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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공연 극단 '별'의 세 남자] "야외공연은 가장 정확하고 냉정한 무대죠"

분명 만나기로 한 날이 맞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날짜와 시간이 적힌 수첩을 펼쳐서 확인한 다음 한번 더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주변이 시끄러운 듯 했고 전화기의 주인은 다짜고짜 전주 한옥마을로 오라고 했다. 그들의 이번 무대는 한옥마을이라는 말과 함께. 도리가 있나. 별 볼 일도 없이 바빴던 하루를 뒤로 하고 극단 '별'을 보기 위해 나섰다. 연극배우인 한 남자, 그리고 얼마 전까지 동문 네거리 술꾼들에게 '별아저씨', '별사장님'으로 불리우던 한 남자. 현재 법대생인 또 다른 남자. 시커먼 세 남자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별'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거리극을 하는 극단 '별'의 단원들. 송이석 씨(47)와 박규현 씨(37), 김호 씨(27)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에겐 거리가 공연장이고 작은 수레가 그들의 무대다.△세 남자의 인형극11월 한옥마을을 지나는 바람은 상냥하지 않았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드는 것은 너무 많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먼저 알아챈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었으므로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됐다. 인형들이 하나둘 아이들 앞에 나왔다. 짧게는 3~4분, 길게는 5~6분 정도의 이야기를 담은 박규현 씨의 인형극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김호 씨의 마술 공연이 펼쳐졌다. 눈을 반짝이며 마술사의 손놀림을 쫓는 아이들과 어른들. 그때 극단 '별'의 맏형 송이석 씨는 4m가 넘는 도깨비 인형을 짊어지고 공연장 주변을 돌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박규현 씨에게 물었다. 찬바람 막아주는 공연장을 떠나 밖으로 나올 결심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야외 공연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처음에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의외의 상황들이 생겨요. 당장 공연하는 장소에서 제가 관객과 소통하고 같이 호흡을 하지 못하면 바로 사람들이 가버리니까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가장 정확하고 가장 냉정한 무대가 거리인 거 같아요." △아이들 눈망울이 힘무려 10년씩 나이 차가 나고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세 남자는 어떻게 만나 '별'이 됐을까. 극단 '별'이 만들어 진 것은 지난 2011년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엔 두 남자의 작당(?)으로 시작됐다. 인형극단 '꼭두'에서 활동한 송이석 씨와 평소 친분이 있던 연극배우 박규현 씨는 인형극과 거리극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게 됐고 그때부터 두 남자는 제대로 눈이 맞았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2가에 마련한 송이석 씨의 목공예 작업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속닥속닥한 끝에 극단 '별'이 탄생하게 된 것. 공연에 대한 구상은 두 남자가 함께하고 이야기를 다듬는 작업은 박규현 씨의 몫. 인형은 송이석 씨가 직접 만든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커다란 도깨비 인형에서부터 줄을 연결해 조종을 하는 크고 작은 마리오네트 인형들, 손가락에 끼워서 조작하는 소품 인형, 인형극의 무대가 되는 손수레에 이르기까지.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은 모두 송이석 씨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극단 '별'의 첫 번째 거리공연은 2년 전. 전주 완산칠봉에 마련된 근린시설 안에서였다. 두 남자에겐 여러 모로 잊을 수 없는 공연이다. 음악이 필요해서 음향장비를 준비해갔는데 하필이면 태풍이 지나간 후여서 전기 시설이 고장 난 상태. 궁리 끝에 차를 가지고 올라온 두 남자. 앞뒤 네 짝의 차문을 활짝 열어둔 채 차의 오디오로 음악을 재생해 가면서 공연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공연 후에 두 사람은 없는 형편에 2000만 원짜리 음향장비로 공연을 했다고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잊히지 않는 것 하나, 바로 아이들이다. 마침 가까운 동네 아이들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공연 내내 신기하게 바라보던 눈망울들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냥 인형만 갖고 가는 것만으로도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단출하던 극단에 식구가 늘어난 것은 지난 봄. 올 첫 번째 공연부터 김호 씨가 '별'에 합류했고 막내 단원이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술에 빠져 살았던 김호 씨. 학교 수업과 공연이 없는 날에는 방과후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마술지도를 하고 있다. △불러도 부르지 않아도 거리공연세 남자가 본격적으로 함께 공연을 다닌 것은 올해 3월부터다. 전주시 교동에 자리한 한옥생활체험관 마당에서 열었고 그 인연으로 매월 넷째주 금요일에 공연을 해왔다. 거리가 이들의 무대이므로 불러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때로는 부르지 않은 곳이라도 간다. 전주시 '동문거리축제'에 참가했고 부안, 남원 등을 돌아다녔다. 시장에도 가고 섬에도 다녀왔다. 학생이라고는 탈탈 털어 3명이 전부인 식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했다. 단원이 세 명인 '별' 극단은 올해 30여차례 거리 무대에 섰다. 단원은 단출해도 앞으로 계획은 단단하다. 앞으로는 판소리 다섯바탕으로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만들어 보고 싶단다. 그래서 내년에는 먼저 다섯바탕 중에 하나를 만들어 볼 계획. 극단 꼭두에서 춘향전을 인형극으로 무대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송이석 씨가 인형극에 사용된 인형을 만들었고 박규현 씨가 인형 조종자로 참여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세 남자는 꾸준히 거리에 무대를 마련하고 공연을 펼칠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별스럽게도 극단 '별'의 단원들은 거리극이 좋으니까. 별나게도 이들은 거리에서 만난 관객이 좋으니까.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 직장인에서 배우로 변신한 박규현씨 "어느날 지는 해 보며 불쑥 연극하고 싶어졌어요"11월의 햇살이 다정한 날. 박규현 씨를 다시 만났다. 20대 후반에 연극을 시작해서 10년간 무대에 올랐던 배우다. 그는 한동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이동통신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했지만 하면 할수록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는 해를 보는데 불쑥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었다. '연극을 해야겠구나.' 밑도 끝도 없는 그 생각을 따라간 그는 늦은 나이에 연극배우가 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영화 관련 일도 아니고 학창시절 빠져 지낸 음악도 아니고 왜 하필 연극이었는지는 아직도 그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 지는 태양을 따라간 그는 연극무대에서 떠오르기를 꿈꾸었던가 보다. 그 후로 10년 동안 무대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웃고 울었다. 그리고 거리공연은 그의 삶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다. 맨 처음 거리극에 대한 그의 관심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했다.김정경 문화전문시민기자(전주MBC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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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5 23:02

캐나다인이 운영하는 수제버거집 '전주 다이너'

현재 중년기를 보내는 세대의 어린시절만 해도 외국인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인형같은 사람들이었다. 신비스럽고 이상하기도 한 그런 사람이 길거리에 지나갈 때면 눈을 떼지 못하고 몇몇 동네 친구들과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1990년대 이후 다문화사회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이제 피부색이 다르거나 출신국이 다른 아이들, 여성, 청년을 같은 아파트에서 학교에서 볼 수 있다. 보는 것만이 아닌 이제 소통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도내 살고 있는 이주민의 수는 3만5281명. 도내 인구의 약 1.9%다. 도내를 삶터로 살아가는 이 많은 외국인이 이주민이 아니라 도내 정착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를 그들에게 강요하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소통의 매체로 공유해야 한다. 전주시 평화동 한 식당, 단지 음식을 먹는 식당이 아닌 전주시민과 외국인과 소통하고 외국인의 향수를 달래주는 치유의 공간이자, 다양한 문화인종성별이 차별받지 않고 허용되는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국적 아지트 캐나다인이 운영하는 수제버거가 유명해 외국인들이 북적인다는 그곳이다. 남녀노소 대략 100여명의 할로윈 파티로 동네가 시끌벅쩍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았다. '전주에 이런 곳이?'라는 의문으로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생각보다 우리의 가까이에 있었다. 삼천동 대로변, 예전에 사용하였던 전주시 로고가 약간 변형된 간판이 보인다. '전주 다이너(jeonju diner)'는 캐나다에서 온 데이빗이 운영하고 있는 외국식 레스토랑이다. 하얀색 차가운 형광등 대신 오렌지빛 조명, 영화에서나 봄직한 축구게임기계, 무심한 듯 놓였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이 유럽 작은 마을 식당에 들어온 기분이다. 들어가자마자 '겁나게 맛있는 음식'이라고 그리 어색하지 않은 글씨체로 씌인 메뉴판이 눈에 띈다. 메뉴는 삼천버거, 전주버거, 전라버거, 배부른 아침. 정겨운 한국말이었다. 버거의 크기에 따라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이름을 따서 삼천전주전라버거라 지었다."제가 이름을 짓는데 좋은 재능이 있는거 같아요." 데이빗은 전주에서 산지 10년이 되어간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1년만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벌써 10년을 살고 있다. 그는 전주에서 부인을 만났고 영어강사로 활동하다 지난 2011년 전주 다이너를 열었다.캐나다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그가 버거집을 차린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아버지는 햄버거 광이셨거든요. 특히 햄버거 속에 들어가는 고기를 굽는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으셨죠. 뒷마당에 200만 원이 넘는 바비큐 시설을 만들어놓고 항상 어떻게 하면 고기를 더 맛있게 잘 구울 수 있을지 연구하셨죠. 아버지는 고기만을, 어머니는 아주 신선한 채소를 준비해 마을사람을 초대해 대접하곤 했는데 그 맛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런 바비큐 초고수의 햄버거를 먹고 자란 저에게 맥도날드는 아무것도 아니었죠."아닌게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 이곳은 버거, 스파게티, 케사디아 등 외국인들이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음식맛으로 유명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의 30%가 외국인. 그 중에서도 90%가 전주에 살고 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통해 이곳이 알려졌고 지금은 멕시코, 호주, 필리핀, 스리랑카,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독일 등 다국적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다."전주 다이너는 꼭 햄버거만을 파는 곳은 아닙니다. 저희 식당은 어떤 사람에게는 고향집이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만남의 장이기도 합니다. 고향의 음식은 집과 가족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외국인 친구는 저희 햄버거를 먹다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런 거죠. 또 어떤 친구는 스파게티를 먹으며 고향의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에게 그들의 집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요?" △선입견, 차별이 없는 열린공간전주 다이너에서는 파티도 자주 열린다. 할로윈, 크리스마스같은 기념일은 물론이고 데이빗이 개인적으로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제는 입소문을 타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외국인은 물론 대학생, 이웃들, 데이빗의 여섯 살, 여덟살 난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가족 등 100명은 족히 넘을 정도다."100여명이 식당 안, 바깥 테라스에 가득찼었죠. 바닥에 온통 음식으로 범벅이 되기도 하고 유리문에 음식 묻은 손자국 등 그런 난리가 없어요. 그래도 파티 호스트가 되는 건 정말 I love it! wonderful!이에요" 주최자가 있지만 모인 사람들이 놀이거리를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이 파티의 특징이다. 서너명씩 같은 탁자에 모인 사람들은 트리비아(trivia)라는 게임을 한다. 잡다한 지식, 일반상식을 뜻하는 말로 서로의 설명을 통해 외국인에게 조금 어려운 단어, 상식퀴즈를 맞춰가는 게임. 처음에 어색했던 사람들이 게임을 하다보면 금세 친구가 된다, 다른 일행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안 되는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파티가 진행된다. 한 사람이 주도하지도 않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언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집중하고 귀기울여 듣고 이해하고 인정한다. 아직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색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끼리끼리 모여야 하고 내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과 다르면 얼굴 붉히기 십상이다. 이러한 경계가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벽을 쌓게 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우리와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에 데이빗의 공간처럼 다름이 인정되고 수용되는 곳이 세계화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주 다이너' 사장 데이빗 존 반 미넨씨 "전주는 아이들 키우기 편안한국인 아내 든든한 후원자"지난 2004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온 데이빗 존 반 미넨(David John Van Minnen) 씨는 10여년째 전주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2005년 5월 천정경 씨와 결혼을 해 현재는 1남1녀를 둔 아빠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을 위한 산타크로스로 변장할 깜짝 행사를 위해 몇 달 전부터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아빠의 입장에서 한국, 특히 전주는 캐나다에 비하면 치안이 좋고 범죄율도 낮아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편한 도시라고 말한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유교문화가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 한국에서 경험한 유교는 점잖고 긍정적이고 사람들과의 유대감이 강한 문화다"면서도 나이로 서열을 나누는 문화는 적응하기 어려움 과제다.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가족, 사회 구성원간에 우위를 따지지 않고 누구나 동등하고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서구사회의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숙제다"고 말했다.영어강사, 프리랜서 실내 리모델링 등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에게 아내 천 씨는 든든한 내조자이자 지지자다. 데이빗에게 요리를 배워 안주인으로 주방일을 톡톡히 하고 있다.데이빗은 "전주 다이너는 국적에 따른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집이 될 수 있는 편안하고 유쾌한 곳이다"면서 "전주에 맛있는 버거집,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을 여러 개로 확장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임진아(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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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8 23:02

