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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 우거짓국

▲ 문애선

요즘 들어 TV에서 요리에 관한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한다. 갖가지 먹거리의 식재료와 기구를 이용하여 즉석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맛있는 식탁을 꾸려 주고픈 주부들에게 나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나도 때로는 무슨 거창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늘 먹는 삼시세끼에 다소나마 변화를 주고 싶어 적잖이 고민할 때가 있다. 이왕이면 맛도 있고 영양가도 따져가며 식탁을 꾸려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어서 어떤 때는 제철에 나오는 싱싱한 재료를 식탁에 올려야지 하다가도 새로운 반찬 없이 먹던 음식을 그대로 내어놓을 때도 가끔은 있다. 그러다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끼니를 때우는 데 급급한 자신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누가 우리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게다. 그러나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식성일지라도 가끔은 내가 먹고 싶어서 음식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중 하나가 바로 우거지나 시래기를 이용한 지짐이나 국 요리다. 시래기는 배추나 무 잎을 구하여 될 수 있으면 집에서 꼭 삶아서 해먹곤 한다. 요즈음은 텃밭에다 무와 배추를 직접 가꾸어서 여린 잎 때부터 시래기로 국을 끓여먹곤 한다. 시중에서 여러가지 시래기들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팩에 넣어 팔기도하지만 난 여태껏 우리 가족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 사먹어 본 적은 없다. 식당에서는 우거지갈비탕이니, 시래기해장국이니 이름 붙여 놓고 팔지만 시래기나 우거지는 부 재료이고 주인공은 본래 엄연히 갈비고 해장국인 셈이다. 그러니 아직까지 어디에서 유명한 시래기 우거짓국을 팔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은 없다.

 

요즘 같은 때는 김장김치 위에 얹은 우거지로 국을 끓여먹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국으로 끓이려면 며칠간 우려내서 소금기를 빼내기 빼야 한다. 슴슴 해지면 먼저 냄비 바닥에 멸치, 디포리, 건새우, 다시마 등을 넣고 된장을 약하게 풀어 자작하게 끓여야 한다. 우거지가 흐물흐물해지기까지 약한 불로 끓이다가 마늘, 양파와 파, 그리고 매운 청양고추를 넣어 먹는 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은근하고 깊은 맛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더구나 많은 손길을 거쳤기에 감칠맛이 더해지는 듯하다.

 

그동안 우리 집 시래기 된장국은 한 번도 식탁에서 내로라하며 주인공 행세를 해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집에 오면 엄마가 만들어준 우거지 시래깃국이 대 환영이다. 그 애들은 더 화려하고 더 있는 고단백의 음식에 익숙해 있을 텐데도 엄마가 끓여준 우거지 시래깃국에 젓가락이 먼저 간단다. 이를 보고 나는 가끔 지금이야 내가 입맛에 맞게 직접 끓여줄 수 있지만 나이 들어 직접 음식을 하게 될 때는 누가 이런 맛있는 국을 끓여줄까? 며느리는 더더구나 아닐 테고 딸도 기대를 못할 것 같다는 혼자만의 걱정도 해 본다.

 

작년 7월에 우리 집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크나큰 슬픔에 싸인 일이 생겼다. 특히 친정어머니께서는 거의 모든 음식을 드시질 못하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며 힘들어하셨다. 이런저런 음식들을 갖다 드려도 며칠 후에 가보면 냉장고 속에 거의 그대로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네가 가져온 우거짓국으로 어제오늘 밥숟가락을 좀 넘겼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좋아해서 우거지 시래깃국을 즐겨 먹게 된 줄 알았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손맛에서 내게 익숙해진 음식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또한 내 입맛에 맞는 우거지시래기국은 우리 자식들한테서 맛볼 수 있을 테지.

 

냉장고 속 김치통에서 우거지를 듬뿍 꺼내어 물에 담가본다. 내일은 모처럼 짬을 내어 친정어머니를 뵈러가야겠다. 시래기 우거짓국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자꾸 듣고 싶어 하시는 당신 손녀가 낳은 16개월짜리 증손녀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

 

△문애선씨는 부안 보안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고, 현재 전국소비자교육중앙회 전북도지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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