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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 소선녀

저 단풍든 나무처럼 당당하고 싶다. 어쩌면, 불붙은 잎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치에도 깔아 놓았구나. 본심은 숨길 수 없으니.

 

흔히 단풍을 표현할 때 아름답게 물들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울긋불긋한 색소가 더해진 것이 아니다. 왕성했던 엽록소가 빠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붉고 노란 제 색깔을 드러낸 것이다. 뜨거운 광합성의 여름, 초록이 들끓은 젊음의 계절을 지나, 본래 자아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이 때 나무는 얼마나 찬란하게 자신을 뽐내는가.

 

그런 모습을 보려고 새벽녘에 내장산으로 간다. 아들 녀석들이 어릴 때부터 시작했으니, 어언 이십 여 년이 흘렀다. 아직 잠결인 녀석들을 이불에 둘둘 말아 차에 태우고 달려가면, 산은 윤곽도 보여주지 않고 캄캄했다. 그래도 온몸으로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깊은 품을 오롯이 독차지한 기분으로 가슴이 벅찼지.

 

이제 자식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고, 어둑한 산길을 호젓이 걷는다. 지내온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거친 파도에 휩쓸리듯 살아왔구나. 잠깐 멈추어 숨을 고르고 자신을 지긋이 바라본다. 너무 애태우지 마라. 우주를 운행하는 그 기운에 순응하면서 가라. 무장을 하고 왔지만 볼이 시리다.

 

일주문에 이르니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 산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라니. 값없이 선물로 받은 오늘, 이 복을 누리고 여한이 없이 살아야한다. 내일은 기대할 수 없는 시간이므로 남은 생명엔 미련을 두지 말자. 감격은 바로 오늘 살아있는 것, 지금을 미루지 말고 기쁘게 누리자. 저 단풍처럼 뜨겁게 마지막을 살자.

 

잎을 다 떨구고 맨몸에 열매를 가득 달고 선 늙은 돌감나무야, 모과나무야, 애썼다. 함께 세월의 강을 건너왔구나. 지금은 올려다보기만 하는 저 서래봉엔, 올라타고 놀았던 새파랬던 시절이 어려 있다. 잔디밭에는 두 살 남짓한 아들이 앞에 있는 공을 차려고 막 폼을 잡고 서있네. 두 주먹을 쥐고 설렌, 꼬마사진 한 장이 오버랩 된다.

 

저 단풍에는, 나무가 생존하는 위한 이치가 담겨 있지. 날씨가 선선해지고 해도 짧아지면, 나무도 슬슬 겨울 날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필요한 영양분을 서둘러 나뭇가지로 보낸 뒤, 나뭇잎으로 통하는 통로를 막아 버리지. 그래야 영하기온에 동사를 막을 수 있거든. 그러면 엽록소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가려져 있던 색소들이 제 빛깔을 내기 시작한다.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둔 두려움이 있느뇨.’ 단풍나무 앞에 서서 백석 시인의 싯구를 읊조린다. 무성했던 젊음을 잃어가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구나. 밖으로 향하던 생명을 안으로 거두면서 자족하구나. 무언가 잃는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간다는 것이지. 버려야 할 것을 내려놓는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황홀했으면 좋겠다.

 

햇살에 비춰진 단풍잎은 불타는 마음을 고백하는 듯하다. 애절하고 열렬한 연서가 읽어진다. 곧 낙엽으로 스러질 걸 알기에 저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가슴 저리게 간절한 단풍잎처럼, 그렇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본래의 빛깔도 보여주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싶지 않다. 소슬바람에 단풍잎이 뛰어내린다. 정녕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오래 머무는 것이 없구나.

 

오늘이 가기 전에, 진심을 보여주기로 한다.

 

△소선녀 수필가는 김제 상정보건진료소장으로 수필집 〈봄이면 밑둥에서 새순을 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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