익산 스트리트 댄스 맥 잇는 '한국공연문화예술연구소'

울어도 멋있고, 굶어도 근사한 열정. 바로 젊음의 특권이 아닐까?춤을 추는 청춘. 노래하는 젊은이. '한국공연문화예술연구소(이하 한공연)' 이름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짐작이 안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매일 밤 젊은 예술인과 청소년들이 모여든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흥겨운 연습이 밤마다 있는 곳. 바로 비영리 문화예술단체 '한공연'이다. 익산에 있는 이 연구소는 실력 있는 댄서를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익산에 흩어져 각자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아리를 모아 연합체 형태의 비영리 단체를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함께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30여개의 동아리가 함께 하고, 직접 공연을 기획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익산에서 '춤 좀 춰본 친구들', '노래 좀 불러 본 친구들' 에어플레인(댄스), JMF(음악), 율쿠스틱(밴드) 등 지역에서는 이름깨나 날리던 쟁쟁한 동아리가 모여 있는 것만 봐도 그저 그런 단체는 아닌 게 분명하다. '한공연'을 이끌고 있는 주축 맴버는 여형일 소장과 임정민 사무국장이다. 팝핍, 비보이 이런 장르를 한다고 해서, 팔팔한 20대를 상상했건만, 30대의 철든 노땅들이 나와 있었다. 여 소장은 32살, 임 국장은 31살. 팝핍을 꺾고 비보이를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해맑게 웃는다."아이들이랑 땀을 흘리면서 부딪치다 보니까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고 같이 실력도 키우고 공연 준비도 하니까 여러모로 좋아요. 대단한 댄서들이 지역에서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목표에 와 닿았을 때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려 설 자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후배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었죠."얼굴은 30대 젊은 아저씨, 눈빛은 10대 청소년. 이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었다.10대 청소년 시절 춤 좀 췄고, 양보해서 20대까지 취미 활동했다고 하더라도 남자가 군대 갔다 오고, 취직하고, 그러다보면 철이 들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춤을 추는 취미 활동은 당연히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의 사회 통념이다.그러나 두 젊은이는 생각이 달랐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좋아하는 취미를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모였고, 그래서 함께 만들어갈 생각을 했다.지난 1999년부터 활동하던 익산의 'TN'이라는 댄스팀을 전신으로 2011년 5월 연구소를 설립했다. 설립 동기는 거창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가 좋아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더 이상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없었다. '왜 활동이 중단될까?' 이런 단순한 물음에서부터 시작했다. 어릴 적 춤은 음악과 춤을 계속하는 거였는데, 현실은 특히 지방에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녹록치 않았다.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이 뭉쳤다. 공간과 조직력을 키워서 꿈을 펼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처음에 연구소를 얘기를 꺼냈을 때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왜? 지금도 우리끼리 잘 하는데?' '무슨 이득이 있어' '귀찮게 시리'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부터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이에 비전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바로 '라스트포원'였다. 비보이의 신앙적인 존재. 전주익산 출신의 비보이 그룹이다. 지금은 전세계 비보이의 우상으로 꿈이 현실이 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열심히 얘기했다. '라스트포원'의 리더(이원기)가 일부러 시간을 내 익산에 내려와 지도하는 훈훈한 모습에 후배들은 감동했다. 2011년 연구소의 첫 기획공연은 시골 산골 국화꽃이 만발한 곳에서 열렸다. 관객은 60대 이상의 어르신들. 국화꽃 보러오셨다가 시끌벅적한 비보이, 팝핍 베틀에 처음에는 적잖이 놀란 표정들이셨단다. 그러나 음악은 통하는 법, 나중에는 음악에 맞춰 나름대로 춤을 추시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비보이들이 오히려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관객, 무대, 어느 것 하나 좋은 조건이 없었다. 반신반의했던 회원들도 이 공연을 가장 잊을 수 없는 공연으로 꼽는다. 이후 연구소 회원들은 적극적으로 변했다. 아직은 거리 공연을 어색하게 보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춤을 출 때, 박수를 쳐주는 단 한 명의 관객이 있어 힘이 솟기 때문이다.회원들은 생업학업으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1년에 7~8번의 기획 공연을 한다. 초청공연은 한 달에 5건 이상.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 익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연팀으로 자리 잡고 있다.소도시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공연문화를 선도하는 한공연. 이들이 추구하는 '꿈을 현실로~'처럼 이들의 꿈이 무지개처럼 화려하게 펼쳐질 그날을 기대하며 응원을 보낸다. 익산 어느 길거리, 골목에서 춤 추는 친구들을 만나면 '파이팅~' 을 보내며 함께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다. ● 비보이 그룹 '라스트 포원'- 도내 출신전세계 마니아들의 우상지난 2005년 전세계 비보이(B-boy) 팬들은 마치 신들인 듯 열정적으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열광했다. 고난이도 동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음악과 하나가 되는 그들의 신명난 몸짓 하나 하나에 환호를 보냈다. 비보이 월드컵이라 불리던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 세계에 한국의 비보이를 알린 우리 지역 출신 비보이 그룹 '라스트 포원(Last 4 One)'.라스트 포원이 결성된 건 1997년. 전주 쇼핑몰과 전북에 있는 각 이벤트 공연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전국 문화부장관배 청소년 댄스경연대회 2위.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댄스그룹의 음악에 매료돼 초등학교 때부터 춤에 빠져든 뒤 중학생 때 완산 청소년수련실, 전주청소년 문화의 집 등에서 만나 팀을 결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2005년 서울로 상경. 비좁은 옥탑방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춤을 춰야만 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날도 많았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 지고, LA 타임즈 특집으로 소개될 정도로 전세계 비보이 마니아에게는 신 같은 존재다. 우리지역에도 제2의 라스트 포원을 꿈꾸며 익산의 '한공연', 전주의 '소울 헌티스', 군산의 '옐로우 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김진아 문화전문 시민(익산문화재단 경영기획팀장)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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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1 23:02

[독립잡지 '앗!' 창간한 신재연씨] 평택 청년, 전주의 매력 '무한발견'

