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전북 남원에는 춘향제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올해도 다음 주 30일부터 일주일간 이어진다. 1931년 춘향을 기리는 제향에서 출발한 이 축제는 해방 이후 공연과 퍼레이드가 더해지고, 1970~80년대에는 대중참여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춘향이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실화에 기반한 인물로 보기도 하고, 조선 후기 고전소설 춘향전의 허구적 주인공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제향의 대상이 되어온 사실은, 춘향이 이야기 속 인물을 넘어 상징적 존재로 받아들여져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춘향제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남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춘향을 만나고 있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춘향은 정절과 순애의 상징일까. 사랑을 향해 변함없이 기다리는 마음, 권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절개는 오랫동안 미덕으로 칭송받아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에 머무르는 순간, 춘향은 더 이상 현재와 호흡하지 못하는 인물로 굳어진다.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묻는다면, 춘향은 과연 ‘기다리는 여성’이었을까.
오히려 춘향은 능동적인 존재였다. 스스로 사랑을 택했고, 그 선택에 끝까지 책임을 졌다. 변학도의 강요와 폭력 앞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타협하지 않았다. 당시 여성이라는 조건과 신분적 제약이라는 이중의 한계 속에서도 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춘향은 순응의 인물이 아니라 질서에 균열을 내는 존재였다.
우리는 여기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신화’ 개념을 떠올린다. 신화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가 의미를 부여하며 만들어내는 일종의 기호다. 바르트가 신화를 언급한 것은 고대 이야기가 대중문화 속에서 지배이데올로기로 자연스럽게 포장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논의는, 이야기와 상징이 시대와 맥락에 따라 새롭게 의미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춘향 역시 실존 여부를 넘어 시대마다 다른 가치가 덧입혀진 상징으로 읽힌다. 한때는 정절의 표상이었고, 오늘날에는 선택과 저항의 주체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오늘날 ‘춘향다움’이란 더 이상 예쁜 외모나 순응의 여성상이 아니다. 이는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지닌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춘향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분명해진다. 바르트가 지적했듯 신화가 특정 가치와 질서를 고착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춘향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 곧 기존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입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춘향은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되고 현재의 삶과 맞닿는 유의미한 존재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축제 역시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공유할 것인가를 묻는 담론의 장이 될 수 있다.
이 봄, 제96회 춘향제를 맞아 오늘의 춘향을 상상하는 일, 그리고 그 상상이 우리의 현재와 만나는 순간, 춘향은 다시 태어난다. 이를테면 오늘의 춘향은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과 인문학적 깊이, 말솜씨와 예술적 ‘끼’를 겸비한 인물이면 어떤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 침묵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세계와 관계 맺는 사람. 그 새로운 ‘춘향다움’을 발견할 때, 춘향제는 전통을 넘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미래로 세계로 이어지는 문화로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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