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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괴물 아이 - 전소현

삽화=정윤성 기자
삽화=정윤성 기자

나는 괴물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건 열두 살 무렵이었다. 밤마다 왼쪽 가슴 언저리가 웃음이 날 정도로 간지러웠다. 어느 날부터, 왼쪽 가슴엔 초록색 털이 자랐다. 그리고 그 털은 점점 자랐고, 학교 운동장에 있는 잔디와 같아졌다. 엄지손가락 마디의 길이였는데, 가위로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났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피부과부터 시작해 온갖 병원을 다 데리고 다녔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상해요.”

“알 수 없지만, 건강엔 이상이 없습니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엄마와 달리 열두 살의 나는 기뻤다. 만화에서 보던 영웅이 변신했을 때의 모습처럼 나도 변신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영웅의 증표를 친구들에게 가서 보여줄 생각에 신이나 설레하던 전날 밤을 기억한다. 다음 날 입고 있던 티셔츠를 짠하며 벗었다. 친구들의 표정은 제각기였다. 감탄이 섞인 소리도 들렸고 만져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괴물이야 라고 외쳤다. 이건 괴물이 아니라 영웅의 증표였는데, 괴물 소리가 점점 커졌다.

“괴물이다. 괴물. 몸에서 이상한 게 자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난 듯 복도를 뛰어다니며 괴물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곳저곳에 끌려다녀야 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옷을 멋대로 벗겨내려고 했고, 모르는 사이 내 사진이 찍혀 돌아다녔다. 엄마는 내 팔을 붙잡고 울면서 나를 때렸다. 뭐가 자랑이냐고, 그걸 왜 보여주냐며 나를 혼냈다. 집 앞에는 카메라를 든 어른들이 나를 찍으려고 애썼다. 학부모들은 나를 전염병이 걸린 사람처럼 학교 밖으로 쫓아내자고 회의를 했다. 텔레비전에선 나를 괴물 아이라고 소개했다. 아, 나는 영웅이 아니라 괴물이었구나.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있는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세면대에 올라가 옷을 벗고 그 괴물의 증표를 잘라냈다. 아무리 잘라도 끝에 남아있는 것까지는 자르기가 힘들었다. 가위를 던지고 손으로 벅벅 긁었다. 긁어도, 잡아 당겨봐도 사라지지 않았다. 너는 절대 괴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피가 새어 나왔다. 피가 초록색의 잎을 빨갛게 적셔갔다. 엄마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장실 안에 엄마의 울음소리와 나의 고함이 한 데 섞여 울려지고 있다.

전교생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전학을 갔다. 만화방, 오락실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시골 동네였다. 6학년은 나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전학 첫날 선생님 손을 잡고 반으로 걸어갔다. 바닥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반 앞에 도착해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도 나는 바닥만 보았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라고 말한 뒤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시켰다. 그냥 대충 고개를 숙이고 이름을 말했다. 잠깐의 정적 뒤 박수 소리가 들렸다. 창가 빈자리에 앉았다. 종례시간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음 날, 운동장에서 얼핏 어제 반에서 봤던 애 중 하나와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가던 발걸음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쿵쿵 울렸다. 뛰면 뛸수록 심장 소리가 더 커졌다. 숨이 차올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특유의 짠 향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바다가 있었다. 심장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파도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실내화 가방을 대충 모래사장에 던지고 그 위에 앉았다. 불안함에 요동치는 내 마음과 달리 파도는 점점 고요를 되찾았다. 엄마한테 지금쯤이면 전화가 갔으려나. 내가 없어진 건 아무도 모르겠지. 이제 어떡해야 하지. 왜 나는 괴물이 되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머리를 잔뜩 굴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내가 있는 쪽과 점점 가까워져 고개를 들었다.

“왜 나보고 도망쳐?”

아까 운동장에서 봤던 그 애였다. 나도 모르게 몸이 뒤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 나를 보고도 그 애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왜 나를 뒤 따라온 건지 궁금한 것보다 그냥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옆을 힐끔 봤는데 그 애는 바다에만 시선을 두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그 애와 나 사이엔 기러기 소리, 파도 소리가 전부였다.

“나 너 알아. TV에서 봤어.”

그 애가 정적을 뚫고 말을 했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나도 모르게 어쩌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애가 그제야 나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애의 눈엔 벌겋게 변해버린 내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몇 겹을 껴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괴물의 증표가 옷을 뚫고 튀어나올까 무서워 손으로 가렸다. 잔뜩 웅크린 나와 달리 그 애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더니 이내 눈앞으로 그 애의 팔이 다가왔다.

“이것 봐. 멋지지 않아?”

그 애의 팔엔 검은색의 반점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눈이 찌푸려질 모습이었는데 그 애는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져보지 않겠냐고 그 애가 제안했다. 뭐에 홀린 듯이 손을 그 애의 팔에 갖다 댔다. 보기와 달리 피부가 훨씬 매끈거렸다. 그 애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야. 엄마가 그랬어. 내가 사랑해줄수록 더 예뻐질 거라고.”

“너한테 생긴 것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금도 예쁘겠지만 네가 사랑해주면 사랑해줄수록 더 빛날 거야.”

처음으로 누군가가 가슴에 생긴 것을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왼쪽 가슴이 뜨겁고 간질거렸다. 마치 처음 잔디가 폈을 때처럼. 금방이라도 그 속에서 해바라기가, 장미가 예쁘게 피어날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학교에 가자고. 아마 다들 기다릴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내민 손을 붙잡았다. 우리의 손 사이에 있는 모래가 서걱거렸다.

/전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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