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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혼,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 김형중

21세기를 활짝 열어젖힌 태양이 시계 추를 부지런히 흔들더니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황혼녘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초근목피로 굶주림을 이겨내며 생명의 끈을 이어온 불행한 시절을 살아왔다. 이제 조금 넉넉해져 대다수 국민이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부러움을 사는 한민족으로 우뚝 서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인가. 급격한 산업성장으로 부유해진 삶에서 파생된 개인주의가 전통가족제도를 해체했고, 수십 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한 부부들이 ‘황혼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단초를 만들어 냈다.

 

‘황혼이혼’은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당시 일본이 경제 불황에 빠지면서 퇴직자들이 늘어났는데 공교롭게도 부인으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하는 노인이 급증했다. 그 현상이 우리나라로 전염돼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것이다. 또 비단 일본과 한국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미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 여러 나라에서도 골칫거리다.

 

고령화 사회가 ‘은퇴한 남편 증후군’이란 새로운 질병을 만들었다. 부인들이 은퇴한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 쌓인 감정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해 발생한 부산물이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커져 자주 아프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나타나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증상을 말한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기대 수명이 크게 늘었다. 초고령사회가 눈 앞에 있다. 100세 시대가 열린 현대사회에서 베이비부머 세대 부부들은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갈 것이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결혼했다면 60~70년 이상 부부가 동고동락할 것이라는 산법(算法)이 나온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어서도 20~40년간 함께 한다. 이 때문에 삼식이, 바둑이, 젖은 낙엽 등 슬픈 신조어도 생겼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더라’는 사회 통념과는 달리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았던 사람들이 실제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상대가 나를 신뢰하고 또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만족 정도가 높지 않고, 비록 작더라도 그때 그때 행복한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시켜 주는 바로미터라고 한다.

 

숱한 날들에서 갈등이 없는 부부는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었느냐 보다는 그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가 문제를 해결하는 포인트다.

 

노년기 삶의 행복은 ‘건강과 경제력, 그리고 부부나 가족들과의 관계 유지’가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 배우자는 평생을 함께 한다. 서로 아껴주고 돌봐주는 정도가 부부관계의 성공을 결정 짓는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하지만, 황혼기의 ‘종지부’가 못다 이룬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은 자칫 실루엣의 허상일 수도 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헤어진 뒤 멀지 않은 세월이 지나면 예상하지 않은 외로움이나 후회가 반드시 올 수도 있다.

 

파라다이스의 세계를 그리며 맺었던 청춘시절의 결혼도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면 열정이 식어 가고, 결국 법으로 눈가림을 한다고 한다.

 

인생의 저슬기 문턱을 넘어서는 노년에 쓸쓸한 들녘 길을 혼자 걸어갈 것인가. 황혼기는 여러모로 힘들고 외로운 시기다. 자꾸 지난 날들이 그리워지고, 다정한 말벗이 절실해진다. 그저 지난 날 힘들었던 일 만을 앞세워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 보겠다’는 편협한 생각 만으로 선택하는 황혼이혼은 어쩌면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김형중씨는 〈수필시대〉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와 행촌 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원광보건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전라북도 인재육성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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