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는데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눈이 침침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아 왔으니 이젠 못 볼 것은 더 이상 보지 말라는 뜻이고, 귀가 어두워지는 이유는 들을 말 못들을 말 다 들어왔으니 이젠 안 들어도 될 말은 더 이상 듣지 말라는 하늘의 뜻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참석자들의 폭소가 터졌다. 생각해보니 회장의 말은 우스개로 한 말이겠으나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그럴싸한 말이었다.
요즘 TV나 신문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거의 매일 섬뜩하고도 참담한 사건사고가 터진다. 사회도 그렇고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망측하고도 볼썽사나운 광경이 연일 계속된다.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불신풍조가 생겨 선한 사람조차도 나쁜 사람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보라.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못 믿겠다는듯 어둡고 누군가를 경계하는 눈초리가 역력하다.
어느 중견코미디언이 한 말이 생각난다. 각종 범죄뉴스로 말미암아 밤에 잠을 자도 꿈자리가 사납더라며 “밤 9시 뉴스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 대신 저녁시간에는 명랑한 코미디나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프로로 대체해 온 국민이 편안하게 웃으면서 주무실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게 나의 꿈이다.”라고 한 바 있다. 그 뒤 그는 안타깝게도 급성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의 뜻만큼은 갸륵했다.
어느 스님 한 분도 그랬다. 세상 사람의 이러한 행태가 꼴 보기 싫어 아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심심산골 오두막집에 들어가 텅 빈 방안에 홀로 앉아 책 몇 권에 촛불 하나 밝혀 놓고 있으니 그렇게 그윽하고 편안할 수가 없더라는 심경을 토로한 산문을 읽은 적이 있다.
외국도 마찬가진 것같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1889~1963)의 「내 귀는 소라 껍질」이란 시를 보면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의 파도 소리를 그리워 한다’ 라는 짧은 시가 유명한데 이는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잡소리를 거부한 채 오직 자연의 소리만 듣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로 불안해진 나의 생각을 사회나 정치권 등 남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진정 나는 이들과는 상관없는 초연한 사람인가? 내 안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실현 불가능함에도 재물은 남보다 더 많이, 지위는 남보다 더 높게, 명예는 남보다 더 넓게 하려고 몸부림친 적은 없었던가 하는 물음에 ‘아니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남의 성공에 시기심, 질투심은 물론 미움과 불안 초조로 밤잠까지도 설친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이렇듯 외부와 내부로부터의 무차별 공격에 대해 평정심을 되찾아야 할 때가 왔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홧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을 해침은 물론 육신의 건강까지 잃기 딱 알맞다.
이럴 때면 나는 으레 산을 찾는다. 그 많은 등산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아 짜증을 낼법도 한데 말없는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끌어 안는다.
△수필가 김학철 씨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 이사·영호남수필문학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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