우리는 지방에 산다. 전주에 살고, 전북에 산다. 나 역시 30여년을 이곳에서 살아왔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겐 서울 광화문보다 전주 풍남문이 가깝고, 남산 보다는 완산칠봉이 더 정겹다. 그러나 지방에 사는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이곳을 잘 모른다.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전주의 이야기보다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더 많으며,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하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주에 살면서도 한옥마을의 역사에 대해 모르며, 군산에 살면서도 군산의 매력에 대해 잘 모른다. 지방은 '시시한' 곳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이곳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발견'이 된다. 평택에서 살다가 지난 해부터 이곳 전주에 자리잡은 신재연 씨는 오래도록 이곳에 살아온 우리가 보지 못한 전주의 매력을 '무한발견'한 장본인이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독립출판 전문서점 '우주계란'에서 전주의 매력에 흠뻑 빠진 청년 10명과 함께 이름부터 독특한 '앗!'이라는 독립잡지를 창간했다."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우리 스스로를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잡지를 창간하게 됐어요. 전주의 모든 것을 우리의 이야기와 함께 담아내보자는 취지에서죠. '앗!'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찾아냈을 때 말하게 되는 감탄사에요. 우리가 알지 못한 전주의 매력을 '앗!'하는 소리와 함께 찾아내고 발견해보자는 뜻에서 짓게 된 이름이죠. 이제 걸음마일 뿐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재연 씨가 뜻이 맞는 청년들과 함께 창간한 독립잡지 '앗!'은 전주의 '이야기'를 다룬 잡지다. 30여쪽으로 구성된 이 잡지에는 재연 씨의 주요 활동무대인 남부시장 청년몰을 중심으로 전주한옥마을, 향교, 골목 등 다양한 풍경들을 필진 10여명의 시점에서 바라본 사진과 글로 담아내고 있다. 그동안 전주라는 지역의 문화와 화두를 다룬 매체들은 많았지만 '앗!'은 조금 특별하다. 재연 씨가 추구하는 독립출판의 형태로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철저히 '공급자' 중심의 개성만점의 잡지이기 때문이다. "'앗!'을 소개하자면, 이 잡지는 독립출판으로 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지난 9월 말에 창간호를 만들었구요. 잡지 기획부터 제작, 디자인, 편집, 출판까지 모두 저희 멤버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았어요. 인쇄 부수도 많지 않은 소량출판, 독립출판물이죠."독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필진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아내자는 콘셉트가 독특하다. "'앗!'에 맞춰서 매월 기획회의를 하고, 그에 따른 아이템을 조합해 만들어 냅니다. 10여명의 필진들이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죠. 패션잡지나 자동차잡지처럼 어떤 분야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방식이 아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자는 게 이 잡지의 특징이에요."그러나 책을 만든 이상 많은 이들에게 판매하고, 널리 읽히게 해야 하는 만큼 제작상의 자율성(?)과 함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이제 막 첫 호를 냈지만 아무도 잡지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보니 제작이 쉽진 않았어요. 시행착오도 많았죠. 내용 구성을 어떻게 할지부터 어떤 종이에 어떻게 디자인하고 인쇄해야 할지 등등. 시작은 했는데 실제 책자로 만들어내긴 쉽지 않았죠. 또, 주변의 기대감도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하고요. 기대가 크니까 하는 이야기겠지만 독자를 설정하고 그들에게 맞추는 방식을 버리기가 쉽진 않았어요."맨 땅에 헤딩하듯 열정 하나로 시작된 '앗!'의 창간호는 지난 9월 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간호 인쇄 부수는 총 300부. 정가는 4000원이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유명한 필진이 참여한 것도, 잡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방법도 없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기가 쉽지 않았다. 재연 씨가 운영하는 독립출판전문서점 '우주계란'에서 판매하거나 10여명의 필진이 각자 운영하는 가게나 SNS채널 등을 통해 조금씩 판매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조금씩 알려진 '앗!'은 하나둘씩 관심있는 이들의 구매를 끌어모아 현재까지 약 150여부가 판매됐다. "처음치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건 앞으로겠죠. 10월말에 두 번째 '앗!'이 나올 예정인데,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고 판매돼 이 책이 꾸준히 발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오는 10월 말 2호를 발행하게 될 '앗!'은 아직까지 비정기 발행 잡지다. 올 연말까지는 '앗!'의 발행이 문화콘텐츠 관련 지원사업에 선정돼 인쇄비 등을 지원받지만, 내년부터는 스스로 책을 팔아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전주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에 담아내자며 시작한 야심찬 프로젝트지만 내년 이후부터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판매량을 늘리지 못하면 말 그대로 '실험 프로젝트'에 그칠 수도 있다.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하면 재연 씨도 조금은 걱정이다."이 잡지를 꾸준히 발행하는 게 제 목표에요. 내년이 되면 어떤 상황이 될지 걱정이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만들어 보려구요. 2호부터는 욕심도 낼 거예요. 지난 창간호는 대부분의 내용이 이 잡지를 만드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데 그쳐서 아쉬움도 많았거든요. 2호부터는 하고 싶은 이야기 제대로 해봐야죠. 독립출판으로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다보면 잘될 거라 생각해요."'앗!'은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기 보다는 읽게 되는 누군가가 이야기에 공감하는 게 창간 의도다. 물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그래서 '독립적'인 출판물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작은 실험에서 시작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이야기를 '앗!'하고 발견할 수 있다면 이 독특한 매체의 작은 성공을 기대해볼 수 있을테다. ● 전주 유일 독립출판 전문서점 '우주계란'- "독특한 취향개성 넘치는 청년들 교류의 장"독립잡지 '앗!'의 창간 소식을 듣고 찾아간 전주 남부시장 2층 청년몰. 인쇄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곳에서 어떻게 잡지가 만들어지나 싶었다. 그러나 단 한곳, 그것이 가능한 장소가 있었다. 독립출판 전문서점 '우주계란'이 바로 그곳이다. '우주계란'은 '앗!'을 창간한 재연 씨가 운영하는 독립출판 전문서점이다.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대량 생산과 대중 기호에 맞춰 출간하는 상업출판물이 아닌, 독특한 취향과 성향을 지닌 소량 출판물을 판매한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일반 서점에선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작가들의 인터뷰와 작품을 다뤄낸 사진집부터 인터넷에서 유명한 1인 출판물 '월간 잉여'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분야도 다양하다. 이곳 '우주계란'의 독특한 이름은 운영자인 재연 씨의 고등학교 시절 별명에서 따왔다. 일본 작가의 동명 제목 소설에 등장하는 '우주계란'은 '계란 하나에도 우주의 신비로움이 담겨져 있다'는 뜻. 4~5평 남짓한 매장 안으로 들어와보면 사실 이곳은 서점이라기 보다는 독특한 책들을 가득 채워놓은 재미있는 방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책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개성넘치는 책들이 곳곳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탓이다. 이곳의 책들은 운영자 재연 씨의 개인적 취향을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다. 스스로가 관심있는 책들을 먼저 구해다놓고, 다른 책들은 독립출판 전문서점들끼리 구축된 네트워크를 통해 구하거나 웹사이트를 통해 구하기도 한다. 일부는 '우주계란' 페이스북을 통해 먼저 판매를 제안하기도 한다고. 일반 서점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독특한 이 곳. 재연 씨는 이곳이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개성넘치는 이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는 '우주계란'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해요. 자신의 취향을 가진 이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그의 뜻을 반영해 앞으로 '우주계란'에서는 다양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이나 독서모임 등 다양한 커뮤니티 이벤트도 개최할 예정이다. 세상은 넓고 생각은 다양하다. 개성넘치는 책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곳 '우주계란'에 들러보면 좋겠다.성재민 문화전문시민(선샤인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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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5 23:02

[한옥의 재발견]가을달빛 아래 고즈넉한 처마끝…자유롭고 색다른 공연에 흠뻑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늘 그랬다. 공연 시간에 임박해 빈자리 없는 주차장을 헤매다 차를 대고 허둥지둥 공연장으로 들어서면 티켓에 쓰여진 객석 번호를 찾느라 자라목을 한 채 두리번거리기 일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싶으면 함께 간 친구와 수다는 커녕 프로그램북 한번 제대로 읽을 여유도 없이 객석 조명이 꺼지는 날이 부지기수다. 정숙함을 요하는 장르의 공연이라도 보는 날엔 왜 그리도 유난히 마른기침은 쏟아지는지. 그런데 이와 같이 서투른 공연관람객도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교교한 달빛을 조명삼아 산을 닮은 처마자락의 부드러운 곡선을 무대 배경삼아 관객과의 거리를 코앞 1m까지 좁히며 소통의 즐거움과 몰입의 밀도를 높인 전통한옥의 대청마루와 야외마당 공연이 그것이다.△600년 역사 '전주향교'가 달빛 가득한 공연장으로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위치한 전주향교. 조선시대 지방 양반 자제의 교육을 위해 세워진 학교로 1992년 사적 제379호로 지정됐다. 중층으로 구성된 만화루를 지나 일월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운데 공자맹자 등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7호)과 양쪽 좌우로 동무와 서무, 그 뒤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명륜당과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 그리고 계성사 등의 건물이 보존된 곳이다. 경건하기만 할 것 같은 전주향교가 때로는 어느 공연장 못지않은 최고의 한옥 야외무대로 쓰임새를 달리하기도 한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대성전 앞 뜨락'이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맞배지붕 양식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이 멋스러운 건물이다. 지난 10월3일부터 5일까지 대성전 뜨락에서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초청공연이 있었다. 한국, 터키, 시리아의 전통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과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정가와 범패의 밤' 과 '산조의 밤' 등이 열렸다. 특히 4일에 있었던 한국전통현악기 앙상블 '여류(如流)'와 네이(ney, 이슬람 관악기) 명인 쿠드쉬 에르귀너, 시리아의 전통 보컬리스트 와에드 부아순, 전통타악기 연주의 명인 피에르 리고풀로스가 함께한 더블빌(동시공연) 공연은 뜨락을 가득매운 내외국인 관람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일찍 온 관객도, 공연 내내 덜 잠긴 수도꼭지마냥 띄엄띄엄 입장하던 일부 지각생들조차도 다른 이 눈치볼 것 없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자세로 공연을 즐겼다. 최소한의 경관조명과 한지등만을 활용해 대성전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 무대연출은 가을밤, 고즈넉한 한옥의 멋과 어우러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긴 여운을 남겼다. △잠시만요, 판소리 한자락 듣고 가시게요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8호,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위치한 '학인당'은 인재 백낙중 선생이 1905년 궁궐 건축에 참여한 도편수와 대목장 등 연인원 4280명의 공사인원을 투입해 2년 8개월간 백미 8000가마의 공사비를 들여 완공한 전주한옥마을의 대표 고택이다. 해방 이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공간이다.하지만 정작 학인당이 판소리 공연에 가장 최적화된 공간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은 듯 하다. 학인당 대청은 조선말 전주대사습경연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지되자 그 명맥을 잇기 위해 판소리 공연에 적합한 구조로 설계됐다. 2층 높이에 달하는 높은 천장, 청중 100여 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한옥 3채 규모의 넓이. 또 그만한 높이와 넓이를 감당하기 위해 들보 7개를 사용한 '칠량(七樑)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과거 소리꾼들에게 최고의 공연장이었던 '학인당 대청'은 오늘날 여전히 명창들의 공연장으로 구애의 대상이다. 전주 학인당 국악제를 비롯해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판소리 다섯바탕, 산조의 밤 공연 등이 이 곳에서 판을 벌였으며, 올 해에는 임현빈(수궁가), 김미나(적벽가), 박지윤 & 모보경 명창(춘향가)을 비롯해 유수정(흥보가), 조주선(심청가) 등 젊은 소리꾼들까지 더해져 100년 세월의 더께가 정겹게 내려앉은 역사 속 시공간을 내일로 이어나가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대청문은 캔버스, 마당은 잔치집 올 한해 도내 곳곳의 한옥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신명나는 소리판이 벌어졌다.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의 일환으로 전주를 비롯해 남원, 익산, 고창, 임실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한옥을 무대로 한 야외공연들이 진행됐다. 특히 전주한옥마을 소리문화관과 익산 함라면 함라마을 이배원 가옥에서는 한옥의 정취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마당창극과 퓨전 마당극이 올려졌다. 전주한옥마을 초입에 자리한 소리문화관은 판소리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전주시가 건립한 문화시설로 한옥 4동이 ㄷ자로 놓여있다. 지난 5월 부터 10월 첫째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마당창극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 공연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팔작지붕의 늠름한 본관 한옥을 주요 무대로 활용했으며, 본관의 대청문은 공연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영상의 스크린도 됐다가 그림자극이 펼쳐질 때는 배경막으로, 주막집 장면에서는 여행자들이 묵어가는 숙소의 방문으로, 매 장면마다 역할을 달리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연못 위 정자, 놀이마당을 빙 둘러싼 회랑의 복도, 특히 본 무대 앞에서 관객석으로 T자형 돌출무대를 런웨이처럼 길게 빼 출연진들의 등퇴장 동선으로 적극 활용한 점은 장면전환이 수월치 않은 한옥공연의 단점을 보완해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등록문화재 263호로 지정된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길은 소담한 토석담이 주를 이룬다. 마을 이야기들을 나즈막이 속살대며 지나가는 담장 위 바람을 따라 걷노라면 금새 이배원 가옥(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37호)을 마주할 수 있다. 1917년, 함라면의 대표적인 만석꾼이었던 이배원이 건립한 가옥으로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주위의 토석 담장만이 남아 있다. 사랑채는 내부를 개조해 원불교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배원 가옥'에서는 함라면의 만석꾼 삼부자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마당극 '함라 삼부잣집 잔칫날'이 올려졌다. 부유한 만큼 나누는 데에도 아낌이 없었던 만석꾼 삼부자의 이야기가 주된 배경. 콘서트 형식의 퓨전 마당극으로 해설자가 거간꾼처럼 배우들과 관객들을 이어주며 잔칫집을 연상케하는 흥겨움을 이끌어내고 객석과 무대가 앉은 채로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해도 될 만큼 가까워 관객들의 공연 참여도와 몰입도가 높았던 점들은 한옥 야외마당이라는 장소가 선물한 큰 장점이라고 보여진다.답답하고 정형화된 실내 공연장이 아닌 바람과 하늘과 때로는 야속한 빗줄기까지도 고스란히 공연의 일부가 되는 한옥 야외공간에서의 공연은 전문 공연장이 아닌 탓에 다소간 불편하고, 세련된 서비스는 부족했을지언정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공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일탈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송은정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문화재단 문화사업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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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8 23:02

