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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캐비넷

‘키친 캐비넷(kitchen cabinet)’이라는 단어가 많은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측이 헌재에 낸 답변서에 최순실과의 만남을 ‘키친 캐비넷’으로 표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SNS 등에는 비아냥이 넘쳐 흘렀다.

 

키친 캐비넷은 미국식 정치문화이다. 대통령이 백악관에만 갇혀 살다보면 일반 국민들의 여론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초청해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 듯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비슷하게 우리나라 왕들도 예부터 미행(微行)을 해왔다. 평복을 하고 신분을 숨긴 채 서민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서 국민들의 살림을 살피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을 바로잡았다. 구중궁궐에 살고 있는 임금에게 이러한 민정시찰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미행이나 키친 캐비넷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이러한 전통과 문화를 모욕한 사례다. 키친 캐비넷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참석자들이 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고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과 최순실의 만남은 사적 이익과 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주를 이뤘고, 국민여론에 대한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다. 국정운영을 걱정하기 보다는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둑질과 강탈, 그리고 공갈과 협박 등의 모의가 주로 이뤄졌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와 청문회를 앞두고 조직적인 증거인멸에 나서고 말 맞추기를 시도한 것 등이 바로 그 증거이다.

 

사실 처음에는 ‘키친 캐비넷’을 ‘치킨 케이지(chicken cage)’로 잘못 이해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20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하고도, 아직 그 끝을 모르는 정책의 대실패에 대한 해명과 대책을 기대했다. 닭장을 잘못 관리해서 AI가 이 꼴이 됐으니 앞으로는 닭장 관리를 잘하고 방역에 철저를 기하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검찰수사와 청문회를 통해서 이미 상당부분이 범죄행위로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이를 선의로 포장하고 주장하는 것은 궤변이자 후안무치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변호인단이 국민의 정서를 배신하면서까지 언어를 혼탁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라도 언어가 마술을 부려서 현실을 바꿔주기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이성원 논설위원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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