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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언영색 - 백봉기

▲ 백봉기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시작되었다. 빌딩마다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자신의 이미지를 알리는 슬로건들이 다채롭다. “서민이 국회의원입니다” “서민의 든든한 언덕” “오직 민생” “전주의 희망을 찾아서”.

 

인물사진도 다채롭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기본이고, 농민과 대화하는 사진,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노타이에 점퍼차림의 후보도 있다.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친근감 있게 보이려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잘할 것 같다. 그런데 어색하게도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찍은 사진이 눈에 걸린다. 너무나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외모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얼굴이 곧 마음이고, 얼굴은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주 가는 음식점에 예쁜 아줌마가 있었다. 언제나 웃는 듯, 인자한 얼굴에 조용한 성품, 어머니 같은 자상함까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인이었다. 사실 그 여인의 단아한 모습이 보고 싶어서 찾아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인에 대한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손님과 말다툼하는 모습이 너무나 딴 판이었다. 고귀하고 정숙했던 여인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고 금방이라도 손님에게 덤벼들 것 같은 사나운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뒤로 그 집에 가는 발길을 줄였다.

 

좋은 얼굴과 좋게 보이려는 얼굴은 비슷하면서도 거리가 있다. 좋게 보이려는 얼굴은 겉으로 나타난 표정이 자연 그대로일 수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웃음, 인격과 수양이 잘된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억지로 꾸민 얼굴은 좋을 리 없다. 말씨도 그렇다. 말을 잘 한다는 것과 교묘하게 한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교묘하게 한다는 것은 듣기 좋은 소리로 그럴 듯하게 잘 포장하기 때문에 속마음과 같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 ‘학이편’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즉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말이나 알랑거리는 태도, 아첨하는 얼굴빛을 가진 사람은 어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남의 눈에 잘 보이게 하려고 억지웃음을 짓는 사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좋은 얼굴과 좋게 보이려는 얼굴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연기하듯 눈물 글썽이면서 하소연하는 사람의 진심이 어디까지인지 정도를 찾기가 어렵다.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만이 참 모습을 구별할 수가 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짙은 화장과 분장을 하고 몸맵시를 곱게 가꾼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방송국 스타일리스트들이 예쁘게 꾸며준다. 말할 때도 호감을 얻으려고 미소를 띤다. 어느 때는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 나온 사람들처럼 억지웃음을 짓고 새침을 떨기도 한다. 물론 대인관계에서 말과 인상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부하거나 억지웃음을 지으며 남의 눈에 잘 보이게 하려는 사람은 결국 속마음이 들통 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교태를 부려도 마음속에 감춘 칼날은 자신도 모르는 은연중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마음에 없는 표정으로 표를 얻기 위해 교언영색(巧言令色)해도, 비린내 나는 생선을 아무리 빛깔 고운 천으로 싸고 또 싸도 그 냄새는 감출 수가 없다.

 

국회의원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다. 벌써부터 현혹되기 쉬운 복지공약들이 흘러나온다. 얼굴에 관한 한 정치인처럼 변화무쌍하고, 표정관리를 잘하는 사람 중에 사기꾼과 도박꾼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제발 대중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꼼수정치는 없어야할 것이다. 늘 처음처럼, 대형 현수막에 내건 슬로건처럼 언제나 서민의 편에 서서, 어머니가 가족을 볼보는 마음으로 부디 좋은 정치를 해주길 바랄뿐이다.

 

△백봉기씨는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해,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를 발간했다. 현재 전북예총 사무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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