음악으로 에너지 충전 환자들과 나누죠

한의사나 서양의나 장르는 달라도 아픈 사람을 만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받는 고충은 같다.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며, 그 에너지를 재생산해 환자들과 나누는 의사들이 있다. 대중음악과 클래식, 국악 등 음악적 장르를 떠나 음악활동 자체가 삶의 원동력인 그들을 만나봤다.△전문 베이시스트 꿈꿨던 한의사보통 한의원에 들어서면 조용한 경음악이나 국악풍의 명상음악이 들릴 것만 같다. 전주시 경원동에 자리한 호남한의원 천상묵 원장(55)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는 대중음악가다. 천 원장은 한때 한의학도에서 전문 음악인으로의 전업을 꿈꾸기도 했다. 천 원장은 베이붐세대의 대표 주자인 58년 개띠다. 흔히 보컬그룹의 전성기로 불리는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당시의 들국화, 펨페스트, 최헌의 검은나비, 신중현과 엽전들, 함중아 등의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어느날 들국화의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라는 노래를 듣고 음악을 시작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원광대 한의과 내에 허브닥터(돌팔이 의사)라는 그룹을 만들어 리더를 했다. 이 그룹은 최근 30주년 기념행사를 할 만큼 커졌다. 대학시절 음악 활동을 하고 싶었던 천 원장은 당시 유일한 내륙이라 통행금지가 없어 밤 문화가 번성했던 청주에서 활동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밤무대 예술인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국내 최고의 연주자를 꿈꿨다. 이를 안 그의 지도교수였던 박경 교수는 "우리나라의 제일가는 가수는 될 수 없지만, 최고의 한의사가 될 수 있다"는 한 마디로 그를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천 원장은 낮에는 한의사로, 밤에는 직장인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며 '합죽선', '진북밴드' 등에서 활동 하다가 '놉'이라는 그룹으로 2012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에서 전북 대표 팀으로 출전해 8강안에 드는 쾌거도 이뤘다.그는 "막상 8강안에 들어 다른 그룹의 연주를 보고 실력과 음악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차이를 실감한 천 원장은 그룹 활동을 접었다"고 고백했다.그간의 활동을 통해 들국화의 전인권과 강은철, 임지훈 등 많은 가수들과의 친분을 유지하며, 그 덕에 지역에서 열리는 바자회 등에 친분 있는 가수들의 공연이 자주 성사됐다고 귀띔했다. 지금의 음악활동은 가까운 지인들과 가볍게 만나 즐길 수 있는 자리에서만 선보인다. 주로 동문사거리에 출몰하며, 박남준 시인과는 '천박 브라더스'로 '천박한' 음악을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동서양 악기 섭렵한 흉부외과 의사전주시 인후동에 위치한 은성병원(옛 김영호 흉부외과)에 들어서면 어떤 때는 대금소리를, 어떤 때는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악기의 '삑삑'거리는 소리가 사람을 먼저 반긴다. 소리는 달라도 언제나 악기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악기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김영호 원장(57). 학창시절부터 악기를 취미로 연주하고 있지만 취미라고 하기엔 굉장히 많은 악기를 배웠다. 김 원장은 그냥 음악이 좋아 초등학교 때부터 하모니카를 불었다.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악기라곤 하모니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서 7080세대에 유행하던 기타를 잡았고 클래식기타를 독학으로 익혔다. 밤새 기타 연습을 하다 대입을 앞두고 성적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의대에 진학한 그는 어머니가 배우시던 가야금에 빠져 가야금을 열심히 타러 다니기도 했다. 전북대 의대 2학년 때 '의대 현악부'가 생겨 바이올린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의대생에게 가장 힘들다는 수련의 시기는 악기를 전혀 접할 수 없었고 졸업한 뒤 다시금 악기를 잡을 수 있었다. 백악지장이라 불리는 거문고 소리에 반해 거문고와 아쟁을 배웠다. 현의 소리와 연주가 손에 잡힐 즈음 다시금 김 원장의 마음은 대금에게로 향했다. 국악기에 귀와 마음을 적시고 나자 다시금 서양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2000년도 초 색소폰 연주가 유행했을 당시 일반인이 많이 하는 파퓰러 색소폰보다는 클래식 색소폰을 배웠다. 5년차가 되자 오보에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4년 동안 개인 사사를 통해 오보에를 연습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오보에를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보다 수월한 클라리넷을 시작해 지금 3년차에 접어들었다. 김 원장은 하모니카와 클래식 기타를 제외하고 각 악기마다 최고의 연주자를 찾아 스승으로 모셔 최하 3년 이상의 레슨을 받았다. 그는 "진료 행위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진단·처방, 치료하는 일은 힘든 직업 중에 하나다"면서 "즐겁게 일하고 힘찬 에너지를 나누는 원천이 바로 악기 연주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악기 연주는 신체적 건강을 위한 운동과 함께 정신적 건강을 위해 삶에 필수다"면서 "그냥 좋아서 시작한 악기연주가 이제는 직업을 잘 수행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 됐다"고 덧붙였다.■ 좌서우금…전문직일수록 취미활동 깊게 빠져선비들에게 있어 거문고는 수양의 악기로 통한다. 글공부하는 선비나 사대부의 사랑채에는 금을 걸어놓고 책을 읽다가 분심이 생기면 자연스레 거문고를 비껴 탄다. 그래서 선비들의 생활상을 표현한 말로 좌서우금(左書右琴). 즉 왼손에 책,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고 하는 말이 있다. 선비는 학문에 힘을 쓰더라도 음율과 풍류를 알아야지만 진정한 덕목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요즘시대 IQ(Intelligence Quotient·지능지수)와 EQ(Emotional Quotient·감성지수)의 균형 있는 발전을 논하기도 전에 우리 선조는 그 중요성을 알았다. 현대인의 가장 큰 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이 나오고 있지만 전문직 종사자일수록 취미활동에 깊게 빠져 든다고 한다. ·김정준 문화전문시민기자(전주전통문화관 문화사업부 공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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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1 23:02

"폐가 리모델링 게스트하우스 활용 협동조합 만들고 파"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농촌과 도시를 이으면 무엇이 될까? 옛 삼기초등학교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커뮤니티비즈티스센터의 막내 변세광 씨(28)와 마주 앉았다. 이곳에서 일한 지는 2년.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전북대를 졸업하고 다시 완주로 돌아왔다. "지금 이곳도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가 된 거잖아요. 학교에 학생이 없다는 것은 결국 어른도 돈벌이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는 말이거든요. 미용실도 두 개 있다가 하나가 되고 나머지 하나도 문을 닫아요. 카센터도, 서점도 없어지고 점점 사는 게 더 불편해져요. 살기가 불편하니까 다시 사람들이 빠져나고요."한 번에 다 바꿀 수는 없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라면 가능하리라 믿는다는 변 씨.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의 사업을 홍보하고 마을공동체사업단의 상담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가 도리어 배움을 얻는다.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이 경력을 쌓고 할 일을 찾아 고심할 때 그는 "농촌에서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고민"이라며 웃고는 "완주지역의 마을을 찾은 이들을 위해 폐가를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공동체를 관계라고 정의했다. "점과 점이 만나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면 면이 되고 공간이 되잖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와 관계가 만나면 하나의 공동체가 돼요. 공동체끼리 만나면 마을, 지역사회라는 큰 축이 만들어지고요. 서로 조금 손해 보고 좀더 양보해 다같이 살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어요." 변 씨는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참 대책 없이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다. 김정경 문화전문시민(전주MBC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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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3 23:02

【폐교의 화려한 변신】아이들 떠난 자리…사람 발자국 소리 요란

△영화드라마 70여편 출연한 교도소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발소리를 주문 삼아서 잠시 다른 세상으로 걸어들어 간다. 여기는 교도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하기 위해서 지어진 교도소세트장이다. 익산시 성당면 와초리에 자리한 국내 유일한 교도소세트장. 이곳에는 한국영화 중 8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 속 '7번방'이 있다. 철문, 쇠창살로 무장한 수감시설과 담장, 망루, 면회장과 취조실 등 교도소의 구석구석을 재현해 놓았다. 걸음마다 철문과 쇠창살이 이어지고 '이동중 잡담금지', '반성하는 삶의 자세', '질서 확립' 등의 문구는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양쪽으로 나란히 늘어선 2층 수감실은 교도관이 금방이라도 뚜벅뚜벅 걸어올 것만 같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촬영된 영화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친 지강헌의 이야기를 다룬 '홀리데이'. 지난 2005년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익산시와 영화제작사가 손을 잡았다. 그렇게 세워진 익산 교도소세트장은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거룩한 계보'와 '식객', '포세이돈' 등의 수많은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자이언트'와 '싸인', '마이더스'와 '야왕', '돈의 화신' 등의 드라마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익산 교도소세트장은 현재까지 모두 7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이름 높아진 지금의 교도소세트장이 몸을 들어앉히기 전 이곳은 학교였다.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던 학교. 익산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 지난 1999년 2월 성당초등학교와 통합되면서 폐교됐다. 교실을 채울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을 받을 수 없게 됐지만 이곳은 다시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인다. 유명 배우들이 찾아오고 이름난 감독들도 오고 드라마 스텝들도 붐빈다. 그리고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추억하기 위한 관람객도 찾는다. 특히 올해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7번방의 선물' 덕분에 그 수가 부쩍 늘었단다.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6500여명. 며칠 전에는 이번 달 말께 개봉할 영화 '애비'와 '레드블라인드'도 촬영을 끝마쳤다고 한다. 아이들이 떠난 옛 남성분교에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달인 김병만의 모교 농촌활력 중심지로며칠 후 전주에서 535번 버스를 탔다. 차창 밖의 가을 바람이 손에 잡힐 듯한 화창한 날. 버스는 고산터미널에 나를 부려놓았다. 다시 300번 버스에 올랐다. 기사님께 옛 삼기초등학교를 아시느냐고 물었다. 김장배추 모종을 손주인양 무릎에 앉힌 한 어르신이 "내릴 곳을 알려주마"라고 하셨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도착할 때까지 어린 배추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10여분 쯤 달렸을까. 버스는 다시 나를 부려놓고 제 갈 길을 떠났다. 활짝 열린 교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아직 학교였을 때 16년 동안 외길 인생을 걸어온 '달인'으로 인기를 얻은 개그맨 김병만 씨가 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003년 삼기초등학교는 문을 닫았다. 학교에 와야 할 아이들이 하나둘 떠났기에. 그리고 이곳에는 2010년 지역경제순환센터가 개관했다. 완주군에서 그동안 방치 돼 있던 폐교를 리모델링했고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중간지원조직들이 입주했다. 너른 운동장 가운데에는 조형물들이 제법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앉아 있다. 운동장 끝 화단, 여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여러 동물상들과 수줍은 소녀상이 반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신발부터 벗는다.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공정여행사업단인 '마을통', 로컬푸드사업단인 '건강한 밥상', 주민을 위한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공감문화센터' 등이 한 공간에 있다. 이 건물에 가장 먼저 입주한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를 찾았다. 다양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교육이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농사 이외의 농촌에서 가능한 일들을 소개하고 농촌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교육한다. 목공수업, 텃밭 가꾸기 등 다채로운 교육을 진행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을 하는 주민을 상담하는 일도 한다. 그러고 보니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진 계단 벽면에는 마을별로 그 마을 주민이 직접 쓴 사업기획서가 가득 채워져 있다. 운동장 가장자리.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농촌에서 살기 위해 가꾼 텃밭에는 올망졸망 열매가 달렸다. 토마토, 가지, 고추, 색색으로 그 빛깔이 화사하다. △사람과 사람 잇는 폐교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문을 활짝 열어둔 옛 삼기초등학교를 천천히 걸어 나온다. 아이들의 발소리, 웃음소리, 쟁쟁한 함성으로 시끌벅적하던 운동장은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는 심심했을 것이다. 그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도 모습을 감춰서 주변의 마을들도 고요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다른 이들이 찾아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스스로가 누군가의 고향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나를 옛 삼기초등학교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 300번 버스의 기사님을 다시 만났다. "또 만나니까 반갑네." 인사를 건네신다. 그래, 그런 것이다. 문이 열려있으면 우리는 언젠가 '사람'을 만난다. 왠지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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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3 23:02

