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나니, 결국 고향이더라”…돌아온 탈전북 베이비부머의 선택 청년은 수도권으로, 소득 격차가 만든 ‘단방향 이동’ 고착 정착은 또 다른 문제…일자리·정주 인프라는 여전히 과제
전북의 인구 감소는 더 이상 출생률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일자리와 소득을 따라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지역은 빠르게 고령화됐다. 반면 최근에는 수도권에서 경력을 쌓은 중·장년층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흐름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3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은 13만 명으로 전체 이동 인구의 69.6%를 차지했다.
이들의 평균소득은 1년 사이 22.8% 증가한 반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한 청년의 소득 증가율은 7.6%에 그쳤다.
일자리와 임금 격차가 청년 이동을 사실상 ‘단방향 구조’로 고착시키고 있는 셈이다. 전북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청년 순유출률은 –1.3%로 전국 평균의 두 배를 넘고, 2023년 한 해에만 약 5800명이 순유출됐다.
이처럼 청년 유출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기존의 ‘청년 유입 중심’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신 주목되는 흐름은 중·장년층의 귀환이다.
수도권에서 직장 생활을 마친 이들은 일정한 자산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북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인구 보완을 넘어 지역 경제의 새로운 인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들을 붙잡을 정착 기반이다. 전직 지원, 창업 인프라, 지역 일자리, 생활 커뮤니티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귀환이 장기 정착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전북 인구 정책은 ‘유입을 기다리는 구조’에서 ‘들어온 인구를 정착시키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흐름은 지역 산업 현장의 인력난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역 중소기업의 51.4%가 인력 부족을 겪고 있으며, 제조업은 60% 이상이 인력난을 호소했다. 특히 기업의 52.2%는 50대 이상 인력 채용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숙련도와 책임감, 장기 근속 가능성을 강점으로 평가했다.
한경협 관계자는 “중·장년층의 지방 이동 수요는 분명 존재하지만, 정착을 뒷받침할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유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은행원에서 나무 농부로'…임실서 시작된 ‘전환의 삶’
임실 청웅면의 한 밭. 정정모(70) 씨는 요즘 하루 대부분을 나무 사이에서 보낸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30여 년을 근무한 그는 정년퇴직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남긴 땅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정 씨는 30년 넘게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남긴 밭이 있었지만, 귀향의 결정적 이유는 생계보다 삶의 방식에 가까웠다.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 조경수 몇 그루를 심고 가꾸며 시간을 보내던 일이 점차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나무가 자라면서 판매 문의가 이어졌고, 입소문을 타며 거래처도 늘었다. 지금은 일정한 수입이 발생하는 ‘주업’이 됐다.
정 씨는 “처음엔 소일거리였는데, 지금은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며 “나무를 키우는 재미도 있고, 용돈벌이도 되니 자연스럽게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택은 전형적인 귀농·귀촌 정책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을 통해 농업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산과 경험, 그리고 삶의 전환 욕구가 맞물리며 형성된 사례다. 실제 그는 “특별히 지자체에 기대하는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러한 개인 중심의 귀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역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농자재 수급, 유통 경로, 의료와 교통 등 생활 인프라가 부족할 경우 정착의 안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 씨처럼 수도권에서 경력을 쌓고 돌아오는 세대는 일정한 자산과 사회 경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착 지원을 넘어, 생산과 소비가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퇴직 후 다시 시작”…익산 금마에서 마트를 연 김 씨
익산시 금마면의 한 골목. 해가 채 뜨기 전, 작은 마트 앞에 물류 차량이 멈춰 서고 상자들이 하나둘 내려진다. 가게 문을 연 김모 씨(56)의 하루는 상품 진열로 시작된다.
김 씨는 수도권에서 30년 가까이 식품 유통·물류업에 종사했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이어왔지만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고향인 익산 금마로 돌아와 자신만의 마트를 열었다.
단순한 귀향은 아니었다.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군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컸다. 조직의 일원이 아닌, 스스로 책임지는 생계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지역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금마는 유동 인구가 적고 소비 규모 자체가 제한적이다. 개업 초기에는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단골 확보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구매력이 높고 방문이 잦은 젊은 소비층이 부족한 점은 가장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전환점은 외부에서 찾아왔다. 지역에 외국인 계절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소비 구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 씨는 이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설정하고 베트남·태국·중국 식료품을 들여왔다. 결과적으로 상품 구성이 다양해지며 매출도 점차 안정세를 보였다.
현재 이 마트는 지역 주민과 외국인 노동자가 함께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판매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활권이 만나는 접점 역할도 하고 있다.
김 씨는 “농촌은 인구가 적은 것보다 소비가 약한 게 더 큰 문제”라며 “주민 상당수가 장보기나 여가를 위해 대전 등 외부 도시로 나가면서 지역 내 돈이 돌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북에서 점차 늘고 있는 ‘전직형 귀환’의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일정한 경력과 기술을 가진 중장년층이 돌아와 새로운 생계를 구축하는 흐름이다. 다만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개인 역량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내 소비 기반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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