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2-12-02 18:51 (Fri)
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 호국(護國)의 고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주시는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올 하반기 송천동 일대에 ‘보훈누리공원’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시는 이 공원을 ‘호국’과 ‘보훈’을 주제로 국가수호와 독립운동에 관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공간을 구성하여, 시민들이 이를 추모하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독립운동 공간에는 기존시설인 전북독립운동추념탑과 충혼각을 두고, 국가수호 공간에는 추모의 벽과 인공연못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한, 선조들의 뜻을 기억하고 승화하는 공간에는 호국영령탑과 함께 광장이 마련되고, 교육체험 공간에는 보훈전시관을 지어 국가수호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를 선보인다. 

이번 보훈공원 만들기는 기존의 조성 공간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장소성을 확장하여 나라사랑의 정신을 더욱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한 국책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아쉬운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전주가 호국의 고장으로서 이미 지니고 있는 두 가지 문화콘텐츠를 미처 연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문화재지킴이와 전주 신흥학교다. 

image
전주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열린 2021 문화재지킴이날 기념식에서 문화재지킴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년 6월 22일, 문화재청은 이 날을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선포하면서 목숨을 걸고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전북의 선조들과 충혼을 기념하였다. 1594년 6월 22일, 임진왜란으로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던 사고(史庫) 네 곳 중 세 곳이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만이 남은 상황에서, 선비 안의와 손홍록 등이 나서 전주에서 정읍 내장산까지 실록을 이안(移安)하여 밤낮으로 국가의 역사를 보호한 날을 문화재지킴이의 효시로 정한 것이다. 전주사고는 경기전의 단순한 부속시설이 아닌, 대한민국 호국정신의 시작을 알리는 문화재지킴이의 성지가 되었다.

image
2019 문화재지킴이 항일독립유산 전국 릴레이 활동 발대식.(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문화재지킴이 운동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기 위해 지난 2005년 4월부터 시작되었다. 17년이 지난 현재에는 전국 8만 4000여명의 자원활동가(개인·가족·학교·NGO 등)와 기업 및 공공기관 등 61개 협약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문화재 정화활동, 상시점검과 순찰, 홍보·활용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지원과 기부 활동을 기초에 두고 있다. 2021년 6월 22일에는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전주시가 후원하는 행사로서 전라감영에서 ‘제3회 문화재지킴이 날’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이로써 전주시는 문화재사랑을 통한 호국정신으로 시민모임의 장을 형성할 수 있는 밑바탕을 얻게 되었다.

전주가 호국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래세대의 적극적인 참여와 세대 간 교육·소통 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독립운동의 발원지에서 선배들의 애국활동을 접하고 공부한 주체들을 동참시킨다면 이보다 값진 역사적 계승은 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독립운동의 교육 산실 중 하나가 전주 신흥학교다. 

image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 전경.(국가등록문화재)

신흥학교는 1900년에 미국 선교사 레이놀즈(Reynolds, 1867-1951)가 전주로 와 자신의 주택에서 학생 1명을 데리고 교육을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 1906년, 학교 측은 조선시대 학당인 희현당(希顯堂) 옛 터에 집 한 채를 지어 학생 55명을 가르치기에 이르렀고, 1909년에는 대한제국으로부터 사립 신흥학교로 인가를 받아 중등교육시설로 거듭났다.

당시 신흥학교의 한국인 교사들은 강한 구국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고 학생들에게 자주독립에 대한 신념을 가르쳤다.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전주의 3·1만세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시민들을 이끌었고, 이들 중 일부는 일제 고문에 의해 옥고를 치루고 숨졌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흥학교 80여명의 학생들은 또다시 비밀리에 거사를 계획하였다. 1930년 1월 25일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결의문을 읽고 자주독립만세를 외친 후, 일제의 총칼에 의해 연행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7년,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학교 측은 ‘학생들을 신사에 참배하게 하기 보다는 학교를 폐교하자’고 의결하여 강력한 반일운동의 의지를 드러냈다. 

해방 후 신흥학교는 다시 문을 열고 꾸준히 인재 양성에 힘써, 2022년 현재까지 졸업생 5만여 명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신흥학교 총동문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일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자 학생들을 선발하여 중국에 소재한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을 지원하고 있다. 2005년, 학교 강당 및 본관 포치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현재 학교 입구와 정류장에는 각각 전주 3·1운동 기념비와 3·1운동 기념 승강장이 꾸며져 있다. 학교, 교사, 학생 모두가 대한독립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주시가 진정한 보훈을 누리고자 꾸린 공원이라면 단순히 시설과 전시물만을 만드는데 그칠 것이 아니다. 그 참뜻을 이해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전국의 문화재지킴이들, 그리고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이끌어 온 전주 학교 학생들과 합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관의 긴밀한 협력 하에 지역사회의 ‘호국유산’, ‘보훈유산’을 발굴하고 세대 간의 올바른 계승으로 연결하여 전주가 ‘제일호남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image

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