전주 동문거리 두명의 수집가 오세군・김윤정

우리는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욕구보다 먼저 앞서가고 필요와 욕구를 느끼기 전에 새로운 기술과 물건이 재빠르게 교체되고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로 불과 5년 전에 사용한 물건은 두 말할 것도 없고 1년 전에 사용한 것도 순식간에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만다. 공급과 소비가 너무 쉽게 시장을 채우게 되면서 사물, 물건은 가치의 대상이 아닌 단순히 쓰임의 용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됐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에 쓰임 이상의 가치와 철학을 담고 세월과 함께 시대를 아카이브하고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공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물의 비밀, 매킨토시로 가득한 소통의 공간동문거리를 걷다보면 디자인 사무실같기도 하고 컴퓨터 수리점인 듯한, 하지만 수리점치고는 매우 디자인틱한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이 곳에 들어서면 빽빽하게 혹은 구성지게 여기 저기 놓인 컴퓨터가 그것도 매킨토시 컴퓨터가 얼추 봐도 100개는 넘는다. 컴퓨터의 주인이자 디자인사무실 운영자 오세군 씨(37)에게 첫 매킨토시는 1990년대 중반 대학 입학 당시 부모님이 선뜻 사 준 컴퓨터다. 당시 대학 입학금의 4~5배이자 일반 PC의 3~4배 가격인 550만원으로 고가였다. 애플사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유입돼 전자출판과 그래픽 디자인 업계의 95% 이상이 사용했다.오 씨는 첫 컴퓨터를 대학생활 내내, 전역 뒤 졸업까지 7~8년간 사용했다.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컴퓨터는 오 씨에게 단순히 디자인 작업을 하는 사물 그 이상이었다. 디자이너로서의 창의적 영감을 주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데다 돈까지 벌게 해줬다. 그는 이후 사용했던 매킨토시를 버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해 발품까지 팔면서 단종된 매킨토시를 구입한 것이 현재는 150~200개다. 매킨토시 보유량으로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이렇게 오 씨의 손에 들어온 매킨토시는 대부분 호환성이 낮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재도 사용이 가능하다. 대학 신문사에 있던 매킨토시에는 신문 편집본, 동아리 M.T. 사진 등 이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디자인회사가 사용한 컴퓨터에는 1990년대 당시 출판디자인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담겨 있었다. 한옥마을 한켠에 있던 그의 사무실을 동문거리로 옮긴 지 2년 남짓. 구형 매킨토시를 구경하러 온 사람, 자신이 사용했던 컴퓨터를 이곳에 맡겨놓기 위해 온 사람, 블로그를 통해서 이 공간의 이야기를 접하고 오 씨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온 대학생 등 다양한 나이, 성별, 취미, 취향, 직업,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는 곳이 됐다. 방문객에게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따뜻하게 대접하기 위해 바리스타 교육까지 받았고 무료였던 커피는 사무실 주변 동문거리에 커피숍이 들어서면서 상도(商道)상 1000원을 받고 있다. 1년 후 그의 사무실에는 몇 대의 매킨토시가 더 들어왔을지, 어떤 사람들이 그곳을 거쳐갔을지, 그가 모으고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일지 더욱 궁금해진다. △인형은 또 다른 나의 표현동문거리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작가공방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부터 동문거리에 작업실을 열고 문턱을 낮춘 한국화가, 사진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소소한 관광거리가 되고 있다. 그 한 켠에 위치한 인형공방의 인형 화가(doll painter) 김윤정 씨(35).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면 여자라면 어렸을 적 소유하고 싶었던 인형방에 있는 황홀감에 빠진다. 작업실 벽 책장 칸칸에 제각기 다른 옷차림, 다른 표정의 팔등신 인형들이 눈에 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형 얼굴에 눈썹, 눈동자, 입을 그려넣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주문 제작 인형이다. 커스텀 인형은 의상, 머리, 화장 등 분야가 나눠져 있고 김 씨는 얼굴 전문이다.20대 중반에 결혼한 그녀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 본격적으로 인형 수집을 시작했다. 모모꼬, 걸스미션 등 일본 인형을 모으던 중 순정만화를 그리던 실력으로 인형얼굴을 다시 그렸고 온라인 카페를 통해 알려졌다. 해마다 성탄절을 전후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인형전시회에 개인부스를 열어 자신의 작품과 실력으로 선보일 정도로 인형마니아 사이에서 꽤 유명인이다. 김 씨는 "주문자의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각기 다른 얼굴 표정을 만드는 게 가장 어렵다"면서 "패션잡지에 실린 모델, 특히 화장이 두드러진 사진을 모으고 만화책과 만화영화를 자주 본다. 때로는 미술 전시회를 찾아 지역 작가들의 색감을 유심히 관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 얼굴과 똑같이 인형 얼굴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인형으로 프러포즈를 한 사연도 있다"고 들려주었다. 자신만의 독자 브랜드로 인형을 제작할 계획인 그는 "작업실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부산, 서울, 경기지역의 인형마니아라 아쉽다"며 "작업실이 도내 인형매니아들과 함께 소통하고 각자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매개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나타냈다.임진아 문화전문시민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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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6 23:02

익산 춘포역 '원나잇 스탠드' 이끄는 달문 작가

가을볕에 호박이 제법 물이 오른 어느 오후. 춘포역에서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이 조우했다.배우, 작가들로 구성된 '달문 프로젝트' 달문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작가 달문(본명 문경자)'을 따라 춘포역 15번지를 따라가 보았다.춘포역 15번지 녹슨 대문을 열자 빈집엔 마당 가득 호박, 깨, 파, 연, 콩 등 농작물이 말 그대로 발 한쪽 내딛기 힘들 정도로 빽빽이 차 있었다. 이곳에서 9월 4일부터 5일까지 '달문 프로젝트'가 진행된다고 한다. 달문 프로젝트는 전국의 마음 맞는 예술가들이 2009년부터 눈이 맞아 일상을 예술 작품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들의 사정에 따라 인력구성이 조금씩 바뀌기는 해도 꾸준하게 예술적 친분을 지켜오고 있단다. 이들이 9월 4일 춘포역에서 무시무시한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9월 4일 춘포역 15번지로 모여라. 작가 달문의 호출이 떨어지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작가들이 모여든단다. 작품명은 '원 나잇 스탠드'. 참여 작가는 6명. 김민경(배우), 나다(작가), 달문(작가), 백정기(작가), 절짜(작가), 최혜정(작가).이들 작가중 3명은 경기도, 3명은 전라도에서 모인다. '원 나잇 스탠드'는 오래전 흉가가 되어 버린 춘포역 15번지를 전시장으로 탄생시키는 거다. 허물거나 새로 칠하거나 부수질 않는다. 현지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린다. 주변에 있는 일상을 예술 작품화한다. 오래된 옹벽을 허물지 않고, 거미줄은 치우지 않는다. 이들이 추구하는 예술이다. 8월 31일 달문과 최혜정 작가가 예비 작업을 먼저 한다고 한다. 9월 4일 본진들이 합류하기 전에 대충 둘러보고 치울 생각이다. 총연출을 하고 있는 작가 달문은 "작가들은 춘포역의 끊기고 걷어져버린 철로처럼 지역민들의 감성도 걷어져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춘포역 15번지에서 펼쳐질 달문 프로젝트 '원 나잇 스텐드' 깊은 밤 깊은 고민 끝에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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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30 23:02

