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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에너지 충전 환자들과 나누죠

기타치며 노래하는 한의사와 피리부는 흉부외과 의사

▲ 한의사 천상묵씨(좌) 흉부외과 의사 김영호씨(우)
한의사나 서양의나 장르는 달라도 아픈 사람을 만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받는 고충은 같다.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며, 그 에너지를 재생산해 환자들과 나누는 의사들이 있다. 대중음악과 클래식, 국악 등 음악적 장르를 떠나 음악활동 자체가 삶의 원동력인 그들을 만나봤다.

 

△전문 베이시스트 꿈꿨던 한의사

 

보통 한의원에 들어서면 조용한 경음악이나 국악풍의 명상음악이 들릴 것만 같다. 전주시 경원동에 자리한 호남한의원 천상묵 원장(55)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는 대중음악가다. 천 원장은 한때 한의학도에서 전문 음악인으로의 전업을 꿈꾸기도 했다. 천 원장은 베이붐세대의 대표 주자인 58년 개띠다. 흔히 보컬그룹의 전성기로 불리는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당시의 들국화, 펨페스트, 최헌의 검은나비, 신중현과 엽전들, 함중아 등의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어느날 들국화의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라는 노래를 듣고 음악을 시작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원광대 한의과 내에 허브닥터(돌팔이 의사)라는 그룹을 만들어 리더를 했다. 이 그룹은 최근 30주년 기념행사를 할 만큼 커졌다. 대학시절 음악 활동을 하고 싶었던 천 원장은 당시 유일한 내륙이라 통행금지가 없어 밤 문화가 번성했던 청주에서 활동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밤무대 예술인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국내 최고의 연주자를 꿈꿨다. 이를 안 그의 지도교수였던 박경 교수는 "우리나라의 제일가는 가수는 될 수 없지만, 최고의 한의사가 될 수 있다"는 한 마디로 그를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천 원장은 낮에는 한의사로, 밤에는 직장인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며 '합죽선', '진북밴드' 등에서 활동 하다가 '놉'이라는 그룹으로 2012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에서 전북 대표 팀으로 출전해 8강안에 드는 쾌거도 이뤘다.

 

그는 "막상 8강안에 들어 다른 그룹의 연주를 보고 실력과 음악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차이를 실감한 천 원장은 그룹 활동을 접었다"고 고백했다.

 

그간의 활동을 통해 들국화의 전인권과 강은철, 임지훈 등 많은 가수들과의 친분을 유지하며, 그 덕에 지역에서 열리는 바자회 등에 친분 있는 가수들의 공연이 자주 성사됐다고 귀띔했다. 지금의 음악활동은 가까운 지인들과 가볍게 만나 즐길 수 있는 자리에서만 선보인다. 주로 동문사거리에 출몰하며, 박남준 시인과는 '천박 브라더스'로 '천박한' 음악을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동서양 악기 섭렵한 흉부외과 의사

 

전주시 인후동에 위치한 은성병원(옛 김영호 흉부외과)에 들어서면 어떤 때는 대금소리를, 어떤 때는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악기의 '삑삑'거리는 소리가 사람을 먼저 반긴다. 소리는 달라도 언제나 악기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악기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김영호 원장(57). 학창시절부터 악기를 취미로 연주하고 있지만 취미라고 하기엔 굉장히 많은 악기를 배웠다.

 

김 원장은 그냥 음악이 좋아 초등학교 때부터 하모니카를 불었다.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악기라곤 하모니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서 7080세대에 유행하던 기타를 잡았고 클래식기타를 독학으로 익혔다. 밤새 기타 연습을 하다 대입을 앞두고 성적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의대에 진학한 그는 어머니가 배우시던 가야금에 빠져 가야금을 열심히 타러 다니기도 했다. 전북대 의대 2학년 때 '의대 현악부'가 생겨 바이올린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의대생에게 가장 힘들다는 수련의 시기는 악기를 전혀 접할 수 없었고 졸업한 뒤 다시금 악기를 잡을 수 있었다. 백악지장이라 불리는 거문고 소리에 반해 거문고와 아쟁을 배웠다. 현의 소리와 연주가 손에 잡힐 즈음 다시금 김 원장의 마음은 대금에게로 향했다.

 

국악기에 귀와 마음을 적시고 나자 다시금 서양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2000년도 초 색소폰 연주가 유행했을 당시 일반인이 많이 하는 파퓰러 색소폰보다는 클래식 색소폰을 배웠다. 5년차가 되자 오보에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4년 동안 개인 사사를 통해 오보에를 연습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오보에를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보다 수월한 클라리넷을 시작해 지금 3년차에 접어들었다. 김 원장은 하모니카와 클래식 기타를 제외하고 각 악기마다 최고의 연주자를 찾아 스승으로 모셔 최하 3년 이상의 레슨을 받았다. 그는 "진료 행위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진단·처방, 치료하는 일은 힘든 직업 중에 하나다"면서 "즐겁게 일하고 힘찬 에너지를 나누는 원천이 바로 악기 연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악기 연주는 신체적 건강을 위한 운동과 함께 정신적 건강을 위해 삶에 필수다"면서 "그냥 좋아서 시작한 악기연주가 이제는 직업을 잘 수행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 됐다"고 덧붙였다.

 

■ 좌서우금…전문직일수록 취미활동 깊게 빠져

 

선비들에게 있어 거문고는 수양의 악기로 통한다. 글공부하는 선비나 사대부의 사랑채에는 금을 걸어놓고 책을 읽다가 분심이 생기면 자연스레 거문고를 비껴 탄다. 그래서 선비들의 생활상을 표현한 말로 좌서우금(左書右琴).

 

즉 왼손에 책,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고 하는 말이 있다. 선비는 학문에 힘을 쓰더라도 음율과 풍류를 알아야지만 진정한 덕목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시대 IQ(Intelligence Quotient·지능지수)와 EQ(Emotional Quotient·감성지수)의 균형 있는 발전을 논하기도 전에 우리 선조는 그 중요성을 알았다.

 

현대인의 가장 큰 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이 나오고 있지만 전문직 종사자일수록 취미활동에 깊게 빠져 든다고 한다.

 

·김정준 문화전문시민기자

 

(전주전통문화관 문화사업부 공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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