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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동문거리 두명의 수집가 오세군・김윤정

매킨토시 수집 오세군씨 / 인형화가 김윤정씨

우리는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욕구보다 먼저 앞서가고 필요와 욕구를 느끼기 전에 새로운 기술과 물건이 재빠르게 교체되고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로 불과 5년 전에 사용한 물건은 두 말할 것도 없고 1년 전에 사용한 것도 순식간에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만다. 공급과 소비가 너무 쉽게 시장을 채우게 되면서 사물, 물건은 가치의 대상이 아닌 단순히 쓰임의 용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됐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에 쓰임 이상의 가치와 철학을 담고 세월과 함께 시대를 아카이브하고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공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물의 비밀, 매킨토시로 가득한 소통의 공간

▲ 오세군씨의 카페 주방쪽에는 호빵맥이라고 불리는 iMac G4, eMac, iMac G3, 파워매킨토시 퍼포마 모델들이 전시돼 있다. 표정, 헤어 스타일 등이 세련된 인형화가 김윤정씨의 작품.

동문거리를 걷다보면 디자인 사무실같기도 하고 컴퓨터 수리점인 듯한, 하지만 수리점치고는 매우 디자인틱한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이 곳에 들어서면 빽빽하게 혹은 구성지게 여기 저기 놓인 컴퓨터가 그것도 매킨토시 컴퓨터가 얼추 봐도 100개는 넘는다.

 

컴퓨터의 주인이자 디자인사무실 운영자 오세군 씨(37)에게 첫 매킨토시는 1990년대 중반 대학 입학 당시 부모님이 선뜻 사 준 컴퓨터다. 당시 대학 입학금의 4~5배이자 일반 PC의 3~4배 가격인 550만원으로 고가였다. 애플사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유입돼 전자출판과 그래픽 디자인 업계의 95% 이상이 사용했다.

 

오 씨는 첫 컴퓨터를 대학생활 내내, 전역 뒤 졸업까지 7~8년간 사용했다.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컴퓨터는 오 씨에게 단순히 디자인 작업을 하는 사물 그 이상이었다. 디자이너로서의 창의적 영감을 주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데다 돈까지 벌게 해줬다. 그는 이후 사용했던 매킨토시를 버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해 발품까지 팔면서 단종된 매킨토시를 구입한 것이 현재는 150~200개다. 매킨토시 보유량으로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이렇게 오 씨의 손에 들어온 매킨토시는 대부분 호환성이 낮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재도 사용이 가능하다. 대학 신문사에 있던 매킨토시에는 신문 편집본, 동아리 M.T. 사진 등 이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디자인회사가 사용한 컴퓨터에는 1990년대 당시 출판디자인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담겨 있었다.

 

한옥마을 한켠에 있던 그의 사무실을 동문거리로 옮긴 지 2년 남짓. 구형 매킨토시를 구경하러 온 사람, 자신이 사용했던 컴퓨터를 이곳에 맡겨놓기 위해 온 사람, 블로그를 통해서 이 공간의 이야기를 접하고 오 씨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온 대학생 등 다양한 나이, 성별, 취미, 취향, 직업,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는 곳이 됐다. 방문객에게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따뜻하게 대접하기 위해 바리스타 교육까지 받았고 무료였던 커피는 사무실 주변 동문거리에 커피숍이 들어서면서 상도(商道)상 1000원을 받고 있다.

 

1년 후 그의 사무실에는 몇 대의 매킨토시가 더 들어왔을지, 어떤 사람들이 그곳을 거쳐갔을지, 그가 모으고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일지 더욱 궁금해진다.

 

△인형은 또 다른 나의 표현

▲ 인형화가 김윤정씨의 작업 도구들.

동문거리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작가공방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부터 동문거리에 작업실을 열고 문턱을 낮춘 한국화가, 사진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소소한 관광거리가 되고 있다.

 

그 한 켠에 위치한 인형공방의 인형 화가(doll painter) 김윤정 씨(35).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면 여자라면 어렸을 적 소유하고 싶었던 인형방에 있는 황홀감에 빠진다. 작업실 벽 책장 칸칸에 제각기 다른 옷차림, 다른 표정의 팔등신 인형들이 눈에 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형 얼굴에 눈썹, 눈동자, 입을 그려넣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주문 제작 인형이다. 커스텀 인형은 의상, 머리, 화장 등 분야가 나눠져 있고 김 씨는 얼굴 전문이다.

 

20대 중반에 결혼한 그녀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 본격적으로 인형 수집을 시작했다. 모모꼬, 걸스미션 등 일본 인형을 모으던 중 순정만화를 그리던 실력으로 인형얼굴을 다시 그렸고 온라인 카페를 통해 알려졌다. 해마다 성탄절을 전후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인형전시회에 개인부스를 열어 자신의 작품과 실력으로 선보일 정도로 인형마니아 사이에서 꽤 유명인이다.

 

김 씨는 "주문자의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각기 다른 얼굴 표정을 만드는 게 가장 어렵다"면서 "패션잡지에 실린 모델, 특히 화장이 두드러진 사진을 모으고 만화책과 만화영화를 자주 본다. 때로는 미술 전시회를 찾아 지역 작가들의 색감을 유심히 관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 얼굴과 똑같이 인형 얼굴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인형으로 프러포즈를 한 사연도 있다"고 들려주었다.

 

자신만의 독자 브랜드로 인형을 제작할 계획인 그는 "작업실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부산, 서울, 경기지역의 인형마니아라 아쉽다"며 "작업실이 도내 인형매니아들과 함께 소통하고 각자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매개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임진아 문화전문시민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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