아트공간 변신중인 익산 춘포역

조용한 시골 마을. '춘포'이미 오래전에 기차도 서지 않는 춘포역. 오래전에 사람의 온기가 식어버린 간이역. 가끔 들르는 사진 동호인들 말고는 늘 외로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곳을 찾는 지역주민들, 예술인들, 문화기획자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울린다. '아, 뭔 일이여?' 동네 할배 할매들이 기웃기웃 훈수를 두신다. 잠자고 있는 간이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춘포역. 왜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까? 그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궁금하다. 먼저, 춘포역의 역사를 간단히 알고 가자. '춘포(春浦)' 는 봄이 드나드는 물가라는 옛 이름 봄개이다. 1914년 일제 강점기 때에 지어졌다.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로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로 역사적,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2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농민들로부터 높은 소작료를 거둬 식량을 수탈해간 현장으로 아픔이 있는 과거가 춘포역을 포함해 일본 농장가옥, 정미소 등 역사적 장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또한 춘포역은 전주와 이리(익산의 옛 지명), 군산을 연결하는 철도중심지로 기차가 30분마다 있었으며 당시 '까마귀 떼'라고 표현할 정도의 검은색 교복을 입은 많은 학생들이 통학을 위해 춘포역을 이용했다. 70~80년대 익산 시내의 섬유산업이 발전하면서는 근처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여자들이 많아져 '딸촌'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예전 주변에는 빵집, 술집, 고깃집, 식당 등이 즐비한 번화가였다. 하지만 2011년 5월 13일 전라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폐역이 되면서 점차 마을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다시, 춘포역의 변화에 대해 얘기해보자. 현재 춘포역은 익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이 진행중이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었던 역사(歷史)로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주겠다는 취지다. 지역의 예술가들이 먼저 투입되었다. 일단 외모부터 가꾸련다.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지역 공동체 사업도 하고 있다. 역이 역의 기능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간이역 활용방안은 이미 다른 지역에서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사업이다. 식상치 않은 기획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기획자, 글쟁이들이 머리를 맞댔다. 춘포의 첫 느낌과 지내왔던 삶, 현재에 이르기까지 춘포와 역사에 관련된 생활을 개인의 삶과 시선으로 녹취, 서술,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중이다. 참여한 작가. 최진성 작가 '춘포역 및 마을 연혁 등 입체형 인포그래픽, 소품, 사진과 영상 촬영', 곽정숙 작가 '춘포역 글쓰기 스토리텔링 및 현장체험학습'을 진행중이다. 이들의 '춘포역 이야기'는 조만간 춘포역에 전시할 예정이다.지역 화가들도 발 벗고 나섰다. 춘포역을 아트공간으로 꾸미기 위한 벽화, 작품 제작에 돌입했다. 종합예술인 문경자 작가를 중심으로 전시 공간 '달문프로젝트'. 역 주변의 빈집 15번지를 활용한 전시 공간 조성 사업이다. 마을 디자인 사업의 하나로 진행중이다. 평균 연령 70대 이상의 초고령 마을의 평균 연령대를 낮춰주는 작업도 함께 하고 있다.역시 빈집에는 아이들이 스마일이 최고의 보약이다. 매주 춘포역에는 아이들이 찾아온다. 문화교실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역 인형극 단체인 '꿈초롱 인형극단'(대표 안권순)이 매주 '춘포는 역사다' 를 주제로 지역 아동들을 춘포역에 모아놓고 연극, 미술 등의 문화 예술 수업을 하고 있다. 찰흙을 빚고, 종이를 오리고, 이야기를 만들고, 모두가 춘포역에 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업이다. 춘포역은 지금 아트공간으로 대변신을 꿈꾸고 있다. 주변의 근대 건물들과 연계하여 하나의 살아있는 마을 박물관으로, 주민들과 방문객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지역 어린이들과 방문객에게 추억의 공간, 역사 교육공간으로.춘포역에서 저마다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다. 이 상상이 한곳에 모이는 날. 버려진 역 춘포역에 무지개가 뜰 날도 머지않았다.김진아 문화전문시민(익산문화재단 경영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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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30 23:02

【전주한옥마을 '바늘소녀공작소'】한땀 한땀 '이태리 장인'에 뒤지지 않을 열정

1년을 기다려 온 여름휴가를 보내러 모인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전주 한옥마을. 몇 년 전 '한국관광의 별'로 소개되며 전국적인 힐링 명소로 알려진 이 곳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금의 한옥마을은 평소의 고즈넉한 여유보다는 '관광명소'가 된 인상이 강하다. 평소의 한적한 한옥마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에 다소 위화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공간이 있다. 한옥마을 일대에서 가장 한적한 곳이라 할 수 있는 향교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작은 공방. 아직 수줍음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당당히 자신의 꿈을 말하는 두 소녀가 있는 곳. 바로 '바늘소녀공작소'다."의외로 한옥마을에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공방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지나다가 보시고 들러주시곤 하더라고요." '바늘소녀공작소'를 운영하는 두 자매 윤슬기(24)나래(23)씨의 말이다. 때묻지 않은 소녀의 미소를 가진 그녀는 3년 전부터 이 곳에 작은 공방을 내고 손수 만들어 낸 바느질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다."유치원 때부터 시작한 바느질이 재미있어 해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오랫동안 해왔지만 아직도 재미있어요." 종일 바느질만 하면서도 이 일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슬기씨. 그의 첫 번째 바느질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에서 시작됐다. "엄마가 바느질을 잘 못하신 게 도움이 됐어요. 어릴 때는 보통 자기가 아끼는 게 한두가지 쯤 있잖아요. 저한테는 양말이었는데, 그걸 엄마가 잘 안 꿰메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접 꿰메야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엄마의 게으름 덕분(?)에 시작된 그의 바느질 경력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수 년간 쌓아온 그녀의 내공(?)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만든 작품을 판매도 하게 됐다. "고교 시절 친구들이 '직접 한번 팔아보라'고 했어요. 친구들이 구입하기도 했고요. 마침 전주에서 열렸던 프리마켓에 참여하기도 했죠. 그때부터 제 작품을 팔았으니 경력만 따져도 벌써 8년 째네요."지난 2011년 5월, 평소 좋아하던 향교길에 자신이 직접 만든 바느질 제품들을 판매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과 똑같은 취향을 가진 동생과 함께 공방 '바늘소녀공작소'를 열었다. "공방 이름이 좀 독특하죠? 처음에 여러 가지 고민들을 했어요. 어떤 이름이 좋을까 이래저래 고민도 하고 웃긴 이름도 많았는데요. 첫 번째는 소녀 감성을 잃지 말자는 뜻에서 '소녀'라는 이름을 꼭 넣어야 했고, 두 번째는 공방 이름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바느질'이 '바늘'이 되었고, 무언가 만들고 있다는 뜻의 '공작소'라는 말까지 함께 붙여 지금의 '바늘소녀공작소'가 되었죠." 나래씨는 개성 넘치는 이름은 탄생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곳에서만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수많은 관계들이 만들어지거든요. 실제로 요즘 오시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한옥마을을 둘러보다 찾아오시는 분들보다 이곳에 오시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그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나래씨의 말처럼 '바늘소녀공작소'는 블로그, 페이스북을 타고 입소문을 타 타지 여행객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한 명소가 됐다.'바늘소녀공작소'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공방을 운영한다. 주중 단 하루, 수요일에만 쉰다. 공방을 여는 시간 동안 슬기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바느질을 하며 보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는 슬기씨.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한땀 한땀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게을러져도 판매할 물건이 모자라는 공방 특성상 그의 성실함은 매우 큰 자산이다.최근 슬기씨에게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바느질을 통해 심리치료를 하는 것. "몸이 많이 아프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요청하셔서 수강생으로 받았던 적이 있어요. 저도 놀랐던 게 이 분 말씀으로 평소엔 그렇게 몸이 아프고 힘든데 여기 오셔서 바느질하는 동안은 너무나 행복하고 아픈 기색도 없다는 거예요. 제가 심리 쪽을 공부했는데 이걸 보면서 바느질을 통한 심리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공부해보고 싶어요."바느질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당찬 '바늘소녀' 슬기씨는 오늘도 바느질과 함께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다.성재민 문화전문시민기자(선샤인뉴스 대표)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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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9 23:02

박창수씨 '하우스 콘서트' 운영 원칙

문화체육관광부 문화향수실태 조사에 따르면 클래식 연주회를 보러 가지 않는 이유로 '시간과 돈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은 것으로 꼽힌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여가 수단 1위는 여전히 TV 시청.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방 교향악단 티켓 값은 영화 관람료보다 싸다. "돈이 없어서 연주회에 못 간다"는 답변이 꼭 진실은 아니라는 뜻이다.지난달 '하우스 콘서트'가 전국으로 무대를 넓힌 '원데이 페스티벌'이 열렸다. 공연장 17곳, 단독주택·아파트 등 가정집 8곳, 사찰·교회·성당, 학교, 군부대 등 전국 65곳에서 동시에 작은 음악회가 열려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이 생업에 쫓기는 평일 저녁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2002년 '하우스 콘서트'를 처음 만든 박창수씨에게는 지금까지 '유별난' 운영 원칙을 고수해오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 하더라도 이들에게 주어지는 개런티는 관객들로부터 회비 2만원씩 받은 금액 중 50%. 여기엔 '모든 관객이 회비를 내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머지 절반은 프로그램 제작비, 와인과 스낵 구입비로 쓰여지지만, 정작 생고생을 하는 박씨를 포함한 스태프도 무보수 자원 봉사다.지금이야 '하우스 콘서트'가 이곳 저곳에서 생겨나고 있지만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거의 '미친 짓'(?) 취급을 받았다. 그 결과 2006년까지 매년 수천만원씩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2007년 두 번의 공연에 160~180명이 찾아와 126만원 수익을 낸 것이 첫 흑자 기록. 이 음악회의 또 다른 원칙은 다른 음악회를 앞둔 연주자들이 공연을 앞두고 똑같은 레퍼토리로 무대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객들에게는 언제나 특별한 무대가 돼야 하는데, 연주자들이 그저 리허설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봐서다. 대쪽같은 박씨의 성격 때문에 스태프들만 죽어라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연주자들이 계속해서 찾는 건 편안한 무대 매력을 잊을 수 없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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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2 23:02

마룻바닥 앉아 즐기는 '하우스콘서트'

