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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그림 속 매화의 묵향

'서화첩' 속 매화도,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서화첩' 속 매화도,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매화 그림을 자주 그렸던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은 실제 매화보다 매화 그림이 더 좋다고 한 바 있다.

人道眞梅好 사람들은 진짜 매화가 좋다 하지만

吾憐畫更好 나는 매화 그림 더욱 좋아하네

高標看其潔 세속 높이 초월함 이미 조촐하며

未有減容時 용모 감쇠하는 때도 없어라

매화 그림은 실물 매화의 형사形寫를 넘어서서 전신傳神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먹을 찍어 그은 붓끝에서 묵향이 더해져, 그림은 매화의 고결한 자태를 포착하는 동시에, 이미 형태를 넘어선 정신적인 가치를 전한다.

또한, 호남삼걸湖南三傑로 일컬어지는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와 석정 이정직이 나눈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대 그림을 본 적 있으시오? 가장 뛰어난 것은 뜻을 그려 신을 전한 것이요[寫意而傳神], 그 다음은 형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사형寫形]입니다. 꽃과 새를 예로 들자면, 꽃받침, 꽃봉오리, 꽃, 꽃술, 새의 부리, 눈, 깃털, 발톱 등을 꼭 닮도록 그리는 것입니다. 익숙해지고 또 익숙해지고 능숙하고 또 묘해진 이후에야 형사를 벗어나 그 뜻을 그리고 정신을 전할 수 있습니다.

 

‘묵매도’ 이종석 소장.
‘묵매도’ 이종석 소장.

정교한 표현으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서서, 그동안 공부해 온 학습량과 내공을 통해 필력이 충분히 무르익은 후에야 비로소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얼마나 무르익어야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이정직이 그린 매화 그림은 똑같은 매화가 하나도 없다. 화면 구성을 자유자재로 하였고, 그렇게 매화의 다채로운 면모를 통해, 매화의 본질과 의미를 찾고자 누구보다 노력했음을 알게 해 준다. 홍매紅梅와 백매白梅를 아래위로 배치하고 빈 공간에 시를 곁들인 이종석 소장 <묵매도> 에서는 화면 구성의 묘를 볼 수 있으며, 국립전주박물관 <서화첩> 에 실린 14점의 매화도에서는 다채로운 매화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매진했던 이정직의 노력을 읽어낼 수 있다.

/민길홍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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