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밥상을 들고 온 년이 우덕이라는 언니고, 물병을 가져온 년이 고화라는 동생입니다. 주인.”
계백이 우덕부터 보았다. 튼튼한 몸에 둥근 얼굴, 계백의 시선을 받더니 머리를 굽신 해보였는데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다음은 고화, 언니와는 대조적으로 갸냘프고 갸름한 얼굴,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다.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가락이 가늘고 길다. 계백의 시선을 쫓던 덕조가 다시 헛기침을 했다.
“노예상 말을 들었더니 이것들이 말을 타고 나왔다가 백제 정탐군에게 잡혔답니다. 신라 삼현성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안이었던 모양이요.”
계백이 밥상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조밥을 한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상 위에는 조밥 한그릇과 나물 2종류, 군량으로도 쓰이는 소금에 절여 말린 돼지고기 서너조각과 더운물이 전부다. 덕조가 말을 이었다.
“노예상은 동생되는 고화를 도성의 유흥가에 팔 작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화 네냥을 부르길래 제가 엄포를 놓았지요. 객사에 잡아놓고 칠봉산성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고 했더니 금화 세냥에 언니까지 얹어서 산 겁니다.”
“………”
“잘 샀지요?”
“너, 어젯밤에 아무일 없었느냐?”
입안의 음식을 삼킨 계백이 묻자 덕조가 숨을 들이켰다. 계백을 쳐다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주인, 무슨 말씀이시오?”
“내가 여자들한테 물어보랴?”
“주인.”
어깨를 편 덕조가 입안의 침부터 삼키고 나서 말했다.
“저는 단지, 그러니까…”
그때 계백이 여자들을 둘러보았다.
“어젯밤에 저 사내가 방에 들어왔느냐?”
“네.”
대답을 언니 우덕이 했다. 우덕이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하지만 제가 막았습니다.”
“어떻게?”
“동생을 겁탈하려고 하길래 제가 죽겠다고 했지요. 칼을 목에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순순히 물러갔습니다.”
계백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고화는 지금까지 한번도 계백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넌 벙어리냐?”
그때 고화가 머리를 들었다.
“아닙니다.”
목소리가 맑아서 여운이 일어난 것 같다. 계백에 고화의 검은 눈동자에 박힌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계백의 시선이 다시 고화의 몸을 훑었다.
“너희들 주종간이지?”
순간 둘의 몸이 굳어졌다가 먼저 우덕이 흔들렸다.
“나리 아닙니다. 저 분은, 아니, 쟤는 제 동생입니다.”
그때 계백이 머리를 끄덕이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덕조에게 말했다.
“한번만 더 여자 방에 들어간다면 네 물건을 뽑아버릴테니까 명심해라.”
이것으로 첫 대면이 끝났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