피아니스트 박창수는 2002년부터 서울 연희동 집 거실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사람들은 2만원을 내고 다채로운 음악가들과 불과 1~2m에 앉아 공연을 즐긴다.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거장 외르크 데무스부터 피아니스트 김선욱까지 출연료가 적어도 크고 작은 스타들이 이곳을 찾았고, 이 공연을 녹음한 실황음반 100종이 나왔다. 연주자들은 으리으리한 콘서트홀보다 집 거실에서 마룻바닥을 울리는 악기의 진동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음악 감상의 매력이라고 믿었고, 관객들은 이 작은 무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주저앉아 음악을 듣는 진귀한 체험을 했다.2008년 12월 최정미씨(45)는 아이들과 특별한 연말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가족 음악회를 제안했다.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모임에 가깝다. 최씨는 아들 곽진우와 딸 곽수영, 이웃 친구인 한영훈, 김은서, 차정환을 집으로 초대해 가족들과 함께 열고 있다. 다른 학부모들도 응원도 보태졌다. 하우스 콘서트의 가장 큰 수확은 아이들이 악기를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게 됐다는 것. 실제로 재혁이와 진우는 '전북어린이교향악단'에서 베이스 연주자로 활약 중일 만큼 열의가 뜨겁다. 연주회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토론하면서 콘서트를 기획해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지난 음악회 초대장에 "음악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는지, 언젠가 우리 스스로 깨닫는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애정과 미소로 지켜봐 주세요."라고 적어 부모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피아노, 클라리넷, 오카리나, 기타, 바이올린, 플루트, 더블베이스까지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악기도 다양할 뿐더러 드보르자크,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은 물론 비틀스,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연주 레퍼토리도 다채롭다. 대개 1시간 남짓 진행되는 연주회가 시작되면 거실에 옹기종기 앉은 이웃들은 제 집인 양, 다리를 쭉 펴거나 벽에 기대 연주를 감상한다. 이들의 하우스 콘서트는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아이들이 참석 의사를 밝혀왔으며, 친구 김민지이용훈심재형정지원정지우에 이르기까지 현재까지 20명이 합류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작은 연주회로 시작했으나, 어린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1년에 두 번 열고 있는 상황. 올해는 '할로윈 데이'를 맞아 특별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지역에는 관객이 없다고 하지만, 정작 찾아가보면 직접적이고 뜨거운 콘서트도 있다. 지역 내 호사가들이 모여 소리 소문 없이 시작한 완주의 '하우스 콘서트'. '주인장' 이종민 전북대 교수(58)의 표현을 빌리자면 "1년에 두 세 번 펼치는 잘 노는 판"이다. 무대는 그의 고향인 완주군 화산면 옛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은 공간. 2011년부터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한 이 교수는 "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만들어준다" 면서 연주자들이 이르고자 하는 음악의 목적지에 가장 가까운 길이 바로 하우스콘서트의 마룻바닥이 될 수 있다며 웃었다. 이마에서 뺨을 타고 흘러내린 땀이 턱에 고였다가 윗옷에 튀는 장면도, 활을 켤 때 들이마시는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매력에 빠진다는 것. 단골 연주자는 전북도립국악원 단원인 박경미 백은선 이항윤 위은영씨, 시립국악단 단원인 이창선씨, 전통타악그룹 '동남풍', 기타 연주가 안태상씨와 성악가 조창배씨 등이다. '하우스 콘서트'의 기획력은 여느 전문 음악홀 못지 않다. 이 교수와 연주자들은 상의해가며 어느 정도 대중적이면서 또 어느 정도 깊이까지 갖춘 무대를 준비한다. 특히 이들의 콘서트엔 세 가지가 없다. 기침이 나오면 마음껏 해도 되고, 간혹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에도 중간 퇴장은 없다. "대형 콘서트 홀에서는 음악이 '소리'로 들릴 뿐이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는 '피부'로 먼저 전해져 온다"는 게 이들의 자랑. 그가 직접 담근 매실주와 화산의 한우가 연주자들을 위한 유일한 출연료다. 서로 죽이 잘 맞는 이들이라 술이 잘 익은 날은 '번개'가 생기기도 하고, 거나하게 취하면 장랑도 거리낌 없이 도전한다. 으리으리한 공연장들이 위용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문턱은 높다. 문화창조 운운하며 국가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얘기만 요란할 뿐,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문화예술의 현장 체험은 빈약해보인다. 곳곳에서 일궈낸 이들의 하우스 콘서트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김정준 문화전문시민 (전주전통문화관 문화사업부 공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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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2 23:02

2만원으로 누리는 전주 '3인3색 게스트하우스'

백패커,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 호스텔월드, 에어비앤비, 내일러, 그리고 2만원! 이 단어들의 공통점을 바로 알아챘다면, 당신은 여행을 즐기는 진짜 '여행자'이거나 혹은 일상탈출을 꿈꾸는 '젊은이' 일 확률이 높다. '여행 장비와 식량 등을 배낭에 넣고 도보여행을 즐기며,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내일로를 애용하고 객실 하나에 여러 명이 잘 수 있는, 하루 숙박료 2만원 내외의 도미토리 타입의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스마트한 여행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들의 여행지 목록 어디쯤, 전주가 있다. 그들의 발길이 잦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주인장들이, 그 사연만큼이나 색다른 컨셉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 전주의 게스트하우스 3곳의 문을 똑!똑! 노크해봤다.구석구석 이용객 동선 배려 흔적△ 국내외 여행객 입소문 '전주 게스트하우스''전주 게스트하우스'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여행자들에게도 제법 입소문이 난 곳이다. 2010년 2월에 문을 열어 불과 3년 여 만에 한 해 평균 5000여 명, 총 1만5000여 명이 다녀갔다. 숨겨놓은 비결이 있다면 업계 신입생(!)들을 위해 공개해주시라 했다. "홍보에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입을 뗀 주인장 이호성(50)씨. "구글, 야후 등에 밤을 세워 홍보 글을 올리고, 외국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호스텔월드라는 사이트에 전주를 등록시키려고 숱하게 메일도 보내며 설득하는 과정이 6개월이나 걸렸다"고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음을 에둘러 설명하더니 갑자기 컴퓨터를 켜고 페이스북을 보여준다. 팔로워가 400여 명! 게다가 외국인 팔로워가 300여 명에 이른다. 이곳을 다녀간 여행자들, 특히 외국인들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준 덕이 크다고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1층 까페의 양쪽 벽면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 등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여행자들의 예쁜 후기들이 알록달록 빼곡하게 차있다. 인터뷰 하는 내내 외국인들의 전화 문의와 방문이 이어졌는데 영어로 응대하는 본새가 무척 자연스럽다. "대학 졸업 후 덴마크의 국립낙농치즈연구소라는 곳에서 2년간 교환 연구원으로 있었어요. 주말이면 배낭여행을 다니며 게스트하우스를 자주 이용했죠. 언젠간 한국적 정서가 담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보겠다는 꿈을 그 시절에 갖게 됐고요" 꿈은, 꾸는 자에게만 그 기회를 허락한다. 90년에 한국에 돌아와 안 해본 일 없이 온갖 사업을 벌이면서도 10년을 차근차근 준비했다고 한다. 꼭 20년 만에 이룬 꿈이다. 공간을 보고 싶다는 말에 부인 강유진씨(44)가 앞장서 안내한다. 개인 짐을 보관하는 락커룸, 공동 샤워실, 2인용 침대들이 방 크기에 따라 2개부터 4개까지 놓여있는 깨끗한 도미토리들, 세탁 후 개인 빨래를 말릴 수 있는 햇볕 잘 드는 옥상까지. 구석구석 이용객들의 동선과 편의를 배려한 안주인의 마음씀씀이가 티나지 않게 배어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건네자 "남편은 내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했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우리만의 운영방식이자 컨셉이 됐다"고 말한다. 3년 된 공간은 마치 30여 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적당히 느긋해 보였고 한편 익숙해보였다.- 위치 : 전주시 경원동 2가 62번지- 숙박비 : 4~10인 1만9,000원~3만원 (아침추가 : 3,000원)- 입실 오후 2시, 퇴실 오전 10시- 연락처 : 063)286-8886禁男의 집젊은 여성들에 인기△ 전북 유일 여성 전용 '베가''禁男'(금남)의 집이다.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다. 건물 외벽에 나무로 만든 예쁜 간판부터 공동 쉼터, 계단, 객실 모퉁이까지 아기하고 이국적인 소품들이 눈에 띈다. 소원을 적은 종이로 학을 만들어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소원나무'란다. 한지로 묶어 놓은 노트는 이곳을 다녀간 여행객들의 후기를 모아놓은 '나눔장' 이다. 인도의 생태영성공동체 오로빌에서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살다 왔다는 주인장 권윤복씨(48)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말간 미소를 보는 순간, 이 공간은 딱~! 그녀다웠다. "왜 여성전용이에요?" 매출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계산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물론, 경제적 논리로만 판단한다면 분명히 일정부분 손해는 있겠죠. 그런데 그것보다는 제가 인도에서 누렸던 특별한 경험들을 이곳에서, 여성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누고 싶은 걸까? "국적, 종교, 인종, 문화적 배경 등을 초월해 함께 일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 그런 편견없는 공동체적 나눔을 여행객 뿐 아니라 지역민들과도 함께 하고 싶다"는 큰 그림을 그려준다. "물론 지금 당장은 바느질 체험이나 전통매듭 체험, 풀꽃그리기 등 여행객들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체험 나눔을 진행하고 있지만요."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 위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길 33-6-숙박비 : 4, 6인 도미토리 2만원~2만5,000원 - 입실 오후 3시, 퇴실 오전 10시30분 - 연락처: 063)288-4208모던하고 군더더기 없는 공간△ 외국인 전용 '니어레스트'슈퍼 '갑'이었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 말이다.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취재 20년, 그리고 지역신문 편집국장과 편집인으로 퇴임했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서비스업종의 최전선에 서있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 "왜"냐는 질문에 임용진씨(57)의 대답은 명쾌했다. "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 여행자들을 통해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을 경험해 볼 수도 있고. 전주의 문화와 역사를 누구보다 잘 전달할 수 있는, 한마디로 문화창달의 기수를 기꺼이 수행하고 싶어서"란다. 네! 더 이상의 질문이 무색하다. 공간의 첫 인상 역시 모던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집은 주인을 닮아간다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4인실 도미토리 4개와 아침 퇴실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화장실은 5개를 갖췄다. 아침엔 토스트와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한식을 원하는 경우엔 소정의 비용만으로 간단한 식사를 제공할 예정이다. 각 객실에는 김충순 화가를 비롯해 지역 유명예술가들의 그림과 글씨 등을 스토리와 함께 전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도미토리 갤러리인 셈이다. 외국인 이용자들을 위해 제작한 영문 홈페이지도 다양한 콘텐츠들을 넣어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새삼 다시 궁금하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 다시 돌아온 대답도 참으로 담백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우연한 계기로 전주 게스트하우스(이호성씨가 운영하는)에서 하룻밤 묵게 됐어요. 근데, 이게 참 새로운 경험인거라. 내 나이에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이용하는 도미토리에서 자 볼 기회가 어디 있었겠어요? 신문사 퇴임하고, 그렇지 않아도 전주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아! 이거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 바뀌지 않은 그 생각 덕분에 슈퍼 '갑'에서 울트라 '을' 언저리 어딘가 자리할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으로 명함을 만들게 됐지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반짝이는 눈빛이 행복해 보였다. - 위치: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3가 39-5- 숙박비 : 2만원~2만3,000원 (오픈 기념 특별가격 : 1만5000원) - 입실 오후 2시, 퇴실 오전 11시 - 연락처: 063)288-4665송은정 문화전문시민(전주문화재단 문화사업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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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26 23:02

익산 희망연대, 벽화 그리기·논어강좌 등 색깔 있는 시민운동

13년 전 10명의 젊은 청년들이 모여 기존의 시민단체를 뛰어 넘는 NGO 단체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지역이 세상이고, 사람이 희망이며, 참여가 방법이며, 관계가 관건이다'라는 기치 아래 풀뿌리 2003년 익산의 지역시민단체 '희망연대'는 그렇게 탄생됐다. 그동안 시민단체가 가지고 있었던 '시민 없는 시민운동', '제도개혁 중심의 시민운동'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겠다는 것이 목표. 그들의 희망처럼 '희망연대'는 기존의 시민단체와는 분명 색깔이 다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 참여형 시민운동, 비판과 반대를 넘어 합리적인 대안과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하고자 노력한다. 사업은 작고 아기자기하다. 낡은 회색담장에 아름다운 벽화를 그리는 벽화봉사단 '붓으로 만드는 세상'을 10년 째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의 가정에 매달 특별한 요리를 직접 만들어 밑반찬, 피자, 빵 등과 함께 배달하는 '행복도시樂 자원활동' 책이랑 친구랑 꿈과 지혜를 나누는 작은 동네도서관인 '삼성동 어린이도서관' 주로 시민 친화적 사업 위주다. 또한, 인문학중심의 시민강좌 '공동체 아카데미', 가을에는 '논어강좌'를 해마다 열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문화예술 동호회 활동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런 아이디어는 모두 시민들에게서 얻는다. '사회창안대회','시민창조스쿨'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배경이다. 시민들의 아이디어는 지자체에 의제설정이 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풀뿌리 시민단체의 기본을 지키는 '희망연대' 이들이 꿈꾸는 세상. 분명 오늘과 다른 내일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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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19 23:02

