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그날 밤 침상에 누워있던 계백이 방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귀인(貴人) 차림의 여자가 들어서고 있다. 침상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계백이 여자에게 물었다.
“누구냐?”
“우에스기의 소실이었던 오타니라고 합니다.”
맑고 높은 목소리였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맑은 눈으로 계백을 응시하고 있다. 거리는 다섯 걸음 정도. 기둥에 붙여 놓은 양초 서너 개의 불꽃이 흔들렸다. 여자가 들어와 공기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키가 크고 날씬했다. 긴 겉옷을 입었지만 허리를 조여맨 자태가 색정적이다.
“이런.”
계백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어느덧 소실이 다섯이나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죽거나 쫓아낸 영주의 처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아이를 가진 처첩은 함께 죽거나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승자의 몫이 된다. 그리고 여자 측에서도 오갈 데가 없는 터라 원하는 것이다
“누가 보냈느냐?”
계백이 묻자 여자의 시선이 내려졌다.
“예, 중신(重臣) 노무라님이십니다.”
“노무라가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냐?”
“주군께서 거부하시면 바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나가서 노무라를 불러와라. 너도 같이 들어오도록.”
그러자 여자가 절을 하더니 방을 나갔다. 자시(12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거성(居城)인 토요야마 내궁 안은 깊은 정적에 덮여 있다. 계백은 이쓰와(五和) 거성에서 바다와 가까운 이곳 토요야마 성으로 거성을 옮긴 것이다. 그때 노무라와 함께 여자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너는 어떤 기준으로 여자를 내 침소에 넣는 것이냐?”
계백이 질책하듯 물었지만 노무라는 머리를 들고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우에스기를 멸망시킨 후로 한번도 우에스기 내궁의 여자들을 위무하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 위무를 시켜?”
계백이 노무라를 노려보았다.
“내가 포로로 잡은 적장의 처첩을 위무시켜야 된단 말이냐?”
“이젠 주군의 처첩이올시다.”
정색한 노무라가 말을 이었다.
“주군, 한시바삐 안돈시켜 주시옵소서.”
“이년은 누구냐?”
계백이 눈으로 오타니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무라가 서둘러 대답했다.
“우에스기가 멸망시킨 북쪽 영지에서 포로로 잡혀왔다가 이번에 남게 된 여자입니다. 아비가 우에스기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래서 우에스기의 소실이 되었다가 이번에는 나한테 넘겨졌다는 말인가?”
“예, 주군. 본인도 주군의 소실이 되겠다고 합니다.”
계백이 고개를 돌려 오타니를 보았다.
“이유가 뭐냐?”
“예, 자식을 낳아서 의지하고 살고 싶습니다.”
오타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주군의 자식이라면 아무도 무시하기 못하겠지요. 강한 자식을 낳겠습니다.”
숨을 들이킨 계백이 노무라를 보았다.
노무라도 놀랐는지 고개를 돌려 계백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오타니에게 말했다.
“잘 알았다. 내궁에서 대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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