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이 지난 3일부터 8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 1876년~1958년)는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를 이끈 프랑스 모던아트의 거장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한국 대중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마티스를 제외하고는 야수파 화가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고흐와 고갱, 세잔 등 후기인상파가 한국에 주로 소개됐었다.
바이올린 연주자와 사이클 선수로도 활약했던 블라맹크는 20대 초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1901년 유럽 미술계에 새로운 영향을 끼친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를 보고 큰 감동과 자극을 받았다. 이후 앙리 마티스를 만나고 ‘앵데팡당전’에 처음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야수파의 격정적인 표현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1905년 ‘살롱 도톤’에 블라맹크 등 몇 명의 화가들의 주관적이며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 작품들이 전시된 후 ‘야수’라는 말이 처음 붙여졌다. 야수파 화가들은 자연을 그리되 감정의 격정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바로 짜낸 원색들을 캔버스에 도발적으로 대담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1907년부터 블라맹크는 야수파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는 회색과 흰색, 검은색에 가까운 청색을 두껍게 칠한 풍경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폴 세잔의 말년 작품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으나, 뛰어난 구도는 어느 화가도 구사하지 못하는 그만의 것이다. 그는 생명력이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속도감이 있는 필치로 무겁지만 보석 같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는 자신만의 뚜렷하고 투철한 프랑스 표현주의 양식을 확립한 것이다.
그는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그 풍경과의 관계를 기교 없는 솔직함과 모든 형식주의를 거부한, 거칠지만 자유로운 붓 터치로 구사했다. 특히 눈 내린 겨울 풍경화들은 수직선과 사선의 강한 힘이 느껴지며 흑과 백의 날카로운 대비로 블라맹크 내면의 휘몰아치는 고독과 고뇌가 피부에 와 닿는다. 심지어 비장하고 고절(高絶)하기까지 하다.
“나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어떠한 것도 원한 것이 없었다. 인생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내가 본 것을 그렸다.”라고 그는 유언을 남겼다. 블라맹크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향유하며 감사하는 행복한 화가의 삶을 살았다.
보석 같은 새로운 화가의 발견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며 부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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