 키워 고용위기 넘는다

정치일반분산된 전북 환경정책…통합 기후·에너지 지원조직 필요성 제기

전주전주시, 생활밀착형 인프라 강화한다

기획[2025년 하반기 전주시의회 의정 결산] “시민과 함께 전주의 미래 준비하는 의회 구현”

경제일반[주간 증시 전망] 코스닥 활성화 정책, 배당소득 분리과세 정책에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