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수년 전, 지역의 모 건축사사무소로부터 초등학교 현상설계를 함께 해줄 것을 의뢰받았다. 유럽에서 잠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 후, 고향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흔쾌히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계획에 앞서 근래 국내에서 진행되었던 학교와 관련된 현상설계 자료들을 수집했고, 현재의 학교공간들이 필자가 경험했던 80년대의 학교공간에서 크게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초등학교의 경우 당선작이라 함은, 일제 강점기부터 박스형 교실들이 복도를 따라 일렬로 배치된 공간에서, 한 두 개의 교실을 지우고 원색의 가구들을 몇 개 배치하고 외부 입면에 원색의 칼라강판 몇 장 붙여놓은 것으로 ‘아이들을 위한 건축물, 새롭고 창의적인 공간’이라고 납득하기 힘든 용어들을 대입시킨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작업들로 당선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이러한 룰을 벗어난 경우에는 당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수집된 자료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공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공간이 되어줄 수 있을까.
△자연과 함께
면역학자이자 바이러스학자인 조너스 솔크(Jonas Salk, 1914-1995)는 자신의 지하 연구실에서 문제가 잘 풀리지 않던 중 햇살과 좋은 풍경을 가진 이탈리아의 아시시(Assisi)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고 곧바로 연구실로 돌아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건축가 루이스 칸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솔크연구소를 건설했고, 그의 요청으로 건축공간과 창의력에 관한 연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건물은 조경과 관계하고 있지 않다. 나무의 종류, 크기, 그리고 어느 곳에 위치할 때에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한 고민 없이 계획되기 때문이다. 학교건물은 그 규모가 커지면서 2층에서 5층까지로 높아져서 외부공간의 이용도가 줄어, 그야말로 등교 후 교실 책상에 앉아 수업만 받다가 하교하는 매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공간 환경
동물시험을 통한 ‘풍부한 환경(Enriched Envir onment)’과 ‘결핍한 환경(Imporverished Envir onment)’에서의 해마 속 신경세포의 변화를 통해, 해마 속 신경세포의 증가는 공간기억과 학습능력을 향상시켜주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쉘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를 교도소의 공간과 동일시 했던, 지금의 단조로운 학교공간과 다채롭고 변화 있는 학교공간을 비교해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비교해볼 수 있겠다.
여러 개의 저층형 건물을 획일적이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하여 생겨나는 다양한 외부공간들은 분명 학생들에게 생동감을 줄 것이다.
작은 언덕이 교실 바로 옆에 놓여 질 수도 있다. 계절마다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선사해줄 수 있는 유실수로 가득할 수도 있다. 건물은 기다란 직육면체가 아닌 정사각형이나 원 또는 비정형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주어진 프로그램에 따라서 공간은 다양한 높이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공간들이 반영되기 위해서 교육청은 지금껏 진행해왔던 방식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열린 자세로 외부전문가들과 학생들과 학교와 함께 소통하여 진정 학교가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줄 수 있도록 힘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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