[익산시 시민 창안대회·창조스쿨]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우리동네가 반짝

똑똑."누구세요?""네, 00호 주민인데요. 책 빌리러 왔습니다.""어서 오세요."이런 풍경이 상상되는가. '똑똑도서관' 책을 빌리면서 그 책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부터 책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이웃과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도서관. 이것이 바로 시민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다.인구 1만 명의 작은 산골마을 일본 유후인에 연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바로 주민들이 '작은 뱃뿌'가 되지 말자는 각오로 '별밤이 쏟아지는 음악제', '영화관이 없는 마을의 유후인 영화제' 등을 통해 지역만의 색깔, 특성을 살려 자기다움이 있는 도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또,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의 주민들은 1년 동안의 토론을 거쳐 소각장 굴뚝 색상디자인을 결정했다.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지역을 살기 좋게 바꾼 좋은 예이다. 이것은 비단 일본의 경우에 한주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 만들기가 필요해지고 있다. '시민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 익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들의 작은 움직임이 주목받는 이유다. 익산시는 10년 전부터'시민창조스쿨'을 시작했고, 반응이 좋자 2010년부터 '사회창안대회'를 진행 중이다. 시민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모아 아젠다를 만드는 것이다. '시민창조스쿨'은 살기 좋은 우리 마을을 만들기 위한 상상과 아이디어를 가진 시민 4~8명이 팀을 만들어 현장 답사와 선진지 견학, 주민 설문조사 등을 통해 완성도 높은 배움의 프로젝트로 만드는 프로그램. 그렇게 시민들이 협업을 통해 만든 프로젝트는 전문심사위원단시민평가단 100명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게 된다. 시는 프로젝트에 따라 직접 행정의 정책에 반영하기도 하며, 구체적 지원을 통해 시민들이 실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사회창안대회'는 내가 사는 곳,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 직장이 있는 곳 바로 우리 지역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생활 속에서 직접 접하고 있는 시민들이 특정 분야 혹은 다양한 분야의 공익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다. 'Top 7 우수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직접 시민들이 발표하는 장까지 제공한다. 공무원 조직이 시민과의 소통하고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혁신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고민의 연장선이다. 대상까지는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덮어두기엔 아까운 아이디어 중 '꽃과 나무에 이름표를 달자'는 게 있다. 직장인 최선주씨는 처음에는 너무 사소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부끄러웠다고 한다. "길을 가는 데 어린 조카가 "이모 이 꽃이름이 뭐야?" 물어보는 거예요. 순간 당황했지요. 매일 보던 도로의 꽃이었는데, 정작 이름은 모르겠더라구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시민 모두가 이렇게 작지만 아기한 아이디어인데, 이 작음을 지나치지 않고 자꾸만 들여다보며 개선하려고 생각을 표현하고 의견을 모은다면 머지 않은 내일에는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살기 좋고, 머무르고 싶고,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요?"'재활용품 분리수거함에 색깔을 입히자'는 제안을 한 직장인 한명수씨도 아파트에 마대 푸대를 분리수거 용기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분리 수거함도 색깔별로 분리하면 분리수거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겠다 싶다고 판단해 낸 아이디어다. '식물원은 살아있다'로 원광대 식물원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공원화하자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전통시장 지도를 시작으로 여러 테마별 지도(원도심, 문화시설, 개방화장실, 베스트 포토 스팟, 자전거 안전지도 등)를 제작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시민들에게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 이는 내가 사는 고장을 좀 더 안전하고 즐거운 고장으로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아이디어다. 현재까지 익산시에 110여 개를 제안해 30개가 현실화됐다. 현실이 된 아이디어로는 시내버스 LED 번호표시기 설치, 익산시청 앞 광장 시민휴식공간으로 리모델링, 송정제 공원 장애인 편의시설 경사로 재공사, 동주민센터 민원창구 번호대기표 설치, 시내버스 정류장 공공디자인 도입 등이 있다. 꿈꾸는 시민이 내가 사는 지역을 디자인하는 사회. 우리가 희망하는 모델이다. 사람과 지역에 대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지역이 가진 자원을 재해석하고 발견하는 일.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익산문화재단 경영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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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19 23:02

유기 방지 '반려동물 등록제' 올초부터 시행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을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해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뜻에서 애완동물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 즉 반려동물로 개칭함에 따라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올 초 1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반려동물등록제는 반려동물과 소유주의 정보를 등록, 관리함으로써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경우 주인을 신속히 찾아주고 동물의 유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6월 30일까지였던 계도기간을 최근 올 해 말까지 연장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등록대행업체를 방문하면 된다. 전라북도에는 약 45곳의 동물병원 등이 등록대행업체로 지정되어 있다. 방식은 3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삽입(2만 원)하거나 외장형 무선식별장치를 부착(1만5000원)할 수도 있고, 인식표만 부착(1만원)해도 된다. 등록대상은 생후 3개월 이상 된 반려견이며, 계도기간이 지나면 미등록 반려견으로 적발 시 소유주에게 최고 4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이미 전자칩을 삽입한 반려견을 등록하거나, 기초생활수급자가 등록하는 경우, 중성화수술을 한 동물을 등록할 경우엔 등록수수료의 50%를 감면하는 혜택도 있고,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보조견을 등록하거나 유기견을 입양해 등록할 땐 등록 수수료를 전액 감면해주기도 하므로 미리 미리 챙겨 볼 일이다. 인구 10만 이하 시군 및 도서 오지 벽지 지역은 제외된다. 자세한 내용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사이트(www.anmal.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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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05 23:02

【동물 보호운동가 박정희씨】인간에게 상처받은 동물들 가족으로 끌어안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2013년 현재 국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은 전체의 17.4%, 인구로 따지면 1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네 집 건너 한집에서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죽을 때 까지 사람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수는 10%에 불과하고, 매년 10만 마리가 넘는 반려동물들이 늙어서, 병들어서 혹은 더 이상 예쁘지 않아서 등등 다소 '불편한' 이유들로 버려지고 있다. '사람도 먹고살기 팍팍한 이 시절에 개, 고양이가 대수인가'라고 생각한다면,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간디의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에 한번 쯤 귀기울여 보시길 권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일 수밖에 없는 동물이 학대받고 불행한 나라라면, 인간이라고 결코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9마리 반려동물 위해 마당 있는 주택으로 이사 한 지붕 아래 14가족이 동거동락하고 있다는 집을 수소문해 찾았다. 거리를 떠돌던 유기견들, 보호소에서 공고시한이 지나 안락사 1순위였던 유기묘 등을 입양해 9마리 반려동물과 부모님, 남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동물권 활동가이자 연매출 8억원에 직원 43명을 둔 어엿한 CEO 박정희씨(45·올래티켓, (주)PNY 커뮤니케이션 대표)다. 먼저 이런 대가족을 구성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궁금했다. "2008년도에 첫째 '루나'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대가족을 이루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말문을 연 그 옆으로 양몰이견 보더콜리종인 첫째 '루나'와 천방지축 콜리 믹스견 둘째 '써니'가 서로 그녀 옆을 차지하느라 한창 견제 중이다. "루나를 입양한 이후 사람에게 버려지고, 학대받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어요. 조금 낯선 표현일지 모르지만 동물권, 동물복지 등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면서 (사)카라나 동물사랑실천협회 같은 동물보호단체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전국에 산재해 있는 동물보호소에는 키우던 사람들에게 버려진 유기견, 유기묘들이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포화상태다. 동물보호법이 개정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동물들이 더 많고, 실제로 동물을 유기하거나 학대를 한다 해도 처벌의 수위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 마다 아픈 사연들이 있는데, 특히 '럭키(넷째 고양이, 2살 추정)'는 비오는 날 대로변에서 걷지도 못할 만큼 다리가 다친 상태로 주저앉아 있는 걸 구조했어요.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해주고 혹 입양자가 있으면 보내려고 했는데, 품종도 없고 ('럭키'는 코리안 숏헤어로, 젖소 무늬를 갖고 있는 한국토종고양) 꼬리도 기역자로 굽어 있어서, 입양 보내는 건 포기하고 제가 가족으로 들였죠." 그녀는 반려동물을 '아이들' 이라고 불렀다. 대성리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아이들에겐 최적의 공간처럼 보였다. 2층의 야외 옥상과 실내 베란다는 온전히 아이들 차지다. 9마리나 되는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씻, 산책시키며 돌보는 일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데, 함께 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의 생각도 그녀와 같을까. "어머님이 조금 불편해 하시죠. 당신도 아이들을 예뻐라 하시고 아픈 아이들 보면 마음 아파하시지만, 반려동물을 더 들이는 건 반대세요. 당신 딸이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달플까봐 마음쓰이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아픈 동물들 보면 그냥 못지나치는 건 '모전여전'인 듯하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그녀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9마리 아이들과 통성명을 시켜주신 건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유독 털이 많이 날리는 고양이'미우'는 사람을 많이 좋아한다는 것과 막둥이 올블랙 고양이 '순이'는 겁이 많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어 숨어 있다는 것도, 붕어빵처럼 닮은 두 마리 시추견은 '쫑순이'와 '방순이'이가 거리를 한 달째 헤매고 다니는 것을 입양했다는 것도어머니가 들려준 앞뒤 사연이다. △ 동물복지가 존중되는 사회적 공감 필요 누군가에겐 그저 집지키고 잔반을 처리하는 개일 뿐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훔쳐 먹는 도둑괭이 혹은 길냥이일 뿐인 고양이들이 또 누군가에겐 한없는 배려와 사랑의 대상이다. 그녀에게 반려동물이란 어떤 의미일까. "절대적 신뢰를 주는 가족이죠. 아이들이 주는 사랑에 감동받을 때가 많은데 이건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죠. 이종(異種)간의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경험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반려동물을 입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냐는 마지막 질문에 오랫동안 준비한 대답인 듯 거침없이 말한다. 어린 자녀를 위해 계획 없이 반려동물을 들이지 말 것, 사지 말고 입양할 것, 중성화 수술을 시켜줄 것, 그리고 동물복지란 결국 인간을 위한 복지이기도 하며, 동물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 인간만이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마지막 사진 촬영은 어떻게 진행했는지도 모를 만큼 아이들의 열렬한 환대(?) 속에 처음 구상했던 그림, 9마리 반려동물 속에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는 그녀와 사뭇 다른 사진을 찍고 돌아왔지만, 다음엔 취재가 아닌 아이들의 친구로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 물론 양손엔 아이들의 열광적 환대를 가라앉혀 줄 간식을 한아름 챙겨들고 말이다. 송은정 문화전문시민(전주문화재단